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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은하의 미술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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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개를 꿈꾸며/ 설치미술가 조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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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백은하 작성일06-11-05 11:50 조회3,84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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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대의 광야는 황량한 사막지대다. 낮과 밤의 기온차가 매우 심하다고 한다. 비도 자주 오지 않다가 하루에 300mm의 폭우가 내리기도 한다. 사막은 생명체를 품기에는 불모의 땅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사막에 비가 내리고 나면 그 비가 강이 되어 흐르다가 그곳에 ‘와디’가 생긴다. 사막의 식물들은 숨을 죽이고 있다가 와디를 따라 피어난다고 한다. 사막은 식물의 씨앗을 품고서 비를 기다리고 기다린 것이다. 언젠가는 와디가 생겨날 것이니까. 


      설치미술가 조은경이 좋아하는 것은 스피드, 석양의 하늘빛, 그리고 몰입이다. 국도를 속력을 내며 달리다가 마주치는 석양의 하늘빛은 그녀를 숨막히게 한다. 순간 순간 집중과 몰입의 시간이 그녀를 스쳐 지나가고 그녀는 그 몰입의 순간들을 작품으로 옮긴다.


      조은경은 조선대 미대 조소과에서 미술수업을 했다. 20대는 그녀에게 모색의 기간이었다. 자신이 인생을 바쳐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모색을 했다. 대학에서는 마블과 브론즈를 재료로 해서 작업을 했다. 작업복을 입고 땀을 흘렸다. 돌을 들어올릴 때의 육중함. 

      그녀는 생각을 집중할 때는 무엇인가를 정리한다. 어느 날 옷장을 정리하다가 아름다운 속옷들을 발견한다. 너무나 익숙해서 눈에 보이지 않았던 사물. 육체에 밀착되어 있어서 몸처럼 느껴지는 사물이었다. 벗는 것과 입은 것. 그것은 루빈의 술잔처럼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였다. 그녀가 작품의 모티프와 조우한 순간이었다. 


      조은경은 2000년 광주의 인재미술관에서 『날개를 꿈꾸며』전을 연다. 한지에 손바느질을 한 날아갈 것처럼 아름다운 팬티와 브래지어, 드레스들이 미술전시장을 채웠다. 그동안 너무나 여성적이어서 문화적으로 금기시해온 오브제들이었다. 그것은 여성의 현실일수도 있고 환각일수도 있다. 나비의 일령처럼 벗어진 허물들이었다. 그녀가 한지를 재료로 택한 이유는 드로잉에서 전시장 설치까지 완전하게 혼자서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전시장을 채운 속옷들은 그동안 여성들을 억압하고 있던 것들은 벗어버린 허물이다. 모든 허물을 벗어버린 그녀들은 날것의 생명을 품고 온 몸에 태양을 받으면서 와디의 숲 속을 걷고 있을 수도 있다.


      바늘과 바느질. 침묵과 몰입의 시간이 느껴진다. 그녀는 자신이 작품을 만들어가는 완전한 노동의 시간 자체를 즐긴다고 한다. 『날개를 꿈꾸며』의 작품들은 2001년 파리에 있는 ‘파스칼 바노예크 갤러리’의 초대를 받는다. 그녀의 작품이 가진 꿈꾸는 듯한 고요함은 파리의 관람객들을 매료시켰다. 한지의 흰색은 창백하지 않다. 주술적이다. 세상의 모든 색들을 품고 있다. 색이 생기기 이전의 색이다. 작가가 의식했건, 하지 않았건, ‘파스칼 바노예크 갤러리’ 전의 브로슈어 표지에 쓰인 「peau」 라는 작품의 가위질 된 한지가 가진 형상은 진도씻김굿의 무구가 연상된다. 또한 『사적 공간』 전에서 발표되었던 「생각의 작업」이라는 작품에서도 하얀 종이꽃이 등장한다. 그녀가 하얀 종이꽃으로 만들어놓은 공간은 사유의 책상이다.  


      2002년에는 「메이크업 바디」라는 작품을 발표했다. 자본주의에서 여성의 몸은 장식적으로 메이크업된다. 생명을 품어야 할 여성의 몸은 비정하게 물화된다. 딱딱한 아크릴로 만들어진 속옷의 형상들은 자본의 논리에서 장식적으로 도구화되고 쓰여져야 하는 여성의 몸에 메이크업 되어있는 허물들을 벗겨준 것이다.


      조은경의 작업들은 가까이에 있는 일상의 사물과 소품들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호흡이 스며있는 일상의 사물들에 숨을 불어넣는다. 2004년 광주 롯데화랑에서 열린 전시회는 속옷과 드레스에서, 소파와 침대로 확장되었다 그리고  ‘Installation View'기법이 사용되었다. 자신이 사용했던 소파를 한지로 직접 바느질했다고 한다. 자신이 자신의 것이라고 여겼던 가구들을 떠나보냄으로서 또 다른 허물을 벗는 것이다. 나비가 이령에 다다른 것처럼 그녀도 끊임없이 자신을 비워낸다. 그녀는 작업을 통해 자신을 비워내면서 내적 성장에 이르고 이십대에 치열하게 고민했던 자신의 인생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조은경의 작업은 「Emptiness」까지 이르렀다. 엠티니스. 비움이다. 「Emptiness」시리즈는 2005년 파리에 있는 ‘꼼뜨 마레 갤러리’와 ‘manif1105 seoul' 등에 초대되었다.

    평면 작품인 「Emptiness」의 화면에는 일상의 사소한 오브제들이 미니멀하고 단정하게 숨죽이고 있다. 관람객이 집중하지 못하면 형상을 놓칠 수도 있다. 연한 연두빛을 띠기도 한다.  사물들은 캔버스 안에서 정확한 자세로 놓여 있다. 번잡한 것들을 모두 벗어던지고 본질로 향해가는 것 같다.


       자유로와진다는 것은 내적 억압을 벗고 진정한 자기와 만나는 것일 것이다. 그녀는 바느질과 드로잉의 시간들을 통해서 자기를 향해 꾸준히 걸어간다. 그녀가 듣는 음악과, 그녀의 스피드, 그녀가 바라본 나무결의 움직임, 강물의 출렁임 등은 그녀를 풍요롭게 한다. 그러나 그녀가 화면에 그려내고 싶은 것은 풍요로움이 아니다. 그 풍요로움들이 그녀의 몸을 관통한 후에 보여지는 비워진 자유로움이다. 자신의 욕망을 비워내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비움을 허락한 작가의 작품은 관람객에게 단순한 기쁨을 줄 것이다. 비워낸 사람이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은 공간인, 시인 나태주의 ‘풀꽃’이라는 시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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