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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시립미술관-생/로/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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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광주미연 작성일05-03-05 14:12 조회9,89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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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삶이 무한했다면 "생로병사"라는 사자성어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은 문득 생의 허무함과 무상함을 느끼고 지나온 궤적을 깊이 생각해 보게 된다. 흔히 세월을 유수와 같다고 한다. 죽음 앞에선 사람들의 모습은 그 살아온 시간만큼이나 다양하고 그에 대한 반응도 각색이다.
    얼마 전 한 방송사가 생로병사의 비밀을 다룬 내용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요즘 세인들의 관심이 온통 웰빙이니 자연회귀니 하며 건강에 집중되다 보니 관심이 몰릴 수밖에 없다. 사실 경제적인 발전과 함께 찾아온 생활의 여유로움과 부의 창출은 곧 인간의 생명 연장에 대한 소망으로 이어지고 의학과 함께 생명과학 연구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끌어냈다.
    고대로부터 인간은 무병장수를 갈구했고 다양한 방법으로 이를 시도하였다. 주술로부터 시작해 현대의 과학을 이용한 다양한 방법까지 삶을 연장하기 위한 시도들이 계속되고 있다. 불교에서는 생로병사를 四苦라 한다. 자연학적인 우주의 원리를 보자면 모든 생물은 소생하고 사멸하기까지 하나의 순환점을 만드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번 '生老病死' 전시는 4명의 작가들의 해석을 통해 우리가 추구하는 이상과 현실 그리고 삶의 행로에서 현재의 자신을 비추어 볼 수 있는 여유와 함께 개개인의 인생에 대한 목표를 되돌아 관조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 생각한다. 전시에 참가한 4명의 작가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첫째 이미 어지간히 알려질 만큼 작품활동을 해 온 작가들이며, 둘째 무엇보다 자신의 예술세계가 확고해 뚜렷한 개성을 가진 작품들을 해 내고 있다는 것이다. 셋째 언제나 작업실을 떠나지 않는 열정과 충실함이 가득한 작가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작품은 전시장에선 너무나도 다른 4人 4色의 주제해석과 이미지로 이 화두에 대한 인식의 다양성을 일깨워준다.
    주제를 강하게 부각시키고 작업에 대한 방향이 뚜렷한 테마전은 구성면에서 인식의 차이와 작가 선정의 적합성 정도에 따라 자칫 전시의 기본방향이 흐트러질 수 있다는 맹점이 있고, 기존 작업의 매너리즘에 빠진 작가들에겐 주어진 특정 주제에 대한 작업이 적잖은 부담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이러한 기우를 불식시키기에 충분하다고 본다.

    "生"을 주제로 작업한 김진화는 자신의 작업에 대한 연구가 확고하고 치밀한 작가이다. 그녀의 설치작품들은 주제에 대한 철저한 고찰로 의도하는 이미지를 자신이 즐겨 쓰는 오브제로 잘 연결해 독특한 정서와 현대적 조형미로 풀어내 준다. 이번 작품들도 그녀가 즐겨 사용하는 소재인 색실이나 캔버스 천, 잘게 오려진 책의 글귀 등 낯설지 않고 편안하다. 작가의 작업실을 방문했을 때 '생'에 대한 작업제의에 작가의 반응은 명쾌했었다. 그것은 작가가 미국 유학 당시 '호흡과 성장'이라는 주제로 석사학위를 받았던 것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이번 작업에서 그녀의 생에 대한 개념은 확고하고 또렷하게 전달되고 있다.
    이번 전시에 작가는 생에 대한 해석을 세 가지 관점으로 담아내었다. 첫 번째 작품 <호흡-성장>이라는 작품에서 작가는 매우 유연한 언어로 속삭이듯 무한상상의 많은 소리와 영감을 전해 주고 있다. 별자리를 꼼꼼히 그린 화분에 잘게 오려 솟구치듯 담겨진 글귀들은 생성된 우주의 에너지가 녹색줄기를 따라 만물과 대지의 氣로 상승하는 듯 하다. 그 속에는 물질적 질료의 대 변이를 경험케 하는 마술이 존재하고 생은 그녀의 의도대로 하나의 에너지처럼 여겨진다.
    <흔적>은 작가의 삶 속에서 기호화된 형이상학적인 절편들이다. 우리의 생은 출발부터 하나의 흔적을 남기는 개인의 역사이고 보면 무채색과 콜라지 속의 작은 오브제들은 생의 기록으로 잔잔히 발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책 속에 담겨진 오랜 시간의 작업들 또한 벽면에 설치된 103장의 드로잉처럼 무아의 상태에서 그려진 심연의 몸짓으로 느껴지는 단상적 표현의 집합체로 생의 개념적 해부처럼 생각된다.
    <출>은 가장 근본적이며 원초적인 생의 기원을 이야기하고 있다. 마치 인간의 출생을 상상케 하는 출구 같은 모티브를 제시한다. 순수하고 고결한 탄생의 의미를 간직한 듯 형태는 새하얀 백색이고 다양한 인간의 모습처럼이나 탯줄처럼 여겨지는 색실들은 각각의 색깔들로 표현된다.
    "老"의 조광석은 최근 무척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것은 작가가 많은 단체전에 초대되고 있기 때문인데 노동이 작업의 근간이 되는 조형작업이다 보니 작품을 내보이는 것 자체가 간단치 않은 문제다. 그의 작업과정을 보기 위해 몇 번인가 능주에 있는 청산방이라는 작업실을 들렀었다. 그곳은 항상 소나무를 비롯한 팽나무, 은행나무, 편백나무, 가죽나무 등 각양각색의 나무 향기로 가득했는데 그것들은 그의 손길을 기다리는 크고 작은 재산처럼 느껴졌다. 요즘 목재를 재료로 다루는 작가들이 많지 않고 보니 그의 작업이 갖는 의미도 특별하다고 할 수 있다. 얼마 전부터 양은이 그의 주재료로 보이기 시작했다. 이번 전시를 위해 상당한 분량의 양은들이 쌓여져 있었는데 여기저기 고물상에서 구해오려고 많은 고생을 한 것 같다.
    이번 출품작 가운데 <공중누각>은 제목에서 암시하듯 공중에 누각을 짓는 것처럼 근거나 토대가 없는 헛됨을 작가는 인간의 부질없는 욕심과 허영을 화석처럼 굳어져 가는 인간의 발에 비유하고 그 무상함을 어린 시절의 종이배(양은으로 만들어진) 형태로 나타내고 있다. 사람들이 "살아가며 만드는 허구"를 작가는 늙음이라는 주제 속에 안타까움과 풍자의 속내로 표현해 내고 있는 것이다.
    <일엽편주>는 윤선도의 어부사시사의 춘사(春詞) 한 대목을 떠오르게 한다.
    "芳草를 밟아보며 蘭芷도 뜯어보자 배 세워라 배 세워라 한 잎 조각배에 실은 것이 무엇인가
    찌거덩 찌거덩 어여차 갈 때는 안개 더니 올 때는 달이로다."
    일엽편주에 실을 수 있는 것이 그 얼마나 될까. 인생을 결국 여유로운 마음으로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함을 은행나무 위를 물 흐르듯 떠내려가는 조각배는 이야기해 주고 있다.
    <일생>작품은 지극히 단순 절제되면서 작가의 탁월한 해학적 사고와 조형성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작가는 아주 간결한 재료로 매체적 특성을 이용한 동화 속의 세계처럼... 시간의 흐름을 숟가락 시계로 그려내고 있다.
    <의자>는 육중하고 비정형적이면서도 보편적 시각이 주는 편안함이 순수함과 자율적 충동을 유발케 한다. 자연에서의 빈약한 인간의 존재는 조그만 사람형태로 심재 부분에 보이는데 이는 개개인이 갖는 외로움과 갈등을 상징적으로 나타내 보이고 있다. 작가는 이러한 사람들의 고통들이 의자에 편안한 휴식으로 정착되기를 바란다.
    <향수>는 작가의 노동력과 조형실험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쉽지 않은 과정으로 모아진 금빛 은빛의 양은을 자르고 두드리고 리벳으로 붙여 불규칙한 형태의 커다란 음료수 잔으로 만들어냈다. 작품에는 삶의 훈기 같은 끈끈함이 배여 있는데 그것은 아마도 양은그릇을 이용했던 소시민들의 삶이 구부러지고 찌그러진 모습으로 나타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는 미꾸라지의 보이지 않는 비늘만큼이나 많은 인생의 훈훈한 이야기들이 이곳에 가득 담기기를 바라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숲 속을 유희하듯 감상할 수 있다. 곳곳에 작은 그루터기의 원목들을 쉼터로 활용하도록 배치했기 때문인데 인간의 성장을 상징하는 발자국들이 흔적으로 남아있다.

    "病" 김상연은 병을 주제로 작업했다. 작가는 최근 도심을 벗어난 외곽지역에 비교적 넓은 공간의 작업실을 마련했다. 좀 더 큰 대작을 하고 다양한 작업을 위해서다. 그는 그동안 '육식'(肉食)과 '의자' 연작을 통해 생명체와 물상에 대한 재해석과 존재에 대한 물음을 형상적 작업으로 보여주었다. 그가 작업에 즐겨 사용하는 두꺼운 종이와 먹은 작가의 기질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내밀하고 때론 공격적인 방법으로 심도 있는 작업을 원하는 그에게 재료의 선택은 자업의 특성을 충분히 발현시킬 수 있는 중요한 방법이다. 찢고 칠하고 또다시 파내고 덧바르는 반복된 작업을 지켜보면서 단순한 형태에서 매우 복합적인 느낌을 받았다.
    작품 <몸>은 남과 여의 몸이 하나로 누워있는 형상이다. 이것은 합일(合一)을 상징한다. 수승화강(水乘火降)이라는 말이 있다. 태양의 따뜻한 기운은 아래로 내려오고 물(수증기)은 위로 올라간다는 것이다. 물과 불의 조화로움이 자연 속의 흐름을 이어주듯이 생명체의 근본적 삶의 원리는 화합과 조화라고 할 수 있다. 몸의 건강한 덩어리를 표현한 작가의 의도에서 기운생동하며 분출하는 힘이 느껴진다.
    <사랑의 바이러스>는 작가의 질병에 대한 대안이다. 우리의 몸은 세포와 균이 존재한다. 질병은 무익한 균에 의해 신체가 해를 입음으로서 생긴다. 그렇지만 유익한 바이러스들은 우리의 병을 치료하는 매개체로서 기와 혈의 흐름을 움직여 건강한 육체를 만든다. 작가는 이러한 관점에서 사랑의 바이러스라는 형상을 통해 인간의 가장 중요한 면역력은 사랑임을 일깨운다.
    <공존>은 거친 선묘의 효과로 인간의 원초적 휴식을 담아냈는데 의자연작과 동일선상으로 보여진다. 인간은 휴식과 치료의 장소로 안락한 장소를 필요로 한다. 작가는 우리의 고단한 삶과 병을 치료하는 공간으로 침대를 떠올린다. 침대는 이러한 상징성과 함께 관람자의 다양한 해석을 기대한다.
    <실존>은 생명체와 물상과의 상호교류이다. 생명체의 유기적 반응이 때론 해학적 방법으로 표현되었는데 담는다는 의미의 그릇과 오랜 시간을 살아가는 거북이를 등장시켜 공간이동을 표현하고 있다.


    "死"의 윤남웅은 자신의 경험적 사실들을 토대로 작업의 방향을 설정했다. 담양에 있는 그의 작업실로 쓰고 있는 넓은 농협창고는 작가의 수더분한 첫 인상만큼이나 선이 굵고 직선적이며 골기가 비치는 그림들로 벽면과 바닥이 가득 매워져 있었다. 그 곳에는 시골 장터에서 만날 수 있는 소박하고 순수한 평범한 인간상들이 우리의 현실을 대변하고 있었는데 그의 조형적 사고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그 만남 뒤 얼마 되지 않아 작가는 어머니와 현생의 별리를 겪었다. 하지만 그것은 또 하나의 시발점이 되어 이번 전시작품에서 작가에게 내재된 그 심적 체험과 영감들이 뚜렷이 접목되어 나타나고 있다. 소멸은 또 하나의 생성을 만드는 기회이다. 이번에 보여지는 그의 작품들의 명제 <종이꽃>처럼 죽음은 인간의 가장 순수함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출구이다.
    작가의 고향인 진도는 섬이라는 지리적 특수성과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문화의 원형과 예술적 감성이 비교적 잘 보존 된 곳으로 무속신앙이 의식의 저변에 깔려져 있기도 하다. 작가는 어쩌면 유년시절을 보낸 이곳에서의 무속에 대한 직간접적 경험과 친숙함으로 자연스레 습득한 사고의 확장을 이번 작업에 펼쳐냈다고 보여진다.
    중요무형문화재 제72호. 씻김굿은 죽은 사람의 영혼이 극락에 가도록 인도하는 무제(巫祭)이다. 보통 무복을 입고 무당이 사술적(詐術的)인 굿을 하는 것이 보편적이지만 진도 씻김굿은 이와는 달리 춤과 노래로서 신에게 빌며 의상은 흰옷 차림으로 죽은 자의 후손으로 하여금 죽은 자와 접하게 한다는 특징이 있다. 작가는 이번 작품의 대부분을 하루 밤 내내 펼쳐지는 씻김굿의 과정에서 심상적 모티브를 제공받아 작업했다.
    두터운 한지에 몇 번인가 알 수 없을 정도로 스며든 먹의 중후함과 원색 콜라지로 처리된 무당의 부적은 이전의 <바람놀다> 연작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죽음에 대해 초연할 수 없었던 작가의 감정은 작품 곳곳에 어머니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으로 사무치게 나타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대개 개념적 이미지들로 의례의 풍경에 기인하고 있다.
    이번 전시의 가장 대작인 병풍작품 <紙花>는 작가의 한과 감성이 서술적으로 넘쳐흐른다. 씻김굿의 절정이며 마지막 대목인 길 닦는 대목인양 산자와 망자의 끊어질 듯 애절하게 이어주는 삼장개비 곡조를 마치 들려주는 듯 하다. 그의 말처럼 죽음을 환생으로 보는 작가의 사고는 언어가 표현할 수 없는 심리적 연속성을 화폭에 담아 그려내고 있다.

    우리는 4명의 젊은 작가들의 작업을 통해 자연의 경이로움과 함께 삶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결국 인간의 궁극적 삶의 방향이 내면적 성숙과 함께 생의 소중함을 존중하고 사랑하며 같이 공유하는 것임을 깨닫게 한다.

    -- 한창윤(광주시립미술관 학예사)
    [2005.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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