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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시대의작가들/회화

    김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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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력소개

    서양화가 김영태 화백은 1927년 함평에서 태어나 광주공립농업학교를 거쳐 조선대학교 문리학부 미술과를 제1회로 졸업하였다. 대학 재학 중 조선대학교부속중학교 교사를 시작으로 이후 부속고등학교, 광주공고, 목포공고, 광주서중, 광주공고 등의 교단에 섰으며, 1967년 광주일요화가회를 창립하여 1977년까지 회장 겸 지도교수를 맡았다.

    1968년 제1회 개인전(광주 Y쌀롱)을 비롯, 1972(광주), 1973(35, 광주), 1974(광주), 1975(광주 전일미술관), 1976(89, 여수·광주), 1977(10, 일본 구르메久留米연합문화회 초대전), 1979(광주 전일미술관), 1980(타이완 핑둥시扁東市), 1981(일본 시마네島根縣현립박물관), 1982(부산 현대화랑), 1984(광주 현대화랑), 1986(서울 롯데미술관), 1991(부산 타워미술관), 2006(일본 모리오까盛岡 이와야마岩山미술관, 광주 대동갤러리), 2007(광주시립미술관-올해의 작가전), 2016(함평군립미술관), 2017(작품기증기념전, 조선대학교미술관), 2020(소장작품전, 함평군립미술관), 2024(백화난만, 함평군립미술관) 등의 작품전을 가졌다.

    단체전으로는 [아세아미술제](동경 등, 1979~84), [김영태 초대전](1986, 롯데화랑), [광주전남미술50년전](1989, 조선대학교미술관), [영호남원로미술인초대전](1989), [동아일보70주년기념 백두산실경사생전](1991), [광주-가고시마 한일교류전](19912010, 광주·가고시마), [국립현대미술관초대전](1992), [서울국제현대미술제](1994,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불가리아미술동맹초대전](1995), [한일 국제회화 서울전](1996), [상형전](1996, 제주 한솔화랑), [한불 국제회화 서울전](1997), [독일 프랑크푸르트 초대전](1997, 2001), [히로시마국제미술전](1998), [파리 Le Salon](1998), [독일 베를린시 초대전](1999), [중국 청도시립미술관초대전](2001), [체코 프라하시 초대전](2002), [일본 廣島평화미술전](2004), [광주 문화방송 40주년기념 초대전](2004), [김영태·김두례 부녀전](2005, 일본 요나고시 백화당화랑), [원로5인 초대전](2008, 서울 섬갤러리), [남도의 풍경과 삶](2011, 광주시립미술관), [한중당대미술초대전](2012), [한국전업작가협회 광주지회전](2013, 광주시립미술관 금남로분관), [원로작가초대전](2015, 광주시립미술관 금남로분관), [아카이브프로젝트-호남미술을 듣다](2015, 광주시립미술관), [오래된 대장간](2018, 광주 은암미술관), [전라천년](2019, 국립광주박물관), [조선대학교미술관30주년전](2019, 광주 조선대학교미술관), [봄나들이](2022, 함평군립미술관), [기증의 시작](2022, 광주시립미술관), [수집-호남의 기억과 시간](2024, 광주시립미술관), [무등에서 영산으로](2024, 광주시립미술관) 등의 전시에 출품하였다.

    한국예총회장상(1974), 일본 서부시현회西部示現會 장려상(1976), 전라남도 문화상(1979), 오지호미술상(2006), 한국미술인상(2011), 원진미술상(2013), 광주광역시 문화예술상(2014) 등을 수상했다.

    광주일요화가회 회장(1~10, 1967~1977), 광주미술협회 제2대 회장(1989~1991) 등을 역임하였고, 대한민국미술미술대전·전남도전·광주시전·무등미술대전 등의 심사를 맡기도 했다. 상형전·황토회 회원과 한국미협 이사였으며, 현재 광주미술협회 고문, 광주미술상운영위원회 지도위원이다.



    작가의 작품세계

    "언제부턴지 화백의 바깥나들이가 잦기에 행여 숨겨 논 애인이라도? 하며 미심쩍어 했었는데 알고보니 그의 그림은 이곳에서보다는 일본의 구류매(久留米), 마쓰에(松江), 요나고(米子) 등지에서 개인전을 통해 아사히(朝日), 요미우리(讀賣), 마이니찌(每日) 등 유명언론을 비롯 기타 지방 신문에까지 대서특필되어 있었고, 이곳에는 한마디 소문도 없이 프랑스, 러시아, 중국, 불가리아뿐이랴. 독일에서는 베를린과 프랑크푸르트 시장 등으로부터 감사장을 받았고, 미국에서도 초대작품이 전시되었으니 말대로 개선장군의 묵묵한 행진이 밖에서가 안에서보다 한결 당당하였다. 본시 우리나라의 유명 작품은 모름지기 외국으로부터의 역수입이라야 한다는 사대주의적 폐습 그대로였다.

    이 분의 인품이나 듬직한 용모뿐 아니라 그의 작품마저도 한마디로 두터울 후(厚) 자(字)만이 가장 제격일 것으로 나는 믿고 있다. 그의 모든 면에서 인간적인 중후감(重厚感)을 느낀다는 것이다.

    우연찮게 햇볕이 연하게 스민 이 분의 화실 여기저기에 늘어져 있는 캔버스를 차분히 대할 기회가 있었다. 나는 연신 무릎을 쳤다. 쪼께 건방진 소리 같지만 얼른 보기엔 그림마다 짙게만 보였던 색채 바닥 밑 깊숙이 깔려있는 그가 늘 주창하는 인상파적 감성을 비로소 느끼게 된 까닭이리라. 그 색채의 아름다움은 함성을 지를만큼 감동 그것이었다. 그러다보니 후한 듯 싶기만 했던 그림 밑바닥 깊이 깔려 댓생의 흔적마저 말끔히 빨려들어 감추어진 듯이 보이지 않는 이 분의 섬세한 솜씨를 가까스로 터득하기에 이르렀다. 되풀이컨대 흔적조차도 말끔히 빨려있는 너무나도 숨겨진 인상파적 장르를 완연히 엿볼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이 분의 작품은 모름지기 태양광선이 이어져 있어야 한다는 내 느낌이 어쩜 고정관념처럼 되어 버렸다.

    결론인 즉 두터울 후(厚)에다 백색(白色)의 즐거움(悅)을 겹쳐놓은 예술이 바로 김영태 화백의 인품이며, 예술이고 또한 철학이란다면 내 주제넘는 사설일까..."

    - 손 철 (의학박사)



    연락처
    광주광역시 동구 소태동 359번지
    062-234-1242
    김영태 <산촌에서>, 1979, 캔버스에 유채, 95x128cm
    김영태 <산촌에서>, 1979, 캔버스에 유채, 95x128cm

    김영태 <어촌이 보이는 풍경>, 1985, 캔버스에 유채
    김영태 <어촌이 보이는 풍경>, 1985, 캔버스에 유채

    김영태 &lt;카투만두에서&gt;, 1994, 캔버스에 유채, 53x65.1cm
    김영태 <카투만두에서>, 1994, 캔버스에 유채, 53x65.1cm

    김영태 &lt;마사이 족&gt;, 1996, 캔버스에 유채, 45.5x53cm
    김영태 <마사이 족>, 1996, 캔버스에 유채, 45.5x53cm

    김영태 &lt;바다가 보이는 풍경&gt;, 1996, 캔버스에 유채, 50x60.6cm
    김영태 <바다가 보이는 풍경>, 1996, 캔버스에 유채, 50x60.6cm

    김영태 <돌산에서>, 2006, 캔버스에 유채, 53x45.5cm
    김영태 <돌산에서>, 2006, 캔버스에 유채, 53x45.5cm

    김영태 &lt;월출산&gt;, 2008, 캔버스에 유채, 60.6x72.7cm
    김영태 <월출산>, 2008, 캔버스에 유채, 60.6x72.7cm

    김영태 &lt;2월의 무등산&gt;, 2015, 캔버스에 유채, 60.6x72.7cm
    김영태 <2월의 무등산>, 2015, 캔버스에 유채, 60.6x72.7cm

    김영태 &lt;코르도바&gt;, 2024, 캔버스에 유채, 117x91cm
    김영태 <코르도바>, 2024, 캔버스에 유채, 117x91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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