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모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약력소개 서양화가 김병모(金炳模)는 1949년 전북 남원 출생으로 조선대학교 미술학과와 동대학원 순수미술학과를 졸업하였다. 모교인 조선대학교 부속고등학교 미술교사로 재직하면서 1984년 광주 아카데미미술관에서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1988‧1994(광주 인재미술관), 1996(광주 궁동미술관), 1997(압록강 2000리 100점전), 1998(갤러리 LGF), 1999(광주 갤러리 궁전), 2004(광주 갤러리 상계), 2006(광주 갤러리 창), 2008(부산 갤러리 다다아트), 2010(광주 갤러리 D), 2011(광주 갤러리K ‘그림놀이’), 2017(광주 갤러리 봄 ‘무등산 아래’) 등 15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이와 함께 [창립10주년 무등회전](1988), [신작전](1988), [롯데 잠실미술관 300호 초대전](1989), [50인의 풍경과 인물](1993, 서울시립미술관), [오견규‧김병모‧정광주‧이부재 4인전](1994, 광주 궁전갤러리), [광주미술상 기금마련전](1996, 광주 조흥문화관), [제13회 신작전](1996, 서울갤러리), [제36회 신미술회](1996, 서울갤러리), [제16회 신작전](1998), [아름다운 장성](1998), [금강산전](1999), [남도현대미술의 오늘](2002, 자미갤러리 개관기념), [제6회 광주건축사미술동호회 회원전](2003), [광주미술의 어제와 오늘](2015, 광주시립미술관 상록전시관], [아트광주16](2016,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광주미술상 24주년 기념전](2018, 광주 은암미술관)을 비롯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서울 인데코화랑 개관기념 초대전], [롯데미술관 기획-한국의 산], [서울시립미술관기획 300호 초대전], [일본나고야교류전], [프랑스 비사비교류전], [한국의 산](롯데미술관), [[광주국제아트페어(아트광주)] 등 국내외 전시에 출품하였다. ‘신작전’ 창립회원, 광주미술협회‧한국미술협회 회원, 무등회 회장, 광주미술상운영위원회 운영위원, [광주광역시미술대전] [무등미술대전] [전라남도미술대전] [전라북도미술대전] 초대작가와 심사위원, 전남대‧조선대 외래교수, 아시아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 등으로 활동하였다. 조선대학교 부속고등학교 미술교사를 정년퇴직한 뒤 전업작가로 활동하며 한 때 지산동에서 갤러리K를 운영하기도 하다가 2019년 향년 71세로 타계하였다. 작가의 작품세계 “대자연을 접함에 있어 절제된 색채와 내용으로 압축하여 평면화 시키고자 하는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점 하나로 모든 것을 표현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중이나 쉬운 작업만은 아닌 것 같다. 태생이 전라도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무등산 아래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감정을 표현하고자 대자연 속에 아름다운 곳이나 형상이 다른 곳 또는 시각을 달리 볼 수 있는 곳을 찾아다니면서 작업을 했으나 지금은 실내에서 주로 작업을 하는데 ‘그렇게 될 것이다’ 또는 ‘그렇게 되어 질 것이다’라는 가정 하에 색채와 형태로 공간 구성을 제작하고 있는 중이다. 일반인들은 즐거운 시상이 떠올라도 그 시상을 기록하지 않지만 그 시상을 기록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곧 시인이며 자연을 보고 시각적으로 표현 하는 자가 있다면 화가일 것이다. 일반인들이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생각과 시각으로 표현하여 감상자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예술의 사회적 역할이 아니겠는가 생각한다." - 김병모 인터뷰 기사 중 (지방자치일보 2017.03.17.) “그에게 다작은 순발력으로 읽혔다. 즉 그만큼 순발력을 빠르게 발휘해낸다는 의미를 전제하고 있었다. 스케치여행을 떠나 순간순간의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하루 20∼30장을 소화해낸데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됐다. 그는 결단코 깊이와는 무관하다는 확신이다. 점 하나를 찍어도 표현이 될 뿐만 아니라 감성을 시각화시키는 것이어서 깊이와 관련지어 바라보거나 해석하는 것은 또 다른 편견이라는 설명이다. “시각화해 보여지는 부분만 가지고 다작을 폄하하거나 왜곡해서는 안됩니다. 표현하는 대상에 한계가 없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자신이 다룰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얼마든지 다작을 할 수 있는 것이죠.” 다작의 또 다른 해석은 작가적 태도와 연관 지을 수 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오로지 그림을 그리는데 시간을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창작의 시점이나 포인트가 가장 적절할 때를 기다렸다가 작업을 하기 보다는 그 스스로 찾아 나서서 작업을 펼친다. 그것이 그가 말하는 다작의 전제조건들이다. “저는 자연을 볼 때 부분에서 부분을 확대하고 축소하는 과정을 거치고, 넓은 대자연을 평면적으로 재구성하는데 주력하고 있다고 볼 수 있어요. 이렇게 재구성한 작품들은 우리 인간에게 명명하듯 풍경에 적절한 그때그때의 감성적 이름이 명명되곤 하기도 하죠. 그림을 쭉 그려왔는데… 쾌감이 있죠. 그 쾌감에 도취될 때가 많은데 그게 작업 아니겠어요. 화면에 펼쳐지는 색채와 재구성한 자연의 쾌감을 다른 사람은 느끼지 못할 겁니다. 저는 즐거움으로 미술을 맞이하고 있어요.” - 고선주 기자(광남일보 2016.12.11) 연락처 광주광역시 동구 지산2동 707-20 062-233-1717 (2019년 작고) 김병모 <누드>, 1990, 캔버스에 유화김병모 <노인초상>, 1993, 캔버스에 유화김병모 <노란 가을>, 2001. 290x163cm. 185x151cm 3폭김병모 <흰구름>, 2004, 캔버스에 아크릴, 95x95cm김병모 <무릉도원>, 2015, 캔버스에 유화, 91x91cm김병모 <천년을 앉아>, 2016, 캔버스에 유화, 블로그ori2k김병모 <봄날의 월척>, 2017, 캔버스에 유화김병모 <왕포의 오후>, 2018, 캔버스에 유화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