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자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약력소개 호남 첫 여성 서양화가인 김영자는 1922년 목포 출생으로 고교시절 [조선미술전람회](선전)에 입선하고 졸업 후 1935년 일본 유학을 떠나 1943년 동경 우에노미술전문학교에 입학하여 서양화를 전공하던 중 2년 만에 중퇴했다. 1945(1949)년 목포공보관에서 첫 개인전을 비롯해 광주‧대전‧전주‧부산 등지와 타계하기 직전인 2014년 목포 호텔현대 갤러리 초대전 등 60여 회의 개인전을 가졌다. 1997 [개항 100주년 초대전](1997, 목포), [르 살롱 초대작가전](1988, 파리) 등에 참여했다. 한때 목포여중 미술교사로 후진을 지도하였고, 1970년대 중반 광주에서 잠시 미술연구소를 운영했으며, 전국을 돌며 전시회를 열다가 1984년 목포에 돌아와 정착한 뒤 예목회 회장, 유달산꽃축제대회장, 예향목포인연합회장, 한국예총 목포지회 고문, 남농미술대전 심사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전라남도문화예술상, 한국예술인총연합회 문화예술대상 등을 수상했다. 2013년 목포시에 많은 작품을 기증하여 전남여성플라자(후에 전남여성가족재단)에 김영자미술기념관을 개관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2015년 향년 93세로 타계했다. 작가의 작품세계 주로 주변 풍경과 농악, 장터, 투계 등 한국적 소재로 역동적인 화풍을 즐겼고, 속도감 있는 유화 크로키가 많다. “농악은 소리와 힘이다. 농악패의 힘을 표현하는 방식은 이미 여러 차례 그렸는데 그렇다면 소리를 어떻게 캔버스에 넣을까. 점을 시작으로 중간에서부터 그림을 주변으로 확산해 가자. 소리의 파장이 가운데에서 시작하여 군중들까지 퍼져나가는 것을 그리자.” - [김영자, 소설 같은 그림인생] 중 연락처 전라남도 무안군 삼향읍 어진누리길 30 전남여성가족재단 김영자미술기념관 (061-260-7300) 김영자 <봄의 여인>, 1974, 캔버스에 유채김영자 <(두 여인)>, 1984, 캔버스에 유채, 개인 소장김영자 <농악>, 1982, 종이에 크로키김영자 <투계>, 1986, 종이에 크로키김영자 <우장>, 1988, 종이에 크로키김영자 <소나기>, 2013, 캔버스에 유채김영자 <농악>, 1998, 종이에 크로키김영자 <농악>, 2013, 캔버스에 유채, 1000호.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