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승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약력소개 화가 정희승은 1963년 광주에서 태어나 호남대학교 미술학과를 졸업하였다. 1885년 목판화3인전 이후 1997년(서울 덕원갤러리, 광주 인재갤러리)과 2000(광주 남봉갤러리), 2002(광주 구씨네갤러리), 2009년(광주 5.18기념문화관)에 개인전을 가졌다. 이와 함께 [광주전남목판화연구회전](1990, 광주 인재미술관), [일하는 사람들](1991,광주 가든갤러리), [전국청년미술제](1991~92, 광주 조선대미술관 등 전국순회), [오월전](1991~, 5·18묘역과 금남로 등), [삶의현장전](1992, 광주 인재미술관), [동학농민혁명100주년기념전](1994, 광주시립민속박물관), [민중미술15년전](1994,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95광주통일미술제](1995, 광주 망월동 오월묘역), [민중미술15년전](1995,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97광주통일미술제](1997, 광주 망월동 오월묘역), [JAALA](1998, 동경), [영호남민족미술교류전](1999~00), [한라와 무등-역사의 맥](2001, 광주, 제주), [꽃으로 본 오월전](2001, 광주 북구문화의집), [우리는 하나](2002, 광주 북구청), [현대작가초대전](2005, 광주 남구문예회관), [민족미술인협의회 광주지회창립전-핀치히터](2005, 구 전남도청), [한반도ing](2006, 구 전남도청), [6.10항쟁 20주년기념전](2007, 구 전남도청), [백일몽-꿈속의 현실을 보다](2008, 5.18기념문화관), [탐매-그림으로 피어난 매화](2009, 국립광주박물관), [그림에게 말을 걸다](2009, 무돌아트갤러리), [오월전-오월의 유전자](2016, 광주시립미술관 금남로분관), [오월전-바람의 길](2018, 광주 양림미술관), [오월전-빨간 메이라](2019, 광주 양림미술관), [518개 표정](2020, 광주 5‧18민주광장), [놈놈놈 얼굴전](2020, 광주 금남로3가) 등의 전시에 참여하였다. 호남대학교 미술패 '매', 광주미술인공동체 창작단, 광주전남미술인공동체 회장, 미술인연대 전시위원장, 제5회 광주비엔날레 현장3 공동큐레이터 등으로 활동했고, 현재 광주민미협, 광주민예총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작가의 작품세계 “정희승이 그동안 세상을 향한 자신의 몸집 큰 시선을 거두고 이제 낮고 잔잔한 눈빛으로 별처럼 아름답고 작은 사물들에 자신의 따스한 숨결을 불어넣고 있다. 그리고 그는 과거와 미래, 성과 숙, 삶과 예술의 접경들에 놓인 투면한 유리질의 벽에 매일 이마를 부딪치며 자기 세계의 안과 밖을 화해시키려는 어떤 창조를 꿈꾸고 있다. 그가 아름다운 세상과 아름다운 그림을 위해 싸우고 어깨 결었던 조직 ’광미공‘ 안에서는 미처 잡아낼 틈새가 없었던 개인 일상의 가느다란 추억과 아린 상처들을 꺼내어, 낳을수록 지난 시간들이 눈물겨워지는 풍경을 그는 지금 곱고 촉촉한 붓길로 찍어내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제2회 전시회(2000)에 이어 이번에도 대부분 위에서 아래를 조망하는 구도를 보여주고 있다. 한 2층 높이의 그의 ‘창’은 이즈음 세상을 바라보는 정희승이 서늘한 눈높이가 되어 있었고 말 빛이 새어나오는 통로가 되기도 했다. 물론 이것이 그만의 특징은 아니다. 초기 미술운동에서 자주 등장하던 오월전사나 노동자상을 그릴 때 종종 고원법적 시선으로 대상을 잡아 힘을 강조했다면 세월의 흐름과 함께 차츰 나와 타자 사이가 중경으로 밀쳐진 한결 시원한 평원시법의 활용이 두드러졌는데 그래 들어서는 드넓은 세상사물을 굽어보는 방식으로 문득 환해진 측변이 있으니. 그런 의미에서 볼 때 그는 이 ‘높이와 창’의 느린 수사(修辭), 시점의 수직 수평 이동 이후의 문제를 놓고 지금쯤 대상과 자신에게 잡혀진 주름살 많고 더 넓혀진 시공간적 상상을 펼치고 있었는지 모른다. 또한 그것은 단순히 시점과 회화적 입맛의 문제를 뛰어넘어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자신만의 독보적인 미술세계를 보이기 위한 준비자세를 슬슬 가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 김진수(화가). 2002년 정희승 개인전 팸플릿 서문에서 “그에게 “삶이란 각자의 꿈과 이상향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언제까지고 청년세대일 수만은 없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 현재를 박차고 나갈 뚜렷한 길을 찾고, 자기 내부로부터 그 동력을 돋워내고 싶었던 거다. 말하자면, 사실주의를 추구하는 작가적 태도와 의식, 회화적 표현형식 이상으로 창의적 가치를 더하고 싶은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현실풍경만이 아닌, 그 속에 담긴 동시대 삶의 속내를 읽어내는 사실화법을 변함없이 취하면서 말이다. 그런 회화적 변모의 소재로 삼은 것이 ‘화투 花鬪’다. 더없이 통속적이고 대중문화의 표상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화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특징과 가치를 우리시대 문화에 대입시켜 자신만의 회화세계로 새롭게 재해석해 보고 싶었는데, 그 소재로 화투를 택한 것이다. 대중의 삶 깊숙이에 뿌리내려 오래된 민속놀이처럼 일상의 오락문화가 되어버린 화투에서 시대를 읽어낼 수 있는 단초들을 발견해 낸 셈이다. 대부분 대중문화의 세태나 과도한 인간욕망, 현실에 드리워진 정치ㆍ경제 또는 정책의 그늘과 모순을 풍자적으로 함축시켜내는 수단이면서, 통상적인 화투도상에 일상에서 무시로 접하는 삶의 단편들을 엮어 생각꺼리가 있는 생활풍속도를 묘사해낸 것들이다. 눈에 보여지는 풍경과 그 뒤에 가려진 시대의 그림자, 누군가에게는 정반대인 현실 삶의 단편들을 역설로 풍자해내는 화법들이다. 방편으로 취한 하나하나의 도상이나 그림 자체보다는 담아내려 하는 ‘세상이야기’에 훨씬 더 큰 무게를 두고 있는데, 그런 주제가 있는 그림의 이야기 전개 효과를 위해 회화적 묘법의 흔적을 최대한 절제시키고 있다. 생활과 밀착되어 의미와 가치를 지녔던 민화의 쉬운 도상들과 일정한 상징체계, 이와 더불어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의 비판의식과 팝아트의 대중적 요소들을 기본 틀로 유지하고 있다.” - 조인호(미술사), 2009년 정희승 개인전 팸플릿 서문에서 연락처 광주광역시 동구 산수동 24-1 2층화실 010-8611-4270 jart515@hanmail.net 정희승 <짐을 진 남자>, 1990, 목판화, 38.5x25.3cm정희승 <광주민중항쟁연작판화-핏빛 오월>, 1991, 목판화, 58x43cm정희승 <보리밭>, 1991, 캔버스에 유채, 122x180cm정희승 <천변풍경>, 1993, 종이에 파스텔, 74x54.7cm정희승 <비상구>, 1998, 캔버스 유채, 91.5x147.5cm정희승 <봄비>, 2000, 캔버스에 유채, 53x41cm정희승 <세개의 별>, 2009, 캔버스에 아크릴릭, 162x130.3cm정희승 <생명의 물>, 2009, 캔버스에 아크릴릭, 390.9x162cm정희승 <나는 너다>, 2000, 캔버스에 유채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