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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시대의작가들/회화

    오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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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력소개

    오승우 화백은 1930년 전남 화순에서 오지호 화백의 차남으로 태어나 조선대학교 예술과에서 서양화를 전공하였다. 1961(광주 YMCA화랑), 1962(광주 양지다방), 1965(서울 신문회관 갤러리), 1982(서울 선화랑), 1995(서울 예술의전당, 부산문화회관, 대구문화회관), 1996(광주시립미술관), 20012008(서울 예술의전당 미술관), 2010(서울시립미술관), 2015(과천 국립현대미술관), 2016(광주시립미술관), 2018(조선대학교 김보현&실비아올드미술관) 등의 개인전을 가졌다.

    단체전으로는 [한국현대미술 어제와 오늘](1986,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미술대전](1986, 1987. 서울시립미술관), [목우회 일본 북해도교류전](1988), [광주전남미술50년전](1989, 조선대학교미술관), [목우회 길림성합동전](1990, 서울시립미술관), [목우회 몽골 합동전](1992, 국립현대미술관), [한국100산전](1995, 한가람미술관), [대한민국 원로작가초대전](1996, 서울시립미술관), [예술원 미술전](1996, 대한민국예술원 미술관), [아름다운 한국전](1999, 서울 서림화랑), [한국미술 99: 인간 자연 사물](2000,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당대 한중 대표작가 연합전](2002), [산산산의 산](2006, 인사갤러리), [28회 대한민국예술원 미술전 대구전](2006, 대구문화예술회관), [한국 현대 구상회화의 흐름전](2008, 서울시립미술관), [전라도 천년](2019, 국립광주박물관), [남도미술의 뿌리](2019, 광주시립미술관), [남도구상회화의 맥](2021, 무안군오승우미술관) 등의 전시에 참여하였다.

    [국전]에서 1957년부터 1960년까지 연속 4회 특선하여 1961년 추천작가, 1969년 초대작가로 지정되었다. 5.16민족상 작품상(1972, 미술부문), 서울시 문화상(1990), 대한민국 옥관문화훈장(1992), 40회 대한민국예술원상(1995, 미술부문), 성옥문화상 대상(1997, 예술부문), 30회 대한민국문화예술상(1998, 미술부문), 은관문화훈장(2011) 등을 수상하였고, 구라파풍경(1976), 아프리카풍물화문집(1982), 남미풍물(1993),오승우한국100(1995), 오승우 동양의 원형(2001) 등 화집을 발간하였다.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초대작가 및 심사위원·운영위원, 서울미술대전 초대작가 및 추진위원, 한국미술가협회 고문을 역임하였고, 목우회 회장과 고문, 대한민국예술원 미술분과 회원이었다.

    2023년 향년 93세로 타계하였다.

     



    작가의 작품세계

    동양의 원형을 찾아서

    1974년 유럽에 가서 1년간을 머물렀다. 나는 유럽일대를 여행하면서 그들이 만들어 놓은 장엄하고도 아름다운 성과 성당들, 궁전과 개선문 등의 건축물들, 공원이나 네거리에 늠름하게 서있는 彫像, 미술관에 걸려있는 수많은 태서 명화들과 현대작품들, 인간 능력으로는 더 이상 해낼 수 없는 신필의 경지에 이른 이들의 예술품을 본 후로는 오랫동안 위축되고 기가 죽어 있었다. 그림을 시작한 자신이 얼마나 초라하고 후회스러웠는지 모른다.
    그러다가 90년 우연한 기회에 중국여행을 하게 되었다. 자금성을 보는 순간 아무런 설명을 듣지 않고도 찬란한 문화라는 것을 직감하였다. 그 규모나 건축술, 예술성이 서양의 것과 양식이 다를 뿐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니 그동안 움츠렸던 가슴이 펴지고 자부심도 생겼다. 이 유적들이 비록 우리나라 것이 아니지만 동양인도 할 수 있다는 확신과 가능성을 보여준 거대한 증거물이었다. 나는 이 장엄한 유적물을 모두 화폭에 담고 싶은 심경이 불꽃처럼 일어났다.
    내가 스물다섯이었던 청년시절 불교미술과 접할 기회가 있었다. 원색적인 색채의 조화가 강렬하고 원시적인 미를 느끼게 하였다. 처음 찾은 곳이 해남 대흥사 대웅전이었다그 황홀함은 별천지에 온 느낌이었다김제 금산사 미륵불구례 화엄사 각황전보은 법주사 팔상전양산 통도사 금강계단한여름 폭염이 내려쪼이는 절마당에서 한달을 그린 것이 마지막 특선으로 29세 나이로 추천작가가 된 작품이었다. 그후 해인사, 마곡사 등 고찰과 경복궁, 덕수궁, 창경궁 등 31세까지 7년간 고적을 그렸다. 그 이후 더 그릴만한 소재가 없어 요정(妖精), 민속놀이, 한국 100산 등 소재를 바꾸어 그려 고적 시리즈는 오랜기간 동면에 들어갔다.

    어느날 새벽 화면을 바라보고 있으니 화면에서 심한 질책의 소리가 들려왔다. ‘이봐, 그림이 어려운 것을 이제야 알았나. 자네 노력과 역량이 부족한 거야. 뼈를 깎는 고통 없이 어떻게 좋은 작품이 나오기를 바라나. 이 많은 인류유산 건축물들 어느 하나 쉽게 적당히 만든 것이라곤 하나도 없네. 인간능력의 한계까지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 놓은 것을 보고 겉만 그리려 하는 자네 태도가 경솔한 거야. 하루 8시간 작업했으면 2배로 16시간으로 늘리게. 평생을 해도 이루지 못하는 것이 예술이안 것을 들어보지도 못했나. 한달도 못그리고 낙담하고 실망하려거든 일찌감치 돌아가든가 그림을 포기하든가 하는 것이 좋을 걸세. 어떻게 그려야 할지 답이 나오지 않으면 답이 나올 때까지 백일기도하듯 작품을 들여다보게.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언젠가는 답이 나올 걸세.’

    - 오승우 [동양의 원형](2001, 동서문화사)에서 발췌

     



    연락처

    서울시 서대문구 홍은동 277-68

    02-302-4906

    오승우|통도사 금강계단|1960|
    오승우_통도사 금강계단_1960_

    오승우|閑日|1964|
    오승우_閑日_1964_

    오승우|백두산|1991|
    오승우_백두산_1991_

    오승우|자금성_午門|1996|
    오승우_자금성_午門_1996_

    오승우|십장생 no.28|2003|
    오승우_십장생 no.28_2003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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