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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판적 사고의 수용 혹은 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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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고영재 작성일15-06-08 12:58 조회2,66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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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판적 사고의 수용 혹은 거부

    "어젯밤 술이 덜 깬 흐릿한 두 눈으로, 자판기 커피 한잔 구겨진 셔츠 샐러리맨, 기계 부속품처럼 큰 빌딩 속에 앉아, 점점 빨리 가는 세월들, 손엔 휴대전화, 허리엔 삐삐차고, 직장이란 전쟁터, 회색빛의 하늘과 회색얼굴의 사람들. This is the city life "

    1992년 발매, 넥스트 1Home에 수록된 <도시인> 가사 중 일부이다.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90년대 락의 대중화를 이끌고, 오버그라운드에서는 드물었던 프로그레시브 음악의 역량을 보여준 신해철, 그의 음악적 성과 중 으뜸은 대중음악에 자아성찰의 내용과 사회비판적 메시지를 담았다는 점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설 자리를 잃어가는 가장, 동성동본 금혼문제, 물질만능, 환경파괴, 낙태, 교육 현실, 그리고 현대인의 허무까지 거침없이 이야기한 그의 이력은 진지한 사고와 태도를 수용할 수 있었던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를 증명한다. 언젠가 그가 인터뷰에서 음악은 시대를 투영하고, 혹여 내 음악이 듣기 불편하다면 시대가 그만큼 오염된 것이다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예술에서 안식과 편안함을 찾고, 더불어 힐링과 재미를 부르짖는 시기에 사회성을 담아내는 문화는 도리어 메시지의 강요와 강박적 태도로 비춰지기도 한다. 달리 보면 그러한 태도들이 외면하고 싶은 불편함혹은 지겨움으로 치부되는 때이지만, 사회비판적 메시지가 넘쳐나는 현 대중문화의 분위기를 견줄 때, 일종의 부정교합의 간극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상류층의 속물근성 및 을에 대한 갑의 헤게모니를 담은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 대형마트의 비정규직 부당해고를 그려낸 영화 <카트>, 소진증후군을 앓고 사는 샐러리맨들의 현실이 반영된 <미생>, 교육이 붕괴되는 현실을 충격적으로 보여준 <앵그리맘>, 대기업의 비윤리성을 고발한 영화 <또 하나의 약속>, 해고 노동자의 삶을 모티브로 한 수사 드라마 <실종 느와르 M>의 에피소드 등, 회적 약자들을 전면에 내세우는 미디어 제작물들이 요사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현상이 미디어의 가차 없는 사회고발에 대한 일종의 대리만족일 수도 있지만, 을의 권리 찾기에 대한 문제 인식과 더불어, 내 삶의 현실을 마치 근거리에서 포착한 듯한 이야기 구성과 연출력은 보는 이로 하여금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에 반해 유독 미술과 음악 장르에서는 아직까지 사회적 현실이 드러나는 게 불편하다. 예술분야에 대한 순수성 확보, 또는 보기 편한 미술, 귀를 즐겁게 해주는 음악이라는 통상적 인식의 탓이 크겠지만, 무엇보다 이들 장르가 진행형의 현실을 담지 못했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다.

    지난 5월 중순께 대인시장 내 <창작스튜디오 다다>에서는 8-90년대 걸개그림의 미술사적 의의를 되짚어 보는 세미나가 진행되었다. 당시의 학내 미술운동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어 모진 고문을 받았던 모 작가는 계속 비판적 성향의 작업을 지속할 것이라 했다. 주장의 연유는 우리 사회가 당시의 80년대와 달라진 게 없다는 것에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진실이고 너희는 그릇되었어식의 사고를 지양해야겠지만, 심중에서는 그 작가의 다짐이 수긍되었다. 한편으로는 현재의 예술이 무엇을 담아낼 수 있으며, 또한 공감할 수 있는 언어와 형식이 무엇일까 고민이 된다.

    이젠 살아남는 게 목적인 세대는 갔다. 어떻게 사느냐가 문제인 세대가 왔다라는 넥스트 3집의 수록곡 <The age of no god>의 가사가 외려 역설로 다가오는 지금이다. 어떻게 사느냐를 고민해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점점 살아남는 게 목적인 시대로 역행하고 있다. 반복하지만 예술은 무엇을 담아내야 하며,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언어와 태도는 무엇일까? 생각이 많아지는 요즘이다.

     - 고영재 (광주 롯데갤러리 큐레이터, 전남매일 칼럼 2016. 6. 8일자)

    * 작품사진 : 박수만 <택배> 2013, 146X112cm.캔버스에 유화 (칼럼내용과 직접 관계는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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