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우 회화에서 ‘남미‧구라파 풍경’과 ‘한국의 100산’ 연구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광주미연 (121.♡.42.211) 작성일21-09-30 14:41 조회2,073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오승우 <백두산 I>, 1991, 캔버스에 유화, 259x182cm, 동신대학교 소장 오승우 회화에서 ‘남미‧구라파 풍경’과‘한국의 100산’연구 무안군오승우미술관 학술연구사업으로 광주미술문화연구소 집필 원로작가 오승우 화백(1930~ )의 1970~80년대 회화세계를 집중 조명해보는 연구물이 나왔다. 무안군오승우미술관(관장 박현화)이 지난해부터 연차별로 추진 중인 연구사업으로 광주미술문화연구소에서 집필을 맡아 [오승우 회화연구 Ⅱ] 연구논문집(2021.9.28 출판)을 펴냈다. 이 시기는 오 화백이 독자적인 회화세계를 모색하기 위해 남미와 유럽 등지를 장기간 체류 여행하며 넓은 시야에서 자신의 작업을 비춰보고 객관화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한국의 100산 연작을 집중 작업했던 시절이다. 그만큼 오화백의 70여년 화업에서 가장 치열하게 정진했던 시기이고, 그런 열정과 산세의 특징과 기운을 강렬하게 담아낸 한국의 100산은 그의 대표적인 작품들로 꼽힌다. 따라서 이번 논문집은 그 1970~80년대 오 화백의 활동과 작품세계에서 두드러지는 지점을 주된 연구 논제로 삼고 있다. 먼저 이번 연구의 도입부에는 이 시기 한국 서양화단 상황과 오승우의 당시 활동을 개괄적으로 살펴보는 ‘1970~80년대 한국현대미술과 오승우의 화단활동’(조인호 광주미술문화연구소 대표)이 간략히 정리되었다. 단계별 5개년 경제개발 정책에 따른 경제성장으로 미술활동의 증가, 미술계의 이해관계 충돌과 운영상의 난맥을 보이기도 한 [국전]과 그와 다른 장으로 펼쳐진 언론사 주최의 [민전]들, 단색조‧개념예술‧극사실 등 다변화, 예술의 사회현실 참여, 구상화단의 동향과 목우회와 오승우의 화단활동 등이 다뤄져 있다. 이 글의 말미에서 필자 조인호는 “오승우의 회화세계는 한국 현대미술의 시대사적 변화의 최 일선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시대현실과 사회적 이슈에 직접 대응하기보다는 현상 너머에서 우러나는 자연생명계의 기운이나 문화적 원형에 대해 직관과 상상, 내적 교감을 회화적 묘법과 결합시켜 구상과 정신성을 충족시켜내었던 것이다.”고 보았다. 이어 ‘1970~80년대 오승우 회화의 미학적 분석과 남미‧구라파 풍경’(김병헌 소촌아트팩토리 센터장)에서는 인상주의와 한국적 인상주의, 오승우의 구라파 풍경화와 남미 풍경화를 단원별로 다루고 있다. 여기에서 김병헌은 “오승우의 작업은 초기부터 근본적인 면에 있어서는 동일한 원리를 따르고 있다. 그 도식은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자라오면서 변화해 온 것이 분명하다. 여기에는 부친의 영향이 크다고 본다…그는 수없이 도식에 맞추고 수정하고 다시 만드는 작업을 통해 점차 자신만의 지각세계를 구축해 갔다고 보인다.”며 “1974년에 우연히 시작된 구라파와 미국으로의 여행길은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이 시기에 보이는 스케치처럼 대상을 그리는 표현은 눈앞의 대상을 보다 단순화된 기호로 나타낼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이것은 그가 점차 대상이 지닌 특징들을 압축해서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오승우의 작업은 한국적 정서에서 비롯된 것으로 작가 개인이 세계를 파악해서 바라보는 행위가 끊임없는 발전과정의 결과.”라고 파악하였다. 아울러 ‘오승우의 한국의 100산 연구’(문희영 예술공간 집 관장)는 100산 제작의 계기와 함께 시기별, 장소적 분류로서 100산을 분석하고 한국의 자연이나 우리문화 동양문화와의 관계 속에서 100산의 예술적 의의를 다루고 있다. 문희영은 오승우의 예술세계는 “구상회화로 출발하여 우리 자연의 근원을 찾아가고 종국에는 외면과 내면이 합일된 세계로, 거대한 문명의 원형으로 나아가기에 이른다.”고 먼저 큰 흐름을 잡았다. 그 예술여정에서 한국의 100산은 “거대한 화폭을 가로지르는 산맥의 선들은 요동치듯 솟아오르는 기운… 작품 안에 담긴 작가의 영혼이 건네주는 힘의 전율”이 담겨 있다고 보았다. 그러면서 “오승우의 100산에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요령이고 꼼수”라며 “작가가 택한 정공법은 그리고자 한 대상을 나 스스로 완벽하게 알아간다는 단순한 진리였다… 민족의 뿌리를 찾으며 더 깊이 동양의 근원으로, 또 궁극적 초월적 이상향의 유토피아인 십장생도에 이르는 길의 첫 여정인 셈이다.”고 정리하였다. 예술작품은 그 자체로 빛날 수도 있지만 배경과 전‧후 관계와 작가의 속내에 관한 이해 정도에 따라 교감의 깊이는 달라진다. 오승우 화백의 화업에서 중심부를 통과하는 중년기인 1970~80년대 작업들은 그에게 주어진 부친 오지호의 후광과 [국전]에서의 이른 성취 등에 안주하지 않고 회화의 근본과 독자적인 화업을 일구기 위해 치열하게 정진했던 흔적들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연구는 지난해 진행한 청년기(1960년대 이전)와 향후 연구과제로 이어질 1990년대 이후 작품들과의 연결 속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고 본다. 우리 주변에는 대규모 기증작을 자산으로 삼아 미술관을 운영하는 곳이 늘어간다. 그것이 공립이든 사립이든 기증받아 소장한 작가나 작품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는 그 미술관의 최우선 과업이면서 정체성을 명확히 살려가는 바탕이 될 것이다. 사실 기본적인 연구 기획사업은 소홀한 채 구색 맞추기 전시나 행사 정도를 유지하면서 작품 수장공간 기능에 그치고 있는 곳도 적지 않다. 그런 일반 예들과 비교하면 기증자 오승우 화백과 소장하게 된 그의 작품들에 대해 연차별 학술적인 연구 출판과 더불어 신선한 기획전들로 미술관의 위상과 역할을 높여가는 무안군오승우미술관의 활동은 주목받을만한 사례일 것이다. - ⓒ광주미술문화연구소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