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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 추상미술 선구자 강용운 양수아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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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광주미연 (218.♡.3.129) 작성일21-11-12 14:55 조회1,9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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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열린 강용운 양수아 재조명 세미나. 광주시립미술관 제공사진 

     

    광주 추상미술 선구자 강용운 양수아 재조명

    2021.11.11() 광주시립미술관 학술세미나에서 다각도 논의 펼쳐

     

    광주 현대미술의 시발점과 진행과정에서 선도적 역할을 했던 양수아(1920~1972), 강용운(1921~2006) 두 작고작가를 미술사 관점에서 재조명하는 학술세미나가 열렸다. 1111() 오후 3시부터 620분까지 광주시립미술관 세미나실에서 열린 광주추상미술의 선구자 강용운과 양수아 재조명 세미나.

    강용운 양수아 두 작가는 지난해와 올해 각각 탄신 100주년을 맞아 광주시립미술관 기획으로 아카이브자료들과 함께 회고전을 가졌고, 그 일환으로 마련된 학술토론의 장이었다. 발제자 3인과 토론자 3인 대부분이 학계나 미술현장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중진 미술사학자, 미술비평가, 미술전문지 발행인들이면서 모두가 외지인들이라는 점에서 두 작가를 객관적이고 학술적인 면에서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기회가 되었다.

    광주미술문화연구소 조인호 대표의 사회로 맨 먼저 발제를 한 이태호 명지대학교 미술사학과 석좌교수는 양수아의 삶과 예술에 대한 재검토를 논제로 삼았다. 무엇보다도 작품이나 자료들에 연도표시가 없어 양수아의 미술사적 분석에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청년시절(40년대 후반에서 50년대) 활동과 비정형 추상으로 들어선 시점을 추적해 새롭게 관련 자료들을 발굴 분석해내어 양수아 연구에 큰 진척을 이루게 한 성과가 고무적이었다.

    특히 이른 일본유학과 수업기, 만주 안동신문 기자 경험과 필력을 바탕으로 1949[1회 국전]에 대한 빈약한 질 량이라는 제목의 동아일보 전시비평을 비롯, 현대미술 흐름을 진단하거나 당시 전시들에 대한 여러 비평적 글들, 삽화가를 꿈꾸던 시절과 박경리 소설 삽화 등을 면밀히 검토하였다. 아울러 대부분 연도표기가 없어 불확실한 부분을 메우기 위해 종이 드로잉들이나 전시브로슈어, 유족이 보관해 온 일본 미술월간지 미술수첩의 실렸던 주요 내용 등을 검토하고, 양수아가 앵포르멜 추상으로 들어서는 시기를 조심스럽게 1955~56년 경으로 추정하기도 하였다.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장을 역임했던 미술사가 조은정 고려대학교 초빙교수는 전후 추상화의 성행과 강용운에 관하여 발제하였다. 먼저 강용운이 추상회화로 들어선 배경을 추적하면서 동경제국미술학교 조선인 유학생 명단에 강용운이 없고, 그에게 지도교수로서 영향을 주었다는 가와구치 기가이가 교수진 명단에 없는 점을 들어 혹 동경제대가 아닌 외부 강습회 등을 통한 사승관계가 아닐지 라는 의견을 내었다. 그러나 창씨개명된 다른 이름으로 등록되어 있을 수 있어 더 세밀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여지를 남겼다.

    이와 함께 1940년대 후반에서 50년대 일본에서 타피에 전시나 구타이 활동, 미국공보원의 관계와 광주 상무대 보병학교 정훈장교 방근택의 전시, 김병기 김영주 박서보 등 전후세대와 조선일보사 현대미술초대전등을 검토하며 강용운 작업과의 관계 등을 유추하였다. 그러면서도 강용운은 외부 흐름을 쫒거나 외적 요인에 영향 받았다기보다는 그 자신의 성향에 따라 야수파적 요소에서 초현실주의의 무의식 같은 것들이 결합되고 점차 앵포르멜로 흐르면서 추상회화에 관한 확고한 이해를 바탕으로 주체화된 과감 대담한 표현형식을 펼칠 수 있었다고 보았다.

    서양미술사학회장이기도 한 국민대학교 김희영교수는 한국 추상화의 여정 : 새로운 현재의 모색을 주제로 한국의 전후 아방가르드 미술과 앵포르멜 관계를 발표하였다. 해방 이후에도 여전히 외부세계 미술정보에 관한 주요 통로였던 일본미술계와의 관계, 타피에의 일본전과 요시하라의 구타이 활동 등과 다다의 저항정신 등을 들며 아방가르드 미술은 전후 인간의식의 표현이자 절망적 해체적 사회분위기 속에서 탄생한 것이 앵포르멜이라고 보았다.

    또한 이러한 전후 추상미술의 현대성에 관한 김영주 등 당시 비평, 작품경향 등과 함께 모더니즘의 관점에서의 그린버그보다는 전후 총체적 위기상황에 대한 인식을 전제로 본 로젠버그의 비판적 관점이 한국 아방가르드미술에 더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강용운과 양수아는 지역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른 시기에 추상의 역사적 출처와 당대와의 관계를 명확히 이해하고 있었고, 특히 강용운은 그러한 인식을 비가시적 형상의 표현에 집중시켜내었다고 보았다.

    이어 종합토론에서 아트인컬처 발행인이기도 한 김복기 경기대 교수는 일제강점기 미술수업과정에서 일본과의 관계나 미아모토 사부로의 전쟁화의 영향, ‘이과전이나 창생파전의 영향 등을 언급하였다. 아울러 한국인 일본유학생 147명 중 60명이 창씨개명자였고, 강용운은 중학교 졸업반부터 이른 일본유학으로 일본이름을 썼을 수도 있으므로 동경제대 유학 진위문제는 더 세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또한 강용운의 회화에는 여러 추상 경향들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인데도 거대담론에 작가를 묶어두는 것은 아닌지, 예술적 성공만이 아닌 좌절과 고통의 흔적들에 대한 이해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부산시립미술관장을 지낸 바 있는 미술사학자 김영순은 그동안 한국미술사가 서울미술사로 다뤄져 왔다며 균형 있는 지역미술 조명의 중요성을 전제하였다. 강용운의 스승인 가와구치 기가이의 유복한 성장환경과 프랑스 체류활동 등을 언급한 뒤 그가 활동했던 독립미술협회 연구소에서 강용운이 사사받았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또한 강용운은 전후세대와 다른 이전 세대로서 그 지속성과 변화의 과정에 주목해야 하고, ‘앵포르멜이라는 용어로 다양한 경향들을 묶어버리는 것의 부적절함과, 한국 현대미술에서 일본만이 아닌 프랑스의 직접영향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이에 대한 답변에서 김희영 교수는 강용운은 추상미술의 태도에서 이미지의 창조자의 입장을 중시했고, 양식보다는 새로운 예술을 탐색하는데 우선하였으며, 모더니즘 유입과정에서 삶의 경험을 주체양식으로 변화시킨 작가라고 보았다.

    김주원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실장은 한국의 현대미술 진행과정에서 구상과 추상의 관계를 언급하며 구상이 주류였던 광주화단에서 강용운의 추상이 가능했던 배경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이에 대해 조은정 교수는 전후 50년대 전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남관김병기 등이 50년대 초에 앵포르멜을 장식미술이라 언급했던 당시의 인식을 환기시켰다. 그러면서 강용운은 학습기부터 다양한 회화경험들을 통해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자신감으로 선명성을 구현해낸 작가라고 보았다.

    학술토론장에는 강용운 양수아 유족과 제자들, 미술계 관계자와 작가들이 참석해 끝까지 진지한 논의의 장에 함께 하였다. 이날 진행된 발제 토론 내용은 저세히 정리하여 광주시립미술관에서 별도 자료집으로 발간할 예정이다.

    - 조인호 (광주미술문화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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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시립미술관에서 마련한 강용운 양수아 재조명 세미나. 광주시립미술관 제공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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