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의 역사, 물길에 비친 정신-송필용 작품세계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광주미연 (61.♡.217.223) 작성일19-08-31 16:12 조회2,265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땅의 역사, 물길에 비친 정신-송필용 작품세계 - 광주비엔날레 8월 작가스튜디오 탐방 처서를 지나 폭염 더위도 한풀 꺾인 8월 28일 늦여름 저녁에 광주 전남여고 뒷길 송필용 작가 작업실로 연령대도 다양한 손님들이 찾아들었다. 광주비엔날레가 운영하는 작가스튜디오탐방의 8월 프로그램이 그의 작업실이어서이다. 20여년 넘게 쓰고 있는 이 공간은 특별히 넓지도 않았지만 작품이 점점 쌓이다보니 담양 대덕작업실에 있는 것 말고도 여기 작업실의 절반을 작품수장고가 차지하고 있어 몇 년 전보다 작업공간은 더 적어져 있다. 세월 따라 긁히고 묻고 캔버스 밖으로 스쳐지나간 붓질의 흔적들로 이젤이고 바닥이고 벽이고 그 자체로 작품들이다. 최근 진행 중인 폭포수 아래 바윗돌을 주소재로 한 작업들과, 검은 바탕에 폭포 물줄기들이 파열하듯 흩날리는 선을 이루며 쏟아지는 화폭, 이전에 작업했던 크고 작은 그림들이 걸려있다. 거친 붓질과 두텁게 덧쌓는 안료들, 서사가 응축된 화폭은 수시로 재소환 되어 추가 보완작업이 진행되기도 한단다. 한쪽 벽면에는 신문 스크랩들이 원본 그대로 가득 붙어져 있다. 지난 4월부터 광주일보에 연재 중인 최진식 교수(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의 칼럼 ‘최진석의 새말 새몸짓’에 그의 작품들이 한 컷씩 크게 들어가 있는 지면들이다. 원고 마감일이 다되어 최교수의 원고가 전달되면 거기에 맞는 작품을 고르거나 새로 제작해서 이미지를 보내 함께 지면을 실리는 것이다. 몇 년 만에 모처럼 많은 이들 앞에서 자기 작품들을 소개하게 됐다는 인사로 시작해서 대학시절부터 최근까지 작업에 담아내고자 했던 생각들을 위주로 큰 흐름을 얘기했다. 사라지게 될 기억꺼리를 기록하기 위해 대략 간추려 본다. “대학시절 작품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는 2학년 때 작품 <삶의 길>은 선로 변경지점의 구부러진 철로와 침목, 자갈들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회청색조 그림이다. 전남대학 재학시절 실기실이 중앙도서관 옆 4층이어서 도서관 앞에서 학생들 집회가 있는 날이면 쫒아 내려가 많은 시간을 데모와 함께 하면서 세상과 사회현실에 대한 의식들을 다지곤 했었다. 한번은 해남 대흥사로 학교에서 야외스케치를 갔었는데, 경찰 둘이 거기까지 찾아와 서부경찰서로 끌려가 정신없이 두들겨 맞았다. 그러고는 밤늦게 경찰차로 집에 태워다 주면서 한마디 던지고 돌아서는 그들에게서 인간적 연민을 느끼기도 했었고, 이런 일이 수없이 반복됐었다. 그는 자신을 민중미술 3세대쯤으로 설정한다. 그러면서 정치사회 현실에 관한 풍자적인 메시지를 담되, 조형성을 가미해서 선배들이나 다른 작가들의 민중미술과는 형식을 달리해보고 싶었다. 이 가운데 1987년부터 89년까지 그렸던 <땅의 역사>는 120호 캔버스 8폭을 파노라마처럼 연결해서 구성한 15m 정도 길이의 대작이다. 동학농민혁명의 황토현 들녘이나, 5·18광주민중항쟁과 운주사 천불천탑 비경의 대입, 분단된 산하 등이 대하 서사극처럼 펼쳐진다. 이 땅의 역사를 품고 있는 삶의 현장으로서 ‘대지’에 주목해서 ‘땅의 역사’를 주로 그리던 시기에 황토현이나 백아산 등의 주제 연작이 많았다. 특히 백아산은 담양과 화순의 경계부분에 걸쳐있고 한국전쟁 때 빨치산 활동의 주된 근거지로 역사의 희생과 상처와 아픔들을 그대로 품고 있는 ‘민중의 산’이다. 이 산을 여러 시점으로 바라보는 위치를 바꿔가며 산의 형세와 골짜기에 배인 이데올로기의 상처를 굵고 거친 필치들로 옮겨내었다. 그러던 중 정치적 이슈나 시대현실 풍자 작업들에서 요동치는 격한 감정과 혼돈스런 마음을 추스르고 작업의 방향을 다시 가다듬기 위해 마땅한 곳을 찾다가 담양 대덕 작업실로 들어갔다. 거기서 담양의 자연풍광과 선비들의 고장으로서의 문화적인 환경이 그런 생각을 잘 풀어내 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담양 작업실에서 주로 머물던 시기에는 작업도 훨씬 차분해지고 전통 회화형식의 재해석이나 옛 문인화의 시정이 깃든 그림들이 많아진 것도 이런 환경의 영향이 크다.) 담양의 면앙정 앞 넓게 펼쳐진 들녘과 에머럴드 빛으로 흐르는 강줄기, 무등산이 멀리 바라다 보이는 송강정이나 무등산 자락의 식영정·환벽당·취가정 등을 시점을 달리해서 자미탄이나 칠성바위와 광주호를 끼고 무등산이 바라보이게 하는 등의 시가문화권 풍광들을 담아낸 작업들도 그런 예다. 대부분 자잘한 풍경소재들은 생략하고 옛 선비들의 정신적 의거처였던 정자와 너른 들녘을 강조해서 열린 공간을 담은 작품들이다. ‘금강산 연작’은 작업양이나 정신적으로도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동안 20여 차례를 다녀왔는데, 탐방 중에 마주했던 갖가지 기기묘묘한 풍광과 형세와 감흥들을 화폭에 담아낸 작업들이다. 유람선에서 바라본 신비한 풍경의 금강산, 흰옷 입은 인물들이 무리를 이루어 서있는 듯한 만물상들과 굽이굽이 에머럴드 빛 계곡과 연못과 폭포들을 장소별 특성에 맞게 시점과 화법과 구도를 바꿔가며 심취했었다. 금강산 그림을 그리면서 폭포를 즐겨 그리게 되었다. 그 폭포그림들에서 근래에는 폭포수보다는 그 물줄기 아래 놓인 바윗돌에 비중을 두고 있다. 쉼 없이 내리 쏟아지는 거대한 물줄기를 견뎌내며 의연히 그 자리에 건재하고 있는 바윗돌이야말로 자연 에너지의 집약체이면서 삶의 주체로서 질곡의 역사를 이겨내 온 민중의 힘이라고 본 것이다. 그만큼 폭포 주제 그림들에서 차지하는 바윗돌의 시각적 무게감도 커지면서 굵고 힘찬 필치들이 쌓이고 겹치고 뭉쳐져 단단한 기운의 응축을 만들어낸다. 초기 청년시절에 대지와 땅을 주로 그렸다면 이후 물을 즐겨 다루게 되었다. 물줄기는 세상의 역사, 인생살이와 닮아있으면서 생각과 사유의 흐름과도 같다고 여겨진다. ‘소쇄’라는 말은 수시로 마음을 씻어내려는 의지를 담고 있어 좋아하는 말이다. 폭포나 물줄기나 하나의 흐름인데, 결국은 그림에서 ‘일획’이 중요하게 여겨지게 되었다. 따라서 그 맛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으면 몇 번이고 다시 붓을 들곤 한다. 청색을 많이 쓰는 편인데, 청색은 근본적인 색이고 선비적인 색이다. 그러나 인쇄에서 제 색을 내기가 정말 어려운 색이기도 하다. 옛 도자기에서 많은 공부를 한다. 고려청자 같은 매끄럽고 완벽한 문양보다는 옛 빗살무늬토기나 분청사기 부분을 확대해서 볼 때 추상적인 부분도 있고 회화적인 맛이 좋다. 특별한 문양 없이 둥그런 달항아리도 좋아한다. 도예가와 콜라보를 하기도 하는데, 그릇에 올려질 그림을 그릴 때 의도했던 것과는 다른 그릇색이 나오곤 해서 맘에 드는 도자기 작품을 만나기가 어렵다. 단순히 그림 표면에 그림을 올리기보다 나만의 도자회화의 맛을 내보려고 한다. 가마에서 구웠을 때 좋게 만들어진 도자기는 잘 안주기 때문에 갖고 있는 것은 별로 좋은 것이 없다.” 이날 스튜디오 탐방에는 광주비엔날레 재단의 김선정 대표이사와 2020광주비엔날레의 외국인 큐레이터들, 비엔날레 재단 직원들, 사전 예약에 신청했던 일반인과 작가 등 40여명이 함께했다. - 조인호 (광주미술문화연구소 대표)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