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주년 오월에 살펴보는 ‘5·18과 저항미술’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광주미연 (222.♡.108.96) 작성일19-05-27 11:57 조회2,837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광주 동구청 오월인문학 강의 '5.18과 저항미술'. 동구청 제공사진 39주년 오월에 살펴보는 ‘5·18과 저항미술’ 5·18광주민중항쟁 39주년을 맞는 오월주간에 미술과 사회와의 관계를 역사적 맥락에서 살펴보는 강의가 있었다. 광주 동구청이 마련한 ‘오월인문학 강좌’로 광주미술문화연구소 조인호 대표의 ‘5·18과 저항미술’이라는 주제강연이 5월 22일 오후 7시부터 동구청 강당에서 진행되었다. ‘미술로 보는 시대문화사’ 형식으로 동·서양과 근·현대 저항미술의 예들과 함께 광주의 5·18 당시와 이후 미술현장 활동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1시간여 동안 이미지와 함께 얘기 나누는 자리였다. ‘저항’이라 하면 변혁의지와 자유 열망, 항거, 거부, 지키고자 수구의 의미 등이 있지만 역사와 시대문화를 새롭게 일구고 혁신하고자 했던 활동들에 초점이 맞춰졌다. 따라서 르네상스 이후 피조물이라는 수동적 닫힌 입장에서 벗어나 인간 자아와 세상의 재발견이 계속되면서 관념과 정형에서 벗어난 새로운 탐구와 인식들이 확장되고, 당대 시대현실과 삶의 실체, 사회와 정치적 현실들에 대한 직시와 풍자와 저항의 언어들이 미술작품으로 표현되었다는 것이다. 리얼리즘의 맥락이면서도 특히 ‘예술과 사회’와의 관계로 본 리얼리티의 표현에 중점을 두어 카라바지오·무리요 등 바로크 회화, 고야·쿠르베·도미에 등 정치적 혁명기의 미술들, 리얼리티에 극적 효과를 가미한 낭만주의, 인간본성의 절규와 분노·항거가 담긴 일리아 레핀·케테콜비츠, 사회현실의 자각과 일깨움의 수단으로 삼았던 노신·이화 등의 1930년대 중국 목판화운동, 디에고 리베라가 주도한 멕시코 벽화운동, 기존 관념을 타파하는 1910년대 미래주의와 다다, 1940년대 앵포르멜과 추상표현주의 등을 예로 들었다. 이와 함께 5~6세기 중국의 ‘형신론(刑神論)’ 이후 북송 곽희나 남송 장택단을 예로 삼은 정신적 동경의 세계와 현세 사실화들의 대비, 조선 초기 안견의 고전화풍과 양팽손의 심중을 담은 작품이라 전해지는 ‘사계 묵죽도’의 비교, 공재 윤두서·겸재 정선과 단원·혜원 등의 사실정신, 1940년대 초부터 시작된 강용운의 비정형추상과 그의 예술적 동지이면서 전혀 다른 배경과 상황에 처해있던 양수아의 일그러진 앵포르멜 초상들, ‘반국전’ 선언과 함께 시대의 전위로 나선 1950년대 말 전후세대의 앵포르멜 미술운동도 함께 소개되었다. 이 같은 역사적 맥락 위에서 5·18과 관련한 80년 당시의 강연균·손장섭·조진호 등 작품과, 80년대를 뜨겁게 달궜던 오윤·신학철·홍성담 등의 작품들, 1985년 자행된 ‘한국미술 20대의 힘’ 전시에서 공안당국의 전시방해와 항거, 대학가와 사회·노동운동 현장에서 펼쳐졌던 목판화·걸개그림·벽화·거리화들, 광주 금남로와 5·18 묘역에서 시대를 담아냈던 ‘오월전’과 ‘광주통일미술제’ 현장, 보수정권기 부조리·불합리한 정책과 삶의 현실에 저항했던 풍자화들, 설치미술·미디어아트·퍼포먼스 등 매체를 가리지 않고 시대와 함께 하고 있는 최근의 활동 예들이 다뤄졌다. 1시간이 바쁘게 흘러간 강의에 이어 전진희 인권인문연구소장과의 대담, 방청객들과 질문 답변이 있었다. 가장 대표적으로 꼽는 작품으로는 국내외 민중미술의 대제전이면서 전국의 주요인사·시민·미술인들이 동참해서 망월묘역길에 설치됐던 강연균의 95년 <하늘과 땅 사이 IV>를 들었고, 저항미술이라지만 일정 시간이 흐른 뒤에 제작된 예들이 많아 보인다는 질문에는 우리의 경우 사회현장에 주요 시각매체로 걸렸던 걸개그림들은 작품의 예술가치 의미도, 보존의 필요성도, 그럴만한 여건들도 아니었기 때문에 실물이 거의 남아 있지 않고, 작품이나 자료가 잘 보존된 경우들이 상대적으로 자주 사례로 활용되기 때문이라 하였다. 이날 방청석에는 5·18항쟁 당시 전남도청에서 두 손을 등 뒤로 묶인 채 줄줄이 끌려가던 시민군 주인공과, 80년대를 치열하게 그림으로 부딪히고 정신건강의 고통 속에서도 리얼리즘을 지속하고 있는 이상호 작가, 작품세계는 다르지만 오월미술에 관심을 갖는 작가들, 오월에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오월인문학 강좌의 단골 시민들, 눈빛이 살아있는 대학생 등이 피곤한 저녁시간을 쪼개어 얘기자리에 함께 했다. 전체를 쉽게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급속한 변화가 계속되고 다원화된 현시대와 현대미술에서 수많은 의식과 활동과 작품들이 시대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그런 가운데서도 예술에서 진정한 리얼리티를 무엇에서 찾을 것인가, 예술은 이 시대에, 이 사회 속에서 무엇이어야 하는가 등등을 함께 생각하며 두 시간여에 걸친 오월의 저항미술 얘기를 마쳤다. 참고로 전남일보 양가람 기자의 리뷰기사(2019.5.23.) 일부를 덧붙인다. “5·18을 기점으로 미술의 사회적 역할 고민” “한국 예술가들은 80년 5·18을 겪으면서 심미적 관점의 미술보다 사회 속에서 미술의 역할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조인호 광주미술문화연구소 대표는 지난 22일 오후 7시 진행된 광주 동구 인문대학 ‘ 오월 인문학강좌’에서 ‘5·18과 저항미술’을 주제로 강연하면서 이같이 강조했다. 그는 80년대 대학가 걸개그림에서 시작한 민중미술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민중 미술은 5·18민주화운동의 무력 진압과 당시 군부 정권에 대한 저항이 사회운동으로 확산되던 무렵 등장했다. 당시의 심미주의적 미술사조에 대한 반발로 시작된 민중미술은 예술의 사회 참여를 주장하며 민중의 목소리를 대변해왔다. 조 대표는 이어 세계저항미술의 역사를 소개했다. 그는 “인간이 자아에 눈 뜨고, 인간 자신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 이루어지면서부터 저항과 변혁의 역사가 시작됐다. 이는 시대의 문화를 발전시켜왔다”고 말했다. 이어 “민중학살을 다룬 피카소의 ‘게르니카’에서 보여지듯이 화가는 동, 서양을 막론하고 자신이 목도했던 시대를 그렸다”며 “목가적인 밀레의 그림에서조차도 사회적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곡식을 나르는 농민의 얼굴에서 가난하고 고된 현실을 볼 수 있다”고 사회적 의미가 담긴 작품들을 소개했다. 5·18과 미술에 대한 이야기도 이어나갔다. 그는 “한국 예술가들은 80년 5·18을 겪으면서 심미적 관점의 미술보다 사회 속에서 미술의 역할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며 “80년대의 걸개그림은 대중들에게 시대적 이슈를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었고, 목판화는 빠른 시간안에 재생산하여 민중들에게 배포하기 위함이었다. 모두 감상용이 아닌 사회 참여를 위한 예술인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민중미술 작품으로 강연균 작가의 ‘하늘과 땅 사이’를 꼽았다. 그는 1995년 첫 비엔날레가 열렸을 때를 회상하며 “당시 5·18 진실규명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광주에 비엔날레를 개최한다는 데에 예술가들이 반대하며 망월동 일대에서 ‘안티비엔날레’ 전시를 열었다. 그때 본 강연균 작가의 ‘하늘과 땅 사이’를 보고 애정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조 대표는 강의가 끝난 후에 청중들과 5·18에 대해, 그리고 민중미술에 대해 질문을 주고받았다.이날 강연에는 ‘죽창가’를 그린 이상호 작가가 청중으로 참여해 그림 그리던 당시를 회상하기도 했다. 광주 동구청 제공사진 광주 동구청 제공사진 광주 동구청 제공사진 광주 동구청 제공사진 광주 동구청 제공사진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