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로 풀어가는 자연과 인간의 '처음'; 문유미 작업실 탐방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광주미연 (210.♡.209.214) 작성일18-07-26 19:46 조회2,952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행위로 풀어가는 자연과 인간의 ‘처음’; 문유미 작업실 탐방 광주비엔날레가 달마다 진행하는 스튜디오탐방의 7월 프로그램이 7월 25일 2시부터 주월동 문유미작가의 작업실에서 있었다. 36도를 웃도는 폭염으로 도시도 사람도 후끈하게 달아오른 한낮 아파트단지 뒷길의 1층 아담한 옛 꽃가게 공간에 강운·윤세영·신호윤·김자이 등 동료작가들과 호기심 많은 일반시민과 비엔날레 김선정 대표이사와 직원 등등 20여명이 빼곡히 둘러앉았다. 그동안 방문했던 화가나 입체조형, 미디어영상작가들의 작업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의자들을 놓고 빔프로젝터 영상을 위해 가운데 공간을 비운 터라 평상시 작업실 그대로는 아닐 것이다. 벽에는 그동안 발표해 온 퍼포먼스 사진들, 그 때 입었던 붉고 하얀 드레스나 무속의상 같은 긴 옷들, 가면과 해골과 닭뼈나 새 깃털로 만든 오브제 등이 둘러져 있다. ‘움직임에 반응하는 사람’이라 스스로를 말하는 그는 새내기의 무대공포증을 극복해 가며 한국 전통무용과 무속, 현대무용 등을 학습하고 체화 접목시킨 작품으로 ‘판 아시아 퍼포먼스’ 등을 통해 점차 그 세계 속의 일원이 되어 갔다. 자신의 몸속에 한국무속의 DNA가 흐르는 듯 하다는 그는 ‘나도 모르게 일어나는’ 영감을 따라 요셉 보이스의 작업을 패러디한 <해골에게 나의 퍼포먼스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를 비롯, 진화되기 이전의 인간원형을 찾아 심해 속 생명체의 꿈틀거림을 상징화한 <심해의 소리> 등을 발표하였다. 2009년에는 마라도 인근 가파도에서 대자연의 풍상에 끊임없이 씻기우며 섬의 역사를 지켜온 고인돌들과 그 들판과 바닷가에 쉼 없이 흐르고 파열하며 흔들리고 유동하는 바람과 기억과 시간의 개념을 무속적인 행위로 풀어내었다. 또한 인간신체의 원초적 모습과 그 물질적 유한성을 몸에 머리카락과 깃털들을 붙여 표현하기도 했다. ‘인간욕망’은 문 작가가 긴 시간 비중하게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해 오고 있는 주제의 하나다. 가령 먹는다는 것과 관련된 생닭을 이용한 조금은 섬찟한 행위작업들과, 잡지광고 조각들을 누드상태 몸에 붙여 관객들이 원하는 대로 떼어가게 하거나, 그 광고더미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모습들을 행위로서 되비춰내는 ‘매거진 액션’ 작업들은 그런 욕망과다의 현대 삶을 풍자하는 퍼포먼스 한 예다. ‘있는 현상 그대로를 바라본다’는 불교 타타타 개념의 해프닝이나 게릴라퍼포먼스도 삶의 방식과 인식에 관한 되짚기이다. 수많은 발길들이 스쳐 지나는 너른 광장에 아바타 같은 인형과 함께 누워있거나, 자갈치시장 생선좌판들 속에서 육신이라는 덩어리로서 털붙인 누드 상태로 물끄러미 앉아 있거나 시장아짐들의 반응에 따른 즉흥행위를 연결하기고 하고, 날씨 차가운 날 대인시장 곳곳을 돌며 각 장소마다의 시장풍경들을 배경 삼아 그 장소들과는 상반되게 황금빛 고풍액자 속 자신의 맨몸을 담아 고전적 누드화를 실연하기도 하였다. 한편으로, 자연의 신성함에 대한 경외감을 샤머니즘 성격의 현장행위로 접속해내는 작업들도 주된 흐름으로 이어진다. 가파도 고인돌 들판과 바닷가에서 펼쳐 보였던 자연환경 속 행위들과, 예술과 자연의 결혼이라는 테마로 끊임없이 파도가 밀려들었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망망한 바다와 바람에 하얀 웨딩드레스 차림의 몸을 맡겨 행위를 펼치기도 하고, 설산 배경의 초원 위에서 지극히 무속적인 의상과 소품들로 영적 교감의 퍼포먼스를 펼치고 그 소품들을 조장이나 풍장, 화장의 개념을 섞어 불태우는 의식으로 마무리하기도 한다. 모든 것의 ‘처음’에 대한 궁금증으로 퍼포먼스를 다양하게 시도해 본다는 문 작가는 “자연에 대한 경이, 과학적 진실에 대한 호기심, 신에 대한 의문 사이에서 내 작업은 위치한다. 모든 것의 시작, ‘처음’에 관심이 많은 나는 인간이 사회화되기 이전의 생물 혹은 동물의 모습, 특히 몸의 물질적인 면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고 말한다. 끝부분에서 참석자 중 한 동료작가는 퍼포먼스라는 행위에서 신체와 자연과 자유에 관한 개념을 어떻게 설정하고 작업해 가느냐가 퍼포먼스의 형식들과 교감의 밀도를 달리할 수 있을 거라고 의견 겸 제안을 던지기도 했다. 사실 화선지와 캔버스, 아니면 미디어영상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자연과 의식과 감흥을 담아온 지역의 일반적 미술문화 풍토에서 몸과 행위를 직접 드러내고 펼쳐내는 퍼포먼스는 깊은 교감을 얻어내고 있지는 못하다. 10여년 퍼포먼스 아티스트로서 활동을 펼쳐 온 문유미는 그동안의 공연적 행위들에서 앞으로는 전시 요소에 더 비중을 두는 쪽으로 방향을 바꿔나가고 싶다 한다. 자연과 몸과 예술의 본래 모습을 풀어내고자 하는 문유미의 퍼포먼스가 끌어들여지는 매체와 표현의 형식에서 독자적이면서도 또 다른 탐구의 영역으로 계속 확장되어 가길 기대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