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전' 30년사 아카이브 구축 학술마당 개최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광주미연 (210.♡.209.214) 작성일18-11-12 12:48 조회2,341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김향득 페북사진 ‘오월전’ 30년사 아카이브 구축 학술마당 개최 11월 10일 5·18역사기록관 세미나실에서 1단계 진행과정 정리 당대시국과 관련한 연례 정기전을 하나의 조직체가 한 번도 거르지 않고 30년간 이어온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작가로서 개별존재가 부각되는 창작활동도 아님에도 집단활동으로 힘을 모아 오월에 바라본 거대세상과 시국에 관한 진단과 비판을 담은 미술작품들로 시대를 발언하고 기록하고 공유해온 전 광주전남미술인공동체(광미공)와 현 광주민미협 작가들의 ‘오월전’이 그것이다. 어제 오후 3시부터 계획했던 시간보다 1시간을 넘긴 6시까지 5·18역사기록관 7층에서 그 오월전의 30년의 궤적을 되짚고 작품과 자료들을 발굴하는 아카이브 작업 1단계를 중간 공유하는 형식의 학술마당이 있었다. 오월전 아카이브 무엇을 할 것인가 첫 발제자인 윤정현(지역활동)은 이 아카이브 작업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존재하는 시간과 장소가 달라진 원본은 이미 의미가 다르고, 보존 중심의 자료화보다는 그때 작업, 전시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재구성해서 활용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원본 1:1사이즈와 낮은 해상도 파일을 만들어 보관본과 활용본을 구분하고, 전시나 작품에 관한 글, 평론, 보도기사 등을 함께 기록으로 남기면서, 중복되는 다른 작업과 상호협력 역할분담이 필요하다.”고 했다. 아울러 “사회적 상황, 변화된 객관적 조건들을 개인의 주체적 조건과 맞춰나가는 자율적 창발성을 근간으로 지나친 조직논리나 조직활동에 매몰되기보다 참여하는 작가 개개인의 예술적 성취와 창작활동이 활성화되고 그런 성장과 성취가 연대되어 집단의 활동이 힘을 발휘해야 한다.”며 “스스로를 소진해 타의 복리, 민주주의를 진척시키고자 했던 오월정신은 오늘날의 5월, 광주미술의 전망설정에 여전히 유효하다. 때문에 5·18광주민중항쟁 30년사 데이터베이스화 작업은 그 고개를 넘는 하나의 결절지점”이라 했다. 오월전으로 담아낸 광주 시대정신 두 번째 발제로 조인호(광주미술문화연구소 대표)는 ‘오월전으로 담아낸 광주의 시대정신’이라는 제목의 30년사를 요약 정리했다. 88년 창립한 광미공의 창립전으로 89년 가졌던 첫 오월전 이래 시기별 이슈를 집약한 주제를 내걸고 기존 전시공간부터 망월동이나 금남로와 옛 도청 등 5·18 현장, 버스종합터미널과 연결된 갤러리 등을 돌며 운영되어 온 오월전의 전체 흐름과 내부적인 상황, 기록과 자료들을 토대로 바라보는 외부자의 객관적 관점 등을 정리하였다. 아울러 그 30년간 시대를 관통하는 ‘오월전’으로서 오월전을 보면 그 시대가 보인다고 할 만큼 주제의 시의성이 두드러지면서도 그 주제에 대한 심화와 자기화, 차별화시켜내는 집중력은 부족했다고 진단했다. 또한, 고발과 비판·풍자 등 단발성 발언들이 주류를 이루다 90년대 중반 이후 점차 일상과 밀착되고 서정성과 회화적·조형적 묘법들이 다양해졌다. 이는 여러 소재나 이슈를 한 화폭에 분산 배치하는 ‘모둠형 서사적 구성’에서 단일주제를 소재나 표현형식의 탐구와 변화로 시각적 전달력과 개별 작품성이 돋보이는 예들이 많아진 것과 같은 흐름을 보인다는 것이다. 아울러, 망월동 오월묘역이나 금남로, 전남도청 같은 5·18현장에서 ‘오월전’을 펼칠 때와 실내 갤러리공간을 이용할 때 그 장소성 때문에도 전시의 힘은 훨씬 달라지므로 기본적으로 오월현장과 밀착될수록 그 힘을 더 발휘할 수 있고, 노화된 주축세대의 현실적 한계와 지속 가능한 오월전의 미래를 위해서도 청년 후배들의 꾸준한 수혈장치가 필요하며, ‘오월전’이 광주의 5월 미술계 브랜드상품으로 가꾸어져 광주정신 또는 오월정신을 시대에 부합·확산시켜가는 매개와 공감의 장이 될 것을 주문했다. 발제 뒤에 덧붙인 ‘오월전 30년’ 슬라이드쇼는 민미협 회원이나 참석자 모두에게 지나온 역사와 현장들을 재환기시키는 시간이 되었다. 관성화 되지 않고 개인과 조직이 함께 성장해 가기를 토론에서 한현우(인권문화활동가)는 민중미술의 헌신성과 주제의 선명성에 사회환경이 결합되어 오월전의 사회적 효과와 기록효과가 만들어져 왔다며, 이제 오월전 추진주체의 인적자원 확충과 조직의 체계화 및 역할분담, 저변을 넓히고 대학생 청소년들의 참여기회 확대, 재원 확보방안, 아카이브 작업의 활용방안 마련, 회원 관심도와 참여도부터 높이면서 타 분야와 접목하는 기획의 필요성 등을 주문했다. 이전에 광미공 회장 등 주축 활동을 했던 정희승은 실행동력으로서 자생성과 거리전을 통한 대중소통의 경험은 큰 소득이었다고 평가한 뒤, 예술 한다는 것 자체가 경이로운 세상이고 자기전망도 불확실한 상태에서 후배들 영입에 적극적이지 못했고, ‘오월전’은 민미협이 존재하는 이유임에도 관성화 되고 자기고민이 부족하지 않았는지 자문했다. 따라서 아카이브 관련 제안을 가급적 수용해서 실행해 나가고, 오월전의 기획을 보다 체계화해서 개별작업의 밀도도 높이고 시민참여를 확대하는 등 회원 개개인과 조직이 함께 강해질 수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역시 전에 광주민미협 회장으로 일했던 조정태는 ‘오월전’의 관성화와 대중성과 기획력의 문제와 함께 ‘오월전’ 때문에 광미공이 민미협으로 부활된 것이었음을 잊은 것 같다며 노쇠화된 현실에서 문화적 비전을 제시하는 모델이나 모범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자평했다. 광미공 창설회원이었지만 오랫동안 섬에 내려가 개인활동 중인 문학렬은 광미공은 미술의 정치활동 같은 것이었다며, 세미나의 주제도 한 번에 포괄적인 설정보다 한 가지씩이라도 구체적인 접근이 필요하고, 30년간 좋은 일을 해왔다면 왜 후배들이 없는지, 작가들 스스로 화석화되거나 자기성찰이 부족한 건 아니었는지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고, 학술연구 같은 경우는 차라리 외부에 연구용역을 맡기는 게 더 효율적일 수 있다고 제언했다. 또한 객석에서 세미나 진행내용들을 귀담아 듣던 광주전남민주화운동동지회 관계자는 5·18 당시의 사적지들이 도시개발과 무관심 속에 현장성이 훼손돼 가고 있는데 그 사적지에 관한 얘기를 그림으로 그려주면 안내자들이 현장에서 소개할 때 훨씬 효과적일 것이라고 요청했다. 이 ‘오월전’에 관한 30년사 아카이브 작업은 30회째가 된 올해 우선 1단계 기초작업을 광주시 인권협력관실의 소액의 예산지원으로 진행됐다. 광주민미협은 이 작업이 3년 동안에 걸친 3단계 계획이 원활히 잘 진행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