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비엔날레 작가스튜디오탐방-정운학 작업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광주미연 (210.♡.209.214) 작성일18-12-06 14:57 조회2,370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광주비엔날레 작가스튜디오탐방-정운학 작업실 2018년도 마지막이 될 광주비엔날레 작가스튜디오탐방프그램이 12월 4일 밤 양림동 정운학 작업실에서 있었다. 사동 작업공간이 비좁아 인근 양림동에 별도의 공간을 마련한 건데, 주택가 한옥을 매입해서 지난 1년여 간 틈틈이 손을 대오는 중에 첫 손님들을 맞이한 거라 한다. 양림오거리와 양림장로교회 사이 골목 안쪽에 있는 이 공간은 여느 가정집이나 마찬가지 풍경이다. 정운학갤러리 문패의 대문을 들어서면 아담한 화단이 있는 작은 마당이 있고, 一자형 기와지붕 목조주택을 기둥만 남기고 벽들을 털어내어 한 통으로 공간을 텄다. 천장도 중천장을 없애 서까래가 노출된 상태로 층고를 높였으며, 방바닥이나 마루도 없애 작업하기 좋게 낮춰 시멘트로 마감해 놨다. 다락이 있던 뒤쪽에 작업에 필요한 공구며 부품들이 칸칸이 모아져 있는 것 말고는 실내는 한옥갤러리 분위기 그대로다. 실제로 벽이며 기둥과 짜투리 공간들에는 그의 여러 연작주제 작업을 떠올리게 하는 소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간단한 요기와 다과로 담소를 나눈 뒤 정운학의 작품세계와 활동에 관한 얘기부터 시작됐는데, 작가 프레젠테이션 요지는 다음과 같다. 한때 한적한 시골에 들어가 그곳에서 오래토록 작업에 몰입해 볼 생각으로 함평 월야에 작업장을 만들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세상과 단절된 듯 문화현장과의 소통에 가장 애로가 있어 7년여 만에 짐을 정리해 다시 광주로 나오게 됐다. 시골 작업실을 떠날 때 옮겨 놓을 공간도 마땅찮고 해서 트럭 2대 분량의 작업들을 폐기처분했었다. 사동 2층집에 작업공간을 마련했으나 비좁아 다른 공간을 알아보던 중 3년 전에 이 집을 구했고, 형편이 되는대로 조금씩 수리를 하고 꾸밀 것 손도 대고 해서 이 모양을 갖추었다. 초등학교 때 양림동에 살았던 인연이 있는 곳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 셈이다. 원래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화가가 꿈이었고, 만화를 그려 친구들이 돌려보기도 했다. 중학교 때 수업 시간에 선생님을 얼굴을 그리다 들켰는데 평소 아주 무섭던 그 선생님이 왜 화를 내지 않았는지 의문이었다. 고교 2학년 때 늦게야 미술부 활동을 하면서 화실에 다니며 그림을 배웠다. 그래서 대학시절 회화를 전공했었고, ‘경계’를 주제로 한 작업들을 했었다. 표현주의 성향의 작업들을 했었는데, 일반적인 회화보다는 부조식 표현을 주로 하기도 했는데, 표현의 한계성을 느끼면서 재료나 형태에 계속 변화를 찾게 됐다. 대학 졸업 후 평소 매료되어 있던 독일 신표현주의를 현지에서 공부하기 위해 독일유학을 떠났다. 독일의 학습방식 자체가 우리와는 판이하게 달라서 잘 그리는 것 보다는 왜 그리는가를 끊임없이 생각하게 유도했다. 전체 학생들을 몇 그룹으로 나누고 계속 논의과정을 거쳐 논리적인 주제나 개념을 설정하도록 하고 그에 따라 작업을 해나가는 방식이다. 주로 회화이면서 조각인 입체회화, 회화조각 스타일의 작업을 했다. 첫 슬라이드 영상작업도 입체와 영상을 연결하는 방식이었다. 중국 졸정원을 보고 인공적이면서도 자연스러워 보이도록 길을 구불거리게 만들어놓은 것을 보고 그 이미지를 각이 지며 구불거리는 막대모양 입체로 표현하기도 했다. 독일에 머무는 동안 11차례 이사를 했다. 그러면서 매일 날씨에 따라 달라지는 우리의 기분처럼 외적 환경에 영향 받는 일상을 ‘저울에 매달린 나’로 표현해 봤다. 중흥동프로젝트 때 야외설치작업을 하면서 마을 노인들이 가꾸는 텃밭에서 느꼈던 생명력을, 화려한 꽃이지만 상처들을 안고 있는 겨울꽃을 입체로 표현하기도 했다. 아크릴판을 가열해서 의도하는 형태를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구겨진 풍경, 구겨진 옷이나 자루를 제작했다. 입고 있는 옷에 따라 신분이나 인물을 달리보기도 하고 그 자체로 하루하루의 일상이기도 하며, 무엇을 담는가에 따라 모양과 가치가 달리지는 자루를 인간 삶에 빗대어 풍자한 것이었다. 노동자들의 안전화에 날개를 달아 조명을 내장시킨 작품도 노동과 일상과 꿈에 관한 의미의 함축이며, 투명 실리콘으로 책이나 신문 또는 집 모양을 만들고 그 안에 내장한 필름의 텍스트가 내부조명에 의해 시시각각 색이 변하고 어렴풋이 읽힐 수 있도록 한 것도 일상의 기록으로서 의미를 부여한 것이었다. 광주미디어아트페스티벌 때 옛 도청 앞 분수대에 5·18관련 기록사진과 보도기사 등이 담긴 400여개의 라이트박스를 과거·현재·미래의 3단으로 둘러 설치했었다. 금속파이프로 기둥과 가지를 세우고 LED조명을 내장시킨 동그란 조명구들에서 색색으로 빛이 바뀌도록 한 ‘생명나무’ 작품들은 대구 강정현대술제나 광화문 앞에 설치하기도 했다. 이 생명나무는 언뜻 보기에 어디에 있는 것이든 다 똑같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모든 나무들이 같은 수종이라도 같은 게 하나도 없듯이 생명나무도 작품마다 그 구성이 다 다르게 제작되어 있다. LED 박스에 부처의 두상 이미지를 필름으로 넣고 영상이 아니면서도 상이 계속 잔잔하게 흔들리도록 한 것은 내장된 조명의 효과이며, 깨달음을 얻은 부처지만 작은 파장에도 흔들리는 모습으로 사람의 심리를 비유한 것이다. 최근에는 신문을 필름으로 떠 라이트박스에 구겨 넣어 내부의 그림자 효과로 무등산의 이미지를 표현해 봤는데, 계속 더 해가면서 연구가 많이 필요한 작업이다. 그는 독일 유학시절 “미술관 수장고에 들어갈 작업은 하지말라.”는 교수님 말씀을 늘 마음속에 개기며 작업한다. 유학에서 돌아왔을 때 2년 정도 적응기가 필요했을 만큼 독일과 한국의 작가활동 환경이 다르다. 현실적으로 어렵기는 양쪽 다 마찬가지지만, 작가를 대하는 태도나 시선에서 크게 다르다고 한다. 여러 주제 연작과 작업방식들을 거쳐 왔고 모두가 소중한 작업들이었지만 설령 인기 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지난 작업을 되풀이하기보다는 매체에 대한 조형적 시험과 시각적 이미지로서 발언을 자유롭게 담아낼 생각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