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재의 기록과 추상의 재현; 박일구 스튜디오탐방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광주미연 (220.♡.85.245) 작성일19-01-24 18:22 조회2,154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실재의 기록과 추상의 재현; 박일구 스튜디오탐방 광주비엔날레가 매월 진행하는 ‘작가스튜디오탐방’ 2019년 신년 첫 번째 프로그램이 1월 22일 밤 사진작가 박일구의 동명동 스튜디오에서 있었다. 중앙도서관과 푸른길 사이 동명동의 골목 살짝 안쪽에 있는 3층 건물로 ‘사진공방 끼’ 간판이 붙어 있다. H빔 철골로 뼈대를 잡아 앞쪽 절반은 통층으로 층고가 높은 촬영작업 공간을 두고, 나머지 뒤쪽 절반을 3층으로 나눠 방문자들과 간담, 자료정리와 연구, 사진아카데미를 진행할 수 있는 공간들로 활용하고 있다. 각종 실내촬영 작업을 진행할 수 있는 스튜디오에는 색색의 대형 스크린이 필요한 색을 찾아 블라인드식으로 내리고 올릴 수 있게 돼 있고, 조명과 사진 기자재와 수집품, 인화된 작업의 흔적들이 공간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7시부터 9시 넘어 까지 진행된 프로그램은 1시간 30여분에 걸친 작가의 인생 배경과 그동안의 작업행적들이 ‘석탑’ ‘석장승’ ‘꽃살문’ ‘시사 다큐’ ‘바다’ 연작들로 연결돼서 맛깔 나는 말의 성찬들로 유쾌한 분위기 속에 펼쳐졌다. 박일구는 “사람을 아는 것이 작품 못지않게 이해를 높일 수 있는 것”이라며, 원래 사학도였던 그에게 역사공부가 핸디캡 아닌 핸디캡이 됐다고 본인소개를 시작했다. 그 사학 전공자로 자연스레 접근된 ‘백제의 석탑’ 기록작업들을 보여줬다. 한국의 유형문화재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해서 ‘석탑의 나라’라 불릴만한 이 땅에서 특히 평평하면서도 넓은 지붕돌과 부드러운 각면 처리가 동네 아낙네들 몸뚱이처럼 매력적인 백제탑에 매료돼 수많은 탑들을 답사하고 기록했었다 한다. 미륵사지, 정림사지, 장하리, 왕궁리, 귀신사지, 월남사지 등등의 석탑들을 주변 경관과 함께 원경으로 담거나 가까이에서 탑의 전체적 구성과 균형, 선의 흐름, 부재들의 결합에 초점을 맞춰 흑백사진으로 담아두었다. 이들 사진으로 1991년 첫 개인전 ‘백제를 지키는 옛탑’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옛 석탑에서 나타나는 시대별 양식의 변화들과 마찬가지로 사람들마다 역사가 있기 마련인데, 현재의 사진작가 박일구가 있기까지의 내력을 소개했다. 간추리자면 그는 무안 운남과 압해도 사이 작은 섬 효지도 출생이다. 몰락한 선비집안이었을 선조 대에 뭍에서 이곳 조용하고 자그마한 섬으로 들어와 터를 내리고 누대에 걸쳐 유교적인 가풍 속을 이어온 집안의 장손이라 어른들의 관심과 기대가 컸었다 한다. 일제시기 1941년 고조부 회갑연 때 남겨진 흑백 가족사진부터 조부 회갑연 등의 사진, 집안에 내려오는 목제 벼루함과 수첩크기로 집안 대소사 일러두기를 기록해둔 두루마리 묵첩, 족보를 요약한 소족첩, 자신의 꼬마적 사진들로 생장과정을 소개했다. 고교시절 자취를 하며 LP음반으로 음악듣기를 좋아했고, 미술부 활동도 했으며, 대학에 들어가서는 전공학과와 상관없이 회화, 디자인, 공예 등을 두루 수강하고 다녀서 동료학생들이 소속을 정확히 알 수 없을 정도였다 한다. 대학 1학년 때 캔버스에 유화로 그린 설경도 그런 흔적의 하나이다. 특히 흥미가 더 있었던 디자인공부 중에 사진에 점차 집중을 하게 됐고, 5·18 기념행사나 학생 가두시위 현장, 망월동 오월묘역과 신묘역 조성현장 등을 기록으로 남겼다. 그러던 중 석장승 사진들을 입중하게 됐는데, 그 가운데 운흥사지 입구 석장승과 불회사 입구 석장승은 민속문화 특유의 표정과 이끼꽃의 미감이 뛰어나고, 곡성 오산면 청단리 아담한 석불상이나 남원 운봉, 보성 득량면 해평리, 장흥 방촌, 몽탄 등지 석장승들을 찾아다녔다. 그 석장승 작업은 인물을 촬영할 때와 똑같이 오랜 시간 기다리고 작업을 하다보면 늘 똑같은 모습만은 아니어서 자연스레 묵언의 대화를 나누게 된다 한다. 문창살 연작으로는 그냥 반듯하게 꽂아 넣은 그야말로 창살부터 정자살, 교자살, 꽃살문 등등 간결한 기하하적 짜맞춤에서 점차 장식성이 커지고 급기야는 살대도 없이 그림판만 장식해서 꾸미는 현상을 볼 수 있다. 송광사, 무위사, 신흥사, 범어사, 대흥사, 논산 쌍계사, 불회사, 선암사, 나주 다보사 등등의 그런 흐름의 예들을 기록해 두었다. ‘바다’ 작업에서 먼저 초점이 맞춰진 건 ‘들’이었다. 먹거리가 생산되는 곳은 땅이든 바다든 산이든 ‘들’이라 부른다는 것이다. 드넓고 흐릿한 바다라는 들에 점점이 구역을 이루며 펼쳐진 가지가지의 양식장 지지대들이 삶의 터전으로 주제가 되고, 이런 일터가 군말을 다 사라지고 오직 해뜨기 이전의 고요가 푸른빛으로 담겨지는 최근의 ‘With Sea’ ‘Sound of Sea’ 연작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 새벽 바다의 광활한 적요 앞에서 아무것도 없다는 이도 있지만, 들여다보면 수많은 것들과 얘기들이 담겨있고 자기 자신을 비춰 보여주기도 한다고 말한다. 사진작업에서 지향하는 것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파인다큐멘타리’라고 답한 그는 한때 초창기 웨딩포토 촬영으로 꽤 괜찮은 수입을 올리기도 했으나 자신이 하고자 하는 사진작업에 집중하기 위해 돈 되는 작업을 접었다 한다. 기록이라는 작업이면서 한편으로는 그 대상에서 느껴지는 묘한 ‘Abstraction’이 시간이 흘러도 항상 그를 잡아끄는 강렬한 매력이라는 것이다. ‘바다’ 작업들도 그런 현실세계와 추상이 공존하는 거대한 사유의 공간이 되는 셈이다. 박일구는 자신의 사진작업에서 ‘예측을 통한 재현이 중요’하다고 한다. 동쪽은 너무 단조롭고 서해는 변화가 심해 예측이 불가하다면 남쪽 바다는 동·서해의 특징이 적당히 섞여 대기의 변조가 참으로 매력적이라는 것이다. 이 또한 그가 ‘Abstraction’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라 한다. 내륙의 지평선처럼 바다의 수평선을 말하지만 우주에서 보면 의미 없는 것이 되고 그래서 우주적 관점의 ‘천평선’을 담아내고 싶다 한다. 태양 빛이 스미기 시작하는 박명의 시점, 엷은 여명 무렵에 셔터노출시간을 경험과 감으로 설정할 수밖에 없는 상태에서 그 추상적인 바다빛을 담아낸다는 것이다. 사람 찍는 게 가장 어렵다는 그는 앞으로 계획 중에 드러났다 사라졌다 하면서 섬 사이를 잇는 ‘노둣돌’을 통해 바다의 변화를 얘기하고 싶다 한다. 그의 작업에서 꾸준히 이어지는 세상의 ‘변화’들을 노둣돌을 주제 삼아 또 다른 이미지로 담아내려는 것이다. “사진을 하려면 사진만 하라”며 사진을 하기 위해 다른 걸로 돈을 벌어 사진작업을 하는 것은 바보짓이라 말한다. 또한, “재미 없으면 하지 마라”고도 말한다. 사진은 늘 묘한 긴장과 설레임을 준다는 것이다. 여전히 필름사진을 계속하고 있는 오랜 시간을 지나 셔터를 누른 이후 그 사진이 어떻게 나올지 인화 전까지 설레임이 알 수 없는 쾌감을 주고, 사진을 계속하는 에너지가 된다고 한다. - 정리 조인호 (운영자)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