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 조방원 화백 5월 9일 88세로 타계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광주미연 (210.♡.209.115) 작성일14-05-12 13:39 조회12,256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옥과미술관 아산실에 있는 아산 조방원 화백의 생전 화업중 사진아산 조방원 화백 5월 9일 타계 화업과 생활로 실천한 묵선의 길 “모든 순간에 한 마음을 지키면 그것이 곧 선(禪)이야. 생활이 곧 선인 거지. 그림도 마찬가지이야. 그림 그릴 땐 모든 잡념에서 벗어나야해. 가장 순수한 마음의 상태를 수묵으로 옮기면 그것이 곧 묵선이지”(한겨레신문 2004.12.22. 기사 중) 남도 화단의 큰 어른이었던 아산 조방원 화백이 5월 9일 88세를 일기로 타계하였다. 아산은 스승인 남농 허건의 통해 이어 받은 호남 남화의 전통에 뿌리를 두면서도 산수 화조 등의 화제들을 물아교융(物我交融)의 감흥과 창의적 필의(筆意)를 통해 담대하고도 개성 넘치는 작품들을 보여 주었다. 특히 잔잔하고 은근한 호남 남화의 일반적 화풍과는 달리 필획의 강약과 먹의 농담 변화 폭이 크고, 수묵을 위주로 하되 필요한 부분에는 화룡점정 하듯 과감하게 원색도 주저 않는 장중하고도 표현성 강한 화법으로 산수의 기운을 담아내며 독자적 예술세계를 일구었다. 당뇨 등으로 기운이 쇠약해져가는 노년에도 곡성 죽곡의 한적한 시골마을에 머물며 선 수행을 하듯 심신을 추스르고 필묵을 벗 삼아 흐트러짐 없는 삶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남도화단의 큰 어른으로서 귀감과 존경의 대상이었던 아산의 타계는 전통의 맥을 현대적으로 계승하고 재해석해가는 지역 미술의 흐름에서 듬직한 노둣돌 하나를 잃은 것이어서 참으로 애석함을 금할 수가 없다. 아산 조방원 화백은 1926년 전남 무안에서 태어나 1945년 남농 허건 선생의 문하에서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1977년부터 부산 서울(1979 세종문화회관, 1982 롯데미술관 등), 광주 (2004 광주시립미술관) 등 생전에 7회의 개인전을 가졌다. [제4회 국전](1955) 문교부장관상을 비롯, 이후 연속 3회 특선, [현대근대미술60년전](1972, 국립현대미술관), [한국현대동양화대전](1976, 국립현대미술관), 한국현대미술의 어제와 오늘](1986, 국립현대미술관), [동서양화 20인 초대전](1988, 광주 남봉미술관), [한국근대미술](1998, 국립광주박물관), [남도묵향 내일을 가다](2011, 광주시립미술관) 등의 전시에 초대되었다. 1963년부터 [국전] 초대작가가 되어 [국전]과 [전남도전] 등의 심사위원에 참여했고, 전통문화 계승과 국악 진흥을 위해 ‘남도국악원’(1968)을 건립하였으며, 담양 소쇄원 아래 지실마을에 묵노헌(墨奴軒, 1979)이라는 당호의 화숙을 지어 남화 전통을 현대적으로 계승해 낼 후진들의 양성에도 많은 공력을 기울였다. 이 묵노헌 등에서 수학한 동문 제자들이 1987년 묵노회(墨奴會)를 만들어 1987년 2월에 박광식 윤의중 강석관 정재윤 오견규 조광섭 등 31명이 첫 발표전을 가졌다. 이들은 남화의 새로운 해석과 개성을 존중하는 스승의 뜻을 따라 남농에서 아산으로 이어지는 호남 남화의 또 다른 화맥을 이루며 현대성을 가미한 변형구도와 채색, 묘법 등으로 각자 독자적인 회화세계들을 펼쳐가고 있다. 조광석 박광식 윤의중 오견규 조광익 김광옥 김송근 등이 회원이다. 또한, 아산은 오랜 기간 애정을 기울여 수집해 온 간찰과 고서화 등 소장품 7,000여점을 기증하여 1988년 전남도립옥과미술관 건립의 토대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