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호와 인상주의’ 국제세미나에서 다각도 재조명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광주미연 (61.♡.217.235) 작성일24-12-01 12:19 조회286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11월 28일 있었던 '오지호와 인상주의' 국제 세미나 ‘오지호와 인상주의’ 국제세미나에서 다각도 재조명 11.28 전남도립미술관 세미나실에서 한‧일 전문가들 발제 토론 2025년이면 탄생 120주년을 맞는 오지호 화백의 삶과 회화세계를 다각도로 조명하면서 올해 프랑스 인상주의 태동 150년을 기념하는 의미의 국제세미나가 열렸다. 11월 28일(목)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진행된 이 세미나는 미술관 측의 이번 기획전 추진 배경과 주요 전시 구성들의 소개에 이어 5인의 관련 전문가들 발제, 종합토론으로 이어졌다. 각 발제와 종합토론의 요지를 간추려 보았다. 발제 중 오지호 화백의 손자이기도 한 오병욱 교수는 [오지호의 미술론과 1940년대 작품] 주제발제에서 “관념적 설화적 문학적인 모든 것을 벗어난 것이 인상주의”라거나, “그림은 삶에서 나오고 삶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태양이다”, “모네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는 등의 오지호 화백이 남긴 노트 구절들을 소개하며 1930년대 말 1940년대 초에 이미 그분은 인상주의를 넘어 데포르메나 서정적 색채 등의 새로운 모색으로 나아가고 있었다고 보았다. 히로시 코마자와 동경예술대 교수는 [근대 일본 인상파 수용의 다양한 측면]에 대해 발제했다. 1878년 파리만국박람회 이후 일본인 유학파들이 늘어나고 동경미술대학 개교를 주도했던 오카쿠라 텐신이나 구로다 세이키 등을 통해 유럽의 인상파는 19세기말 일본미술에 큰 영향을 미쳤다면서, 바르비종파나 인상파적인 것들이 혼합된 일본 외광파는 유럽 인상파와는 달랐다고 했다. [오지호 일가의 작품 및 기록문헌 아카이브]에서 김이순 전 홍익대 교수는 2023년 진행한 도립미술관의 오지호와 삼부자 아카이브 작업을 토대로 “회화의 본질은 생명이고, 생명은 태양에 의해 드러난다. 그 태양 빛을 드러내는 데는 인상파 화법이 가장 유효하다”고 했던 오지호의 회화는 해방 이전에는 자연 그 자체이거나 생명에 대한 찬탄이 주를 이룬다면 해방 이후는 지역성이나 한국의 자연을 중시하는 차이를 보였다면서, ‘자연, 색, 민족, 구상성’을 오지호 회회의 4대 키워드로 보았다. 박미화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관리과장은 [오지호의 심미주의 작품세계]라는 발제에서 국현의 오지호 소장작품들 분석을 토대로 “조선의 아름다움은 밝고 명랑한 색채에 있고, 예술의 본질은 생명성이고 자연의 표현이며 회화는 아름다워야 한다”고 봤던 오지호의 심미주의 관점과, 감정이입, 데포르메, 감춰지고 변화된 그 끝이 보이지 않는 무리수여야 한다는 그의 회화는 인상주의 보다는 후기인상주의로 보인다고 했다. 이번 ‘오지호와 인상주의’ 전시의 공동기획자이기도 한 김허경 전남대 호남학연구원 학술연구교수는 [오지호화백작품전(1948) 해체와 <남향집>(1939)의 제작년도>라는 제목으로 발제했다. 1948년 광주 금융조합원에서 가졌던 오지호의 첫 개인전을 당시 8쪽짜리 팸플릿에 실린 목록과 첨부된 작품설명문들로 추적하고, 오지호 화백의 대표작인 <남향집>을 송도고보 재직시 거처였던 개성 초가집의 가옥구조와 등장하는 요소 등을 분석하며 제작 연도는 1939년이 맞다고 보았다. 3시간에 걸친 6인의 발제에 이어 조인호 광주미술문화연구소 대표가 좌장을 맡아 종합토론이 이엊ㅆ다. 오지호 회화에서 1940년대 해방 전후의 차이를 묻는 질문에 오병욱 교수는 1937년 38년 노트에서 인상주의 외에도 야수주의, 상징주의 등 서양미술의 사조들을 언급하고 있고, 이러한 생각들을 토대로 인상주의를 넘어 데포르메로 나아갔다고 답했다. 오지호 회화에서 한국과 남도의 로컬 색채를 묻는 질문에 히로시 코마자와 교수는 동아시아미술에서 다양한 로컬리티의 관심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공통적 색채와 독자적인 색채들이 있다며 오지호 회화는 후기로 갈수록 색채가 더 밝아지면서 인상파와 더불어 야수파나 마티스적인 요소들도 함께 나타난다고 했다. 오지호의 회화론이나 사상에서 어떤 변화의 지점들이 있는지 질문에 오병욱 교수는 그의 사상과 형식은 초기부터 다잡혀 있었고, 특별한 변화의 지점이 있기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끝까지 실천해 나갔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1920년대 동경 유학시절 일본 사회주의자들의 글을 오화백이 접하지 않았을까 하는 질문에도 오병욱 교수는 그분은 사상적으로 항일, 반일의식이 강했었고, 남아 있는 사회주의 관련 자료는 없다며, 조선의 현실에서 추상은 맞지 않다는 글을 남기기도 하셨다고 답했다. 한편, 이 국제 세미나와 더불어 오지호 화백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동반 교육프로그램으로 강연회도 개최되었다. 지난 11월 16일에 있었던 김병헌 소촌아트팩토리 센터장의 ‘인상주의란 무엇인가’ 강의에 이어 11월 30일에는 조인호 광주미술문화연구소 대표의 ‘오지호의 삶과 회화세계’로 각 2시간씩의 강의 후 방청객들과 자유롭게 질문 답변을 가지며 오지호 화백과 전시에 대한 이해를 넓혀주었다. - 광주미연 11월 28일 있었던 '오지호와 인상주의' 국제 세미나 '오지호와 인상주의' 국제 세미나에서 오병욱 교수의 발제 '오지호와 인상주의' 국제 세미나에서 히로시 코마자와 교수의 발제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