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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평론가 이세길 추모 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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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광주미연 (210.♡.209.39) 작성일09-11-21 15:47 조회9,33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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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평론가 이세길 추모 토론회


    2006년 9월 47세의 나이에 타계한 미술평론가 이세길을 추모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11월 21일(토) 오전 11시부터 1시 20분까지 대인시장 M갤러리에서 대인예술시장의 프로젝트 중 하나인 [야단법석]의 장으로 마련된 이 토론회는 그의 인간적 면모와 활동을 기리는 자리로 준비되었다. 따라서 그의 친구나 미술 문화계 동료들, 선후배들이 함께 모여 어쩔 수 없는 숙연함 속에서 진행되었는데, 그의 평론세계나 활동에 대해 깊이 있는 접근보다는 간단간단한 회고와 추모의 얘기들을 나누는 정도이면서 앞으로 유고집 발간 등 추모사업을 펼쳐 나가는 계기로서 의미가 깊은 자리가 되었다. 


    후배 윤정현은 이세길이 넘겨주고 간 ‘사라지는 것들’ ‘남녘서림’ 등 세편의 사진편집을 소개하였고, 친구 김민수(사업)는 “미술평론가 이전에 그의 본래 희망은 세상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예언가”였다며, 재학시절에 철학과 수석졸업을 할 정도로 학업도 우수했고, 광주일보에 필기시험은 합격하고도 면접에서 탈락되어 심적 상처가 컸을 것이라며, 어떤 움직임에 대해 너무도 적절하게 글로 묘사해내는 뛰어난 능력을 가진 그를 ‘이 시대의 언어적 마술사’라 불러줬다고 하였다. 친구 김해성(서양화가)은 본인이 정건호(후에 필명 이세길)에게 미술평론을 권유하여 그 길로 끌어들였었다며, 재수시절에 친구 몇이서 시집을 발간했는데 그 때 정건호는 노동시를 발표했었고, 그의 정신적 사고와 언어들이 이미 또래들과는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고 전담 평론가 같은 역할을 해줬었다고 회고했다.


    후배인 정희승(서양화가)은 그가 떠난 뒤 점차 ‘부재의 확인’을 느끼게 되었다며, 남녘서림에는 ‘책속에 칼이 있다’라는 문구를 붙여놓아 붙들려가지 않나 걱정스럽기도 했었다며 공과 사가 분명한, 촌스럽지 않은 쿨한 사람이었음을 회고했다. 또한 후배 박미경(광주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85년 희망야학에서 국어를 담당하고 있을 때 정건호는 교무담당이었다며, 모 잡지사 기자생활을 접으려던 차에 환경운동단체인 ‘광록회’ 쪽 일을 권했던 것이 지금까지 환경운동 일을 해오게 된 계기가 되었고, 해마다 오월이면 닷새정도씩 단식을 했었는데, 그 5ㆍ18에 대한 나름의 채무의식 또는 자학이었을 것이라고 돌아봤다.


    지인인 박성현(농사)씨는 광주에서 제일 높은 중앙교회 십자가의 무게에서 벗어나 화순에서 농사를 지으며 농민회를 구성하여 활동할 때 남낰서림에서 그가 권해 준 몇 권의 책들이 자신의 삶과 활동에 중요한 정신적 빝바탕들이 되었다고 고백하면서 ‘광록회’ 초기 구성원 중에 정건호가 속해 있었음을 알려 주었다. 광주비엔날레에서 함께 일했던 천윤희는 처음 광주비엔날레에 입사했을 때부터 문서작성법, 웹사이트 이미지 편집하기, 만나보면 좋은 사람들, 광주문화에 대한 얘기들을 챙겨주고 비엔날레를 거쳐 간 많은 젊은 친구들에게 맨토 역할을 해주었던 분이었다고 말하였다.


    ‘지역미술비평과 이세길’이라는 논제를 주문받았던 조인호(미술사)는 아직 미술평론가 이세길을 학술적으로 조명하는 발제의 자리가 되기에는 자료수합이나 정리, 행사 성격자체가 적절치 않은 상태임을 전제하며, 그의 평론의 세계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활동배경과 과정들에 대한 기초적인 접근정도에서 의견을 피력하였다. 그의 여러 부문에 걸친 다양한 활동 흔적과 폭넓은 소재의 글들을 볼 때 미술평론가로 국한시키기보다는 오히려 문예비평가 또는 문화비평가라고 칭하는 적절할 듯하다고 하였다. 유년기 신체적 사고 이후 성장통과도 같은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내적 성찰들로 평범한 또래들과는 다른 훨씬 진지한 정신세계의 바탕을 다졌을 것이고, 격동기 비뚤어져 돌아가는 세상사에 대한 저항과 투쟁, 오월 최악의 현장에서 물러난 비겁함에 대한 자의식, 시대적 좌절과 허무, 분노 등이 뒤섞여 시대문화를 비평하는 냉철한 책사이자 나름의 문화적인 멋을 즐길 줄 알았던 낭만처사였다고 평하였다. 아울러 ’97년 초 광주비엔날레 입사 이후 200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비엔날레에서 함께 했던 일들을 대략 정리하면서 그의 활동에서 빼놓을 수 없는 비엔날레 10년을 환기시키기도 하였다.


    미술평론가 이세길(본명 정건호)는 1959년 전남 무안 출생으로 건국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전남대학교 대학원 철학과를 수료하였으며, ’80년 광주 5ㆍ18 때 전남도청 현장에서 무기회수반으로 활동한 바 있고, 이후 광주 희망야학 자원봉사(1983-1985), 사회과학전문 "남녁서림" 운영(1986-1993), 우리소리연구회(1990-1992), 월간미술 통신원(1994-995), 95광주통일미술제 전시기획 참여(1995), 정보리서치 감사(1994-2006), 광주비엔날레(전시기획실 특별전팀 1997-98, 홍보사업부 기획홍보팀 1999-2003), 전시부 교육정보축제팀(2003-2006) 등에서 일하였다.

    역서로 『변증법적 유물론이란 무엇인가?』(도서출판 광주, 1990)와 공저『아름다운 세상 아름다운 그림』(도서출판 무진, 1999)이 있고 ‘현실의 욕망과 떠도는 낙원사이’(김해성의 회화세계)'(무등일보, 1994), '새로운 세기를 위한 새로운 각오'(무등일보 연재 미술월평, 1995), '광주/광주미술 길 찾기'(월간 미술세계 157호,1997.12), '발전을 위한 걸음걸이'(문학춘추 1999년 여름호), ‘광주미술의 지형도’ㆍ‘또 괴로운 오월’(광주미술문화연구소 ‘광주미연’ 창간호, 1999), ‘찔레꽃 풍경’ ‘찔레꽃의 노래’ ‘전라도 맛을 찾아서’ 등 연재(전라도닷컴 자유게시판, 2003), 광주 환경미술제 공동기획(2005ㆍ2006)에 참여하였다.

    광주전남문화연대, 광주민족예술인총연합(미술분과), 미술인회의, 광주미술인공동체, 광주문화포럼 회원, 광주비엔날레 기획홍보ㆍ교육ㆍ전시 담당, 광주미술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 광주미술(www.gwangjuart.com) 대표 등으로 활동하다 2006년 9월 20일 지병으로 타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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