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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관과 함축의 미- 수채화가 배동신 화백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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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광주미연 (211.♡.239.39) 작성일08-12-12 11:37 조회9,45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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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창적인 수채화로 한국 근현대미술사에 자신만의 회화세계를 구축했던 배동신(裵東信, 1920~2008) 화백이 노환으로 12월 10일 88년의 세수를 마감했다.

    일제 말부터 해방공간과 한국전쟁 이후 정치 경제 문화 모든 환경의 극심한 격동기를 관통하는 시기에 흔들림 없는 예술인생과 독창적인 수채화의 멋을 펼쳐내면서 결코 평범치 않은 인생역정만큼이나 숱한 얘기꺼리들을 남겼던 그의 타계는 단지 원로작가 한분의 자연적인 귀천과는 다른 애석함을 갖게 한다.

    배화백의 그림세계는 항상 힘 있는 필치들의 중첩과 투명한 수채화의 물맛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대상의 요체나 골기를 예리하게 추출하여 깊고 강건한 조형미를 함축해내는 독창적인 멋을 지니고 있었다. 즐겨 다루는 소재들도 무등산, 늙은 나부, 과일, 포구의 배 등으로 큰 묶음이 만들어지는데, 모두가 속도감 있게 뻗어나간 거친 붓질들로 엮어지면서도 든든한 무게감과 단단한 구조적 형상미를 화면가득 채워내곤 하였다. 군더더기나 일체의 꾸밈을 털어버린 절제와 함축, 거칠면서도 투명하고 중후한 아름다움이 그의 회화의 백미였다.        

    배화백은 1920년 전라남도 광산군 송정면(현재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정동)에서 태어나 17세 때 일본에 건너가 1939년 가와바다화학교(川端畵學校)에 입학, 1년 동안 데생 등 미술을 기본기를 익혔다. 태평양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1943년 일본 [자유미술가협회전]에 입상하는 등의 활동을 계속하다 해방 직전인 1945년 2월에 귀국한 뒤 1947년 10월 광주도시관에서 수채화 개인전을 열었다. 해방 후 광주의 첫 개인전인 이 발표전 후 1986년까지 26차례의 수채화 개인전과, 98년 배동신 수채화 60년전을 비롯, 수채화창작가협회, 황토회 등의 그룹전, 국립현대미술관의 한국미술대상전, 현대미술40년전, 광주전남미술50년전 등의 초대전을 통해 꾸준히 작품을 보여주었다.

    1978년부터 잠시 서울에서 활동하기도 했지만 1989년부터는 여수로 내려가 만년을 보냈다. 전라남도문화상, 오지호미술상, 보관문화훈장 등을 받았다.

    빈소는 여수성심병원 장례식장인데, 발인은 12월 12일이고, 장지는 여수시 문수동 카톨릭묘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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