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으로의 여행 / 화가 정순이 페이지 정보 작성자 백은하 작성일06-09-13 08:42 조회3,608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2층에 있는 작업실 문을 열자 캔버스 속의 청색의 몽환적인 공간이 눈 앞에 펼쳐진다. 어린시절, 난초와 붓꽃과 목단이 있던 작은 꽃밭. 정순이의 청색톤의 화면에는 우리가 가슴 안에 숨겨두고 있는 기억속의 공간이 펼쳐져 있다. 화가 정순이는 최근에 본 영화 ‘클림트’에 나오는 대사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것은 곧 쾌락이다.”라는 말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녀의 최근의 초대전은 2003년 부산롯데화랑에서 열린 ‘시간으로의 여행’전이다. 이 전시회에서 그녀는 ‘시간으로의 여행’ 연작을 발표했다. 이 전시회 도록에서 그녀는 작업노트를 공개했다. “작업실은 내게 있어서 기능적인 공간이기도 하지만, 자유와 해방의 시간에 다름 아니다. 내가 즐겨 등장시키는 나비처럼 훨훨 날아서 상상의 공간과 시간 속으로 비행하는 순간은 나의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을 몰아내고 캔버스 안으로 들어가는 때이기도 하다.” 그녀는 작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갈 때, 캔버스를 출입문 쪽으로 돌려 놓는다고 했다. 다음 날 아침 작업실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그림과의 첫 조우와의 느낌을 간직하기 위해서다. 그녀가 찾은 그림과의 소통을 긴장감있게 끌고 가기 위해 그녀가 벌이는 작은 퍼포먼스다. 그녀는 작업실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그녀가 가진 또 다른 일상들과 결별을 한다. 그리고 캔버스 속으로 조용하게 감정이입해간다. 물감을 짜고 붓질을 하는 시간들을 지나면, 캔버스 위에는 나비가 백합이 완벽한 형태를 지녔다가 서서히 사라진다. 화면 위해서는 나비의 몸이 사라졌지만, 청색 톤에는 나비의 날개가 숨어있다. 그녀의 화면에서 보여주는 생은 완성된 아름다움을 지향하고 있다. 그림을 그리면서 아름다움을 창조해가는 순간이야말로 그녀가 화가로서 느끼는 진정한 순간일 것이다. 화가가 시간속으로 여행을 시작하는 순간은, 어떤 사물을 통해서 이기도 하고, 작은 기억들이기도 하다. 그녀의 화면들은 과거의 순간들을 그대로 재현해내지 않고 그 순간들의 정황만 남는다. 그녀가 처음 미술을 좋아하게 된 것을 초등학교 때였다고 한다. 언니는 미술학원을 다녔고 그녀는 피아노 학원을 다녔다. 피아노 학원을 가는 길목에 작은 미술학원이 있었는데 그 미술학원은 유리창에 습자지를 붙여놓았다. 습자지에는 마름모꼴이나 별표 등을 오려놓아서 그 마름모꼴 사이로 학원의 풍경이 보였다. 청색 원피스를 입은 미술 선생님과 크레파스로 무엇인가를 그려가는 학생들. 그녀는 무릎이 까지고 해가 넘어갈때까지 정신을 놓고 그 풍경을 바라보았다. 어머니께 미술 학원을 가겠다고 말했지만 어머니는 피아노 학원만 다니라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미술대회에 나가서 수많은 상장을 받아왔고, 중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 비로소 미술학원을 다닐 수 있었다. 그 미술학원에서 강연균 선생님에게서 미술을 처음 배웠다. 강연균 선생님이 난로가에 앉아서 목탄으로 드로잉하는 것을 보면서 커서 꼭 화가가 되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그녀는 60년대에 서울로 미술실기대회를 다녔다. 당시에는 서라벌예대, 홍익대, 수도사대 등에서 미술실기대회가 있었다. 기차 한 칸을 빌려서 광주에서 미술을 공부하는 고등학생들이 모두 그 완행열차를 타고 달걀과 오징어를 먹으면서 열시간씩 걸려서 서울로 갔다. 종로에 있는 ‘신신여관’을 빌려서 잠을 자고, 대학 캠퍼스에서 실기대회에 참가했다. 그녀는 상복이 좋아서 아주 많은 상을 탔다고 한다. 김승옥의 ‘1964년 서울의 겨울’, 김지하의 ‘오적’ 등이 씌어질 당시다. 그녀는 조선대 미술교육과에 입학했고, 진양옥 교수, 임직순 교수, 황영성 교수 등에게서 미술을 배웠다. 그녀는 독신으로 살면서 그리만 그리면서 살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녀는 결혼을 했고 많은 시간들이 그녀를 스쳐지나갔다. 그녀는 인생에서 많은 소중한 것들을 일구어냈지만 미술을 향한 갈증과, 정신의 허기는 채워지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학교에 사표를 내고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섰고, 본격적으로 화업을 일구어갔다. 1994년에 오지호 미술상 기념 초대전을 가졌다. 1995년에는 헝가리에서 열린 ‘헝가리 기오르 비엔날레 한국전’에 출품했고, 프랑스 마르세이유에서 열린 ‘VIS-A-VIS 초대전’, ‘러시아 레핀 초대전’(1996), ‘스위스 쥬리히 국제INDO 아트페어’(1999) 등에 출품했다. “저는 옴니버스 형식으로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한 화면 안에 전개하는데 관심이 있습니다. 그 옴니버스들이 체계를 가지면서 이야기를 만들어가지요. 그 세계는 제가 알고 있는 세계이기도 하고, 아직 다가오지 않은 세계이기도 합니다. 저는 아름다운 하나의 세계를 향해서 나아갑니다”라고 말한다. 그녀의 미술이 이르고자 하는 세계는 잘 발효한 술같은 그런 아름다운 공간일 것이다. 낭만주의 시인 ‘윌리엄 워즈워드’는 ‘수선화’라는 시에서 사물과 인간이 진정으로 소통하는 한 전경을 보여주었다. “가끔, 침상에 누워/쓸쓸한 느낌이 들 때면/그들이 내면의 불을 밝히네/고독의 축복인/그러면 내 가슴은 기쁨에 가득차/수선화와 더불어 춤추네.” 화가 정순이는 화면 위에서 수선화와 더불어 춤출 순간을 기대하면서, 오늘도 붓질을 멈추지 않는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