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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갈의 심장, 안타레스 / 화가 이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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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백은하 작성일06-09-13 02:05 조회3,58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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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갈의 심장, 안타레스

    화가 이민하의 작품세계

    백은하 (소설가)


      미술 작품은 우아한 우주다.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라고 말했지만, 그의 말은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한다” 로 수정되었다. 우주는 아름다운 질서, 코스모스의 세계지만 간혹 불확정성의 원리가 존재한다.


      미술 작품도 정교하고 우아한 우주이지만, 간혹 물의 흘러내림이 존재한다. 화가의 기술이나 의도가 범접할 수 없는 작품만의 고유한 영적이 영역이 있다. 화가가 의도하지 않은 단 1%의 우연에 의해 그 작품이 빛을 얻을 때 화가는 이미 작품이 자신의 손길을 벗어나서 고유한 생명을 얻었음을 안다.


      지구는 제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고 암흑에 뒤덮여 있는 행성이다. 그래서 태양의 주위를 돌면서 빛과 에너지를 받아 생명체를 길러낸다. 그림에 인생을 건 화가는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는 행성같은 존재일까, 아니면 전갈의 심장, 안타레스처럼 스스로 빛을 내는 항성같은 존재일까. 전갈자리는 두 개의 쌍성이 서로의 주위를 돈다고 한다. 그래서 지구에서 전갈자리를 보면 심장이 뛰는것처럼 반짝반짝 빛난다고 한다. 두 별 가운데서 더 밝게 반짝이는 별의 이름이 ‘안타레스’이다.


      스스로 빛을 내서 온 우주에 빛을 뿌리는 존재. 예술가와 예술작품은 쌍성처럼 서로가 서로를 돌면서 반짝거린다. 전시장의 관람객은 반짝이는 안타레스같은 작품을 보면서 힘을 얻는다.


      화가 이민하의 화실은 6층에 있다. 이민하는 여수에서 태어나 여수에서 자랐고 여수의 바다를 보면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의 화실에서는 수평선이 보인다. 그는  여수의 바다를 본다. 응시. 일출의 바다. 일몰의 바다. 그의 화면에 바다의 출렁임이 스며든다.

     
    태양이 수평선 너머로 지고나면, 그는 번잡한 공간을 갈무리하고 장지 앞에 앉는다. 그는 장지에 청색 아크릴을 채색한다. 마른다. 다시 초록색 아크릴을 덧칠한다. 마른다. 다시 노란색 아크릴을 덧칠한다. 마른다. 바람이 장지를 스쳐 지나가는 사이 이민하의 청색은 황갈색이 되어있다. 황갈색톤의 ‘두 개의 풍경’(2005)은 그렇게 완성되었다. 물과 아크릴 물감과 시간이 녹아서 풍경을 완성했다. 하나의 타블로 안에는 두 개의 집이 있다. 두 개의 공간같기도 하고 두 개의 시간같기도하다. 현실적인 집 같기고 하고 정신의 집같기도 하다. 화면은 정적이다.


      시인 신병은은 “집은 인간의 삶과 근접하고 있어 태어나 죽을 때까지 혹은 비밀을 안고 있는 인간의 내면으로 존재한다. 어머니의 자궁같은 모태적 의미로 상징화되므로써 나무와 조화를 이루면서 꾸며지지 않은 편안한 안식을 준다.”고 이민하의 전시회 서문에 썼다. 그의 작품에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집, 섬, 등대, 종이배 등은 화가의 삶을 응축한 기표들이다.


      이민하는 미술에 첫 경험을 한 것이 아홉살 때였다고 한다. 학교에서 바닷가로 사생대회를 갔다. 바닷가에는 해풍이 불고 있었고, 해당화가 피어 있었다. 그는 화판이 없어서 바위위에 도화지를 놓고 그림을 그렸다. 바위의 오돌토돌한 질감이 그림에 스며들어서인지 그의 그림은 최고상을 받았다. 그 후로 그는 자신에게 그림이 소질이 있다고 생각했고, 중학교 1학년때 미술부에 들어가면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미술부 선배들로부터 그림을 배운다. 초현실주의 작가 막스 에른스트가 날짜까지 기억해가면서 신화를 만들어낸 ‘프로타쥬’ 기법을 화가 이민하는 아홉살 사생대회에서 경험했다.


      그러나 미술의 길은 쉽게 열리지 않았고 26세가 되던 해에 비로소 경기대 회화과에 입학한다. 그는 작업실에 틀어박힌다. 오랜시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었는데 비로소 미술적인 공간과 미술서적들, 동료 그리고 스승인 지석철 교수를 만난다. 그는 대학시절에는 파티션 작업을 하면서 구상과 추상을 넘나들었고, ‘줄리안 슈나벨’ ‘데이비드 살레’ 등의 작품에 호감을 갖고 있었다. 대학 4년동안은 그가 가장 충일하고 순수하게 작품에 몰두한 시기였다. 도무지 작업이 풀리지 않던 어느 오후, 그는 지석철 교수에게 물었다.


      “교수님, 도대체 어떻게 하면 그림을 잘 그릴 수 있습니까?”

      지석철 교수는 짧게 대답했다. “지금 당장 작업실로 가서 그림을 더 그려라.” 단순명료했다. 그 시기는 더 많은 선을 그리고, 더 많은 색을 써 봐야 할 시기였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졸업을 할 무렵 지석철 교수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감성은 촌놈처럼 가지고 있되, 그림을 해가는 방법은 고도의 세련된 서울놈이 되어라.”


      그는 ‘1970년대 한국의 모노크롬 회화의 연구’라는 논문을 썼고, 1991년 서울 ‘백송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다. 그의 초기작들은 ‘하나 ․모뉴멘트’(1991), ‘비시간적인 전망’(1993) 등의 작품들이 있다. 많은 모색의 시간들이 흘러갔다. 어느 가을 날, 그는 호암미술관에서 장욱진展을 보게 된다. 장욱진 화백의 작품들은 심플하고 단순하면서 서정적이었다. 그 후 그의 작품은 초현실주의적인 경향을 띠면서 미니멀해진다. 그는 선에 집중하게 되고 동양의 선적인 직관을 화면에 표현해내고 싶었다고 한다.


      그는 작업일지에“스님들이 참선을 통해 깨달음을 찾아간다면, 나는 그림 속을 헤메며 미학적 깨달음을 얻고자 하며 내면을 정화해 가고 싶다.”고 적고 있다. 화가 이민하가 그려낸 ‘기억의 바다’(2005)는 심플한 선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는 “그림은 완벽한 설명이나 많은 이야기보다는 단순한 선 몇 개로 이쪽 경계와 저쪽 경계를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좋은 예술이란 순수한 감성과 고도의 테크닉이 만났을 때 비로소 태어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한다. 앞으로 그의 화면은 조금씩 초현실주의적인 세계로 갈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현실을 이탈해버린 초현실이 아닌, 현실에 두 발을 딛고 있는 세계다.


      예술은 각자의 취향대로 중독되어가는 것이라고 했던가. ‘화가 이민하’는 막걸리같은데 그의 작품은 화이트와인같다. 안타레스는 아마도 화이트와인같은 그의 작품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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