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적 몽상, 영원한 無等의 노래 페이지 정보 작성자 백은하 작성일10-03-15 10:41 조회4,208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신화적 몽상, 영원한 無等의 노래 - 화가 정용규의 작품세계 - 글 백은하 (소설가) 봄이다. 봄바람이 인다. 청매 나무가 저희들끼리 두런거리고 홍매가 한껏 몸을 벌린다. 산수유나무에 노란 산수유꽃이 만발했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상의 작은 기적. 세렌디피티. 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다가왔고 식물들은 관능의 축제를 벌린다. 봄이 되면 화가 정용규(54)는 지리산 자락에 있는 구례 산동마을로 향한다. 그곳에는 노란 산수유꽃들이 향연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산수유꽃 향기를 맡으면서 걷고 또 걷는다. 인간은 자연에게 가혹하게 굴지만, 자연은 인간에게 새 순(筍)을 내밀면서 치유의 손길을 내민다. 정용규의 최근작들 <무등의 꿈> <생의 노래> <바램의 노래> <봄날> 등은 100호가 넘는 대작이기도 하지만 색채 또한 화려하기 그지없다. 옐로우, 블루, 레드 등이 거침없이 화면을 수놓고 있다. <생의 노래>는 한 화면 안에 아이를 등에 업고 있는 어머니, 갯벌에서 굴을 캐고 있는 어촌의 여인, 포구에 정박해 있는 배, 바다와 하늘, 그리고 해바라기가 한 화면에 함께 어울어져 있다. 무엇보다 정면에 배치된 해바라기에서 꿈틀꿈틀한 생명력이 엿보인다. 초기작, <도시의 삶> 연작 시리즈 정용규의 화면은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처럼 한 화면 속에 숱하게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최근작들은 색채가 화려해지면서 생명력이 충만해있지만, 이곳에 당도하기까지 그의 작품들도 숱한 변화의 순간들이 있었다. 예술가의 각성(覺性)은 조개 속의 진주처럼 고통의 시간들이 응축되어져서 순간에 이루어지는 듯하다. 화가 정용규는 1956년에 광주에서 태어나 조선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1983년에 <아카데미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으니까, 그가 붓을 잡은지도 어언 30여년이 넘었다. 그는 광주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5․18항쟁을 겪었고 광주를 할퀴고 지나간 크고 작은 상처들을 받으면서 작가로 성장해간다. 그는 1988년에 결성된 <광주 ․ 전남 미술인 공동체> 창립에 참여하면서 급변하는 사회 환경 속에서 예술인의 책무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그의 <도시의 삶> 연작 시리즈는 자본주의 속에서 삶을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삶을 리얼리즘적으로 그렸다. 신화적 상상력의 극대화 1996년은 그에게 일상에서건 작업에서건 커다란 전기를 맞은 모멘텀의 시기였다. 형의 사업이 실패하면서 그 고통을 고스란히 감당해야했다. 개인적으로는 절망적인 상황을 맞았지만 <생의 기원>이라는 작품으로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특선을 했다. 그는 암흑같은 시간을 견디며서 캔버스 앞에 앉아 있었고 그의 작품들은 서서히 변화한다. 작품에 단청, 목어, 법고, 서낭, 부엉이, 달 등이 소재로 차용되고, 남녀의 사랑, 사냥, 농경 사회의 추수, 생명력의 상징인 ‘태양’이 등장하면서 화면은 점점 신화적인 공간을 형성해간다. <설화(說話)><무등의 노래> <금강산 상팔당> 등은 전통 산수화가 현대적으로 재해석된듯한 느낌을 준다. <영원한 무등의 노래>라는 작품에서 그의 신화적 상상력은 극대화된다. 그가 비로소 개인적인 아픔과 역사적인 아픔을 모두 극복하고 자유스러워졌음이 느껴진다. 무등산을 배경으로 어둠을 나타내는 부엉이들이 입석대 아래 배치되어 있고, 팔선녀가 꽃구름을 타고 하늘로 승천하면서 광주의 아픔을 ‘씻김’한다. 그 옆으로 기품있고 고고한 학들이 비상하면서 무등산 위의 하늘에는 황금색의 서기가 어린다. 화면의 왼쪽에는 남도 풍류의 현장인 가사문화권을 이미지화했다. 마치 천지가 개벽하는 듯, 상서로운 기원이 감돌고 있는 이 작품은 광주(光州)가 아픈 과거를 극복하고 새로운 역사의 장(場)을 열어가고자 하는 정용규의 기원이 담긴 현대의 신화(神話)다. ▲ 작품 : 정용규. <영원한 무등의 노래> 162×112㎝, Mixed Media Oil on Canvas. 2008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