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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물과 썰물의 모래시계/ 아티스트 진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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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백은하 작성일06-10-23 11:09 조회5,13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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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물과 썰물의 모래시계

    아티스트 진시영의 작품세계


    백은하 (소설가)


      아티스트 진시영은 카메라를 포함한 장비를 싣고 길을 떠났다. 그는 우주의 시간과 자연의 순환을 어떻게 시각적으로 표현할까 고민하던 중 중력이 떠올랐다. 중력은 항상 우리 곁에 존재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느끼거나 생각하지 않고 일상을 살아간다.


      현대인들은 매일매일 비슷한 일을 하면서 정신없이 살다가, 창문을 통해서 노랗게 물이 든 은행나무잎을 발견하는 순간이 있다. 봄이었다가 여름이었다가 어느새 가을인 것이다. 느낌의 순간들은 짧게 우리를 스쳐지나가고 우리는 다시 반복적인 일상으로 되돌아간다. 진시영은 이런 일상을 이루고 있는 입자, 시간을 선명한 색채로 그리고 싶었다. 그는 <Tide>, '조류’가 떠올랐다. 밀물과 썰물은 달의 시간에 맞추어서 정확하게 순환한다.


      진시영은 뉴욕의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는 지도를 펴 놓고 밀물과 썰물의 시간대가 가장 큰 곳을 찾았다. 그의 눈길을 잡아끈 문구가 있었다. ‘The Best Places on Earth to see the highest tides!' 뉴욕에서 비교적 가까운 캐나다의 노바 스코시아를 촬영지로 결정하고 길을 떠났다.


      길을 떠날 때까지도 그에게 어떤 확신은 없었다. 긴 시간을 달려서 노바 스코시아에 도착했을 때는 새벽이었다. 그는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캠코더를 설치하고 새벽의 바다를 바라보았다. 푸른 기운이 도는 바닷물이 출렁이고 있었다. 저 푸른빛의 바닷물이 빠져 나가고 육지가 나온다는 것이 감이 오지 않을 정도의 프러시안블루였다.


      그는 캠코더를 켜놓고 승용차 안에서 눈을 부쳤다. 눈을 떴을 때 햇살이 눈부셨다. 그는  천천히 걸어서 앵글로 다가갔다. 앵글 안에는 황토빛을 띤 육지가 보였다. <Tide>는 비디오 인스톨레이션 기법을 이용했는데, 미술에 테크놀러지가 결합한 양식의 절정을 보여주는 작품 중의 하나다.


      그는 밀물과 썰물을 각각 여섯 시간을 촬영한 후 1분30초로 단축해서 두 이미지를 수평선으로 결합했다. 그리고 센서와 모터를 이용해서 40인치 LCD모니터를 180도 회전시켰다. 그리고 또 다시 180도 회전시켰다. 모니터에 갖혀 있는 자연의 물이 회전하는 동안 위에서 아래로 다시 아래에서 위로 흐르는 상징적인 모래 시계를 만들어낸  명상적인 작품이다.


      진시영은 대학에서는 페인팅을 전공했다. 그런데 제 1회 광주비엔날레 전시를 보면서 현대미술에 대해서 충격과 놀라움을 겪었다. 새로운 것에 대해서 갈증을 느끼면서 길을 찾던 중 뉴욕에 있는 프랫 인스티튜트에 ‘New Form'이라는 전공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미술유학길에 올랐다. 그는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로버트 카자리아교수를 만났다. 교육자로서는 엄격하신 분이었지만 그의 일상과 작업에서 예민하고 다정한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Tide>를 전시할 때 모니터를 회전시키는 문제가 난제로 남았는데 로버트 카잘리아 교수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술로 직접 설치를 도와주었다고 한다. 전기 플러그를 꽃자 LCD모니터가 회전을 시작했고 물이 위에서 아래로 혹은 아래에서 위로 흐르기 시작했다. 로버트 카잘리아 교수가 그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진시영이 시각적인 충격을 넘어서서 진정한 크리에이티브의 순간을 경험한 순간이었다.


      진시영은 2006년 가을에 두 차례의 국제전에 출품했다. 2006광주비엔날레 열풍변주곡  마지막장에 ‘광주-일상의 단편들’을 출품했고 제4회 서울국제미디어아트 비엔날레 본전시에 참가했다. 지난 7월에는 국립현대미술관 창동 스튜디오에서 ‘Distance’ 라는 타이틀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Distance’에는 <골목길> <Human maze><Bricks Illusion><Heart><Tide><Violence>가 출품되었다. 


      <Human maze>는 ‘인간미로’다. <Human maze>는 2005년에 제작되었다. 조물주의 시선으로 바라본 인간의 마음으로 평면이 입체가 되어서 현실과 허구를 무너뜨리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조선대 체육관에서 촬영되었다. 거대한 흰 종이에 연필로 연기자만 알아볼 수 있도록 미로의 선을 그린 뒤 미로를 통과하는 장면을 촬영한 후, 그 영상을 사람의 키 높이의 미로 지도를  위한 검정 테이프가 붙은 4면의 근접화면에 프로젝팅했다.  


      종이 위에 그려진 미로 사이를 인간이 기어다니고 그 평면 종이가 큐브가 된다. 평면의 종이 위를 기어다녔던 인간이 3D 화면 속에서는 벽을 오르고 있다. 필자는 책과 현실공간을 기어다니는 도마뱀이 나오는 에셔의 작품이 떠올랐다. 지구의 중력이 점점 약해져서 결국 에너지가 영이 되어서 태양계 밖 다른 별로 날아가는 환상도 있었다. 그 곳은  화이트홀이다. 블랙홀을 통과한 수많은 사람들과 집기들 궁전 꽃 우산 연필 계산기 등이 다시 쏟아져 나와서  다시 세팅되어 있는 것이다. 눈을 떴는데 지구가 아닌 다른 별에 있는 것은 확실한데 베르사이유 궁전 속에 누워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옆에서 시인 랭보가 압생트를 마시고 있다. 진시영의 작품 속에서는 이 모든 환상들이 현실이 된다. 2D가 3D가 되고 밀물과 썰물이 함께 있는 공간이 탄생하는 것이다.


      필자가 가장 호기심을 느낀 작품은 <Violence>다. 끝이 없어 보이는 수평선 위로 두 다리가 어떤 용기를 밟고 지나간다. 양분된 선을 중앙으로 위쪽 부분은 시간의 힘을 상징하고 아래 부분은 운명을 상징한다. 중력과 시간에 의해 작은 용기는 무작위적으로 터지기 시작한다. 끈적이는 빨간 액체는 생물학적인 육체를 암시한다.
     
    인간은 시간이라는 ‘Violence’가 밟고 지나가면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그림을 그려낸다. 그 그림은 의도되었다기보다 우연에 의존하고 있다. 운명을 결정하는 것에 우연적인 요소가 얼마나 될까. ‘Violence’를 발음하는데 ‘바이올렛’이라는 꽃이 떠올랐다. 폭력과 바이올렛은 어울리지 않지만 진시영의 <Violence>라는 작품은 보랏빛 바이올렛을 연상시켰다. 인간은 거대한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밟히지만 결국 인간은 자신의 내적의지에 의해 살아간다. 떨어지는 노란 은행잎 한장에  의해 완전하게 변화할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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