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테라스 / 아티스트 윤익 > 박은하의 미술읽기

본문 바로가기

백은하의 미술읽기

Home > 남도미술자료실 > 백은하의 미술읽기
    박은하의 미술읽기

    봄의 테라스 / 아티스트 윤익

    페이지 정보

    작성자 백은하 작성일06-09-13 02:02 조회3,031회 댓글0건

    본문


    봄의 테라스

    멀티미디어 아티스트, 윤익


    봄은 종달새 노래 소리로부터 온다. 명랑한 새소리. 남국 사람들은 청매화꽃을 보기 위해 길을 떠나고 홍매화꽃 떨어지는 거리에서 봄이 절정에 이르렀음을 안다. 홍매화꽃이 지는 순간, 꽃냄새를 맡은 적이 있다. 땅을 보며 길을 걷고 있다가 스쳐지나가는 꽃냄새에 고개를 쳐들었다. 보도블럭 위로 홍매화꽃이 지고 있었다. 또 하나의 경험이 나를 스쳐갔다.

      봄은 지나가버리므로 예술가는 테라스를 꾸민다. 테라스를 팬지꽃으로 장식하고 촛불을 켠다. 촛불 안에 봄은 없지만, 타는 촛불을 보면서 봄을 기억한다. 멀티미디어 아티스트 윤익은 지붕 아래의 은신처에서 긴 몽상의 시간을 보내다가 숲으로 난 길을 향해 발길을 내딛었다.


      윤익은 2001년 프랑스 부르지에 있는 ‘국립자연사박물관’에서 ‘새소리’전으로 프랑스 화단에 데뷔했다. 그는 ‘새소리’전에서 나뭇가지, 소리, 물 등의 재료를 이용해서 그의 시간과 자연의 소리를 보여주었다. 그가 파리에서 유학중이던 1999년에 홍수가 났었다. 뱅센느숲의 커다란 마로니에 나무들이 뽑혀져서 물길에 떠내려갔다. 그는 거센 물살을 견뎌내지 못하고 떠내려가는 마로니에들을 보면서 인간이 자연 앞에서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지 절감했다. 홍수가 지나가고 뱅센느숲은 앙상한 몸을 드러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상처받은 숲에서는 다시 초록색 싹이 돋아났고 새들은 나뭇가지를 물어다가 둥지를 틀기 시작했다.


      그는 매일 아침 숲으로 산책을 갔다. 싹이 트는 순간을 사진을 찍고 나뭇가지들을 주어 모으면서 새소리를 듣게 된다. 그 순간들이 모아져서 ‘새소리’전이 탄생한다. 그가 오랫동안 머물렀던 정신의 테라스, 즉 예술의 공간을 지어낸 것이다.


      부르지 국립미술학교의 은사였던 ‘실비 크리디에’ 교수는 아름다운 서문에서

      “나뭇가지들은 나무의 과거이며 사진들과 새소리들은 멈춰진 시간들이며, 일부는 씨앗들이 발아하는 화분위에 올려져 있는 새둥지들의 부름 등의, 여러 정신적 시간들을 마치 수정체처럼 결정화 해내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 간접적인 묘사가 아닌 생명의 과정 자체를 보여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중앙대 대학원 시절, 사회는 격렬한 민주화 물결의 진통을 앓고 있었다. 대학 시절부터 그는 사회적 언어와 개인적 언어 사이에서 갈등을 하고 있었다. 그 시절 청년들에게는 피해갈 수 없는 고민들이었다. 그를 지켜보던 조각가 박석원 교수는 그에게 말했다.

      “조각에는 조각만의 고유한 언어가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이제부터는 순수하게 조각의 언어에 대해 공부해 봐라.”


      그는 그 때부터 여러가지 재료들을 쓰면서 자신만의 조각의 언어를 찾기 위해  나무를 깎고, 철조 작업들을 한다. 중앙대 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치고 그는 프랑스 유학길에 오른다. 그는 부르지 국립미술학교를 졸업하고,
    파리 8대학에서 조형예술학 석사를 마쳤고, 파리 1대학에서 조형예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0년간의 긴 유학생활이었다. 그 동안 그는 ‘투명성’과 ‘시간의 그림자’라는 전시회를 개최했다. 지금은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면서 활동을 하고 있다.


      2004년 전주에 있는 오스갤러리에서 ‘호흡과 영감’전을 열었다.
    오스갤러리 야외 설치조각전은 6개월 동안 진행되었는데, 관람객들은 호수와 산, 파란하늘, 초록 나무 그리고 오스갤러리의 건축물을 자신의 몸체 사이로 비추어 보여주는 열려진 작품을 만나게 되었다. 자연 속에서 찬란한 빛과 신선한 공기, 새소리가 투명하게 존재를 드러내는 그의 작품은 일몰 이후에도 시적인 표현으로 이용된 푸른색의 네온조명을 통하여 새롭게 변신했다. 밤 풍경이다. 칠흙같은 어둠 속에서 네온은 반짝였다.


      ‘피에르 프랑카스텔’은 “예술작품이란 창조자의 목록에 하나를 더 추가하는 의미로서의 자연적 물체가 아니라, 그것은 정신들(esprits) 간의 만남의 장소이며, 하나의 기호(signe) 로서 다른 모든 언어와 같은 자격으로 연계된 일종의 기호이다.”

    라고 말했다.


      야외에서 개최되었던 작품들은 신세계갤러리에서 열린 ‘호흡과 영감’전에서 실내 전시장 안으로 들어온다. 작가의 정신의 한 영역이 축약되어진 듯한 환상적인 보랏빛 공간이 연출되었다. 천장에서 내려온 제의적인 매화가지, 지면에 깔리듯 설치되어 있는 파란하늘의 이미지를 담고 있는 물 등을 통해 작가는 관람객들에게 어린시절 호숫가나 시냇가에서 경험했던 자연과의 만남을 상기시켰다. 전시장 안의 네온 불빛과 공중에 떠 있는 AIR라는 기호. 전시장 안에는 문명과 자연, 자연과 인간 이라는 대립적인 기호들이 상호화합하면서 안전한 테라스를 만들었다.


      관람객들은 윤익이 만들어놓은 봄의 테라스에 앉아서 자신의 기억을 떠올리고 또다른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간다. 뱅센느 숲을 산책하던 작가의 호흡, 소쇄원에서 청매화꽃 냄새를 맡던 날들, 작가는 매화 가지를 꺾어서 건내는 오랜 말벗처럼 자신이 경험한 시간과 공간들을 이야기한다.


      완전한 긍정의 시간. 초봄이면 청매화꽃을 보여주고, 매화 가지를 꺾어주던 친구가 있었을까? 어딘가 실개천에는 살얼음이 얼어 있어도 벌써 겨울이 끝났음을 청매화꽃이 피어 있음을 알려주던 친구. 예술가는 관람객에게 그 정도의 훈기를 주는 존재감있는 벗이 되고 싶어하는 걸까?

      ‘호흡과 영감’ 전시회장에서 매화가지를 보면서 예술의 미적 체험을 경험한 열아홉 청년이 마흔살이 되어서 자신이 일상에 매몰되어 가려할 때, 그의 머릿속에서 열아홉 시절 전시장 안에서 보았던 윤익의 매화와 물이 떠오르면서 예술적 영감에 젖을 때, 비로소 전시는 완성될 것이다. 봄은 지나가고 있는데, 홍매화꽃 냄새가 맡고 싶다.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 Copyright 2024 광주미술문화연구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의 이미지들은 게시자와 협의없이 임의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