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간다 - 화가 안태영의 작품세계 페이지 정보 작성자 백은하 작성일10-09-03 17:44 조회4,261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봄날은 간다 - 화가 안태영의 작품세계 - 글 : 백은하 (소설가) ‘오아시스의 깊은 밤’(Midnight at the oasis) 은 마녀들의 시간이다. 마녀들이 깨어나 촛불을 켜고, 창문을 열고 북극성의 별빛을 방안으로 끌어들인다. 그 시간에 예술가는 북극성으로부터 흘러온 별빛 속에서 예술적인 영감을 얻는다. 안태영의 작업실에 들어서자 100호 화면을 가득 채운 초록색 왕사탕이 눈길을 잡아끈다. 그의 화면은 한때 바람처럼 우리 옆을 스쳐 지나간 ‘아시드재즈’ 선율처럼 맑고 가볍고 세련됐다. 초록, 스칼렛 본연의 컬러가 너무 선명하고 명징해서 6월의 아침햇살같다. 그는 처음에는 아크릴 물감으로 작업을 했지만, 아크릴 물감이 주는 가벼움의 한계를 느끼고 현재는 유화 물감으로 작업을 하고 있다. 그가 현재 몰두하고 있는 두 가지의 사물은 ‘왕사탕’과 ‘조각보’다. 조각보 위에 색색의 알사탕이 그려질 예정이다. 그 알사탕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그는 알사탕이라는 소재가 자신에게 왔던 날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유품을 정리하면서 그에게는 손수건과 나무로 된 거울이 남겨졌다. 할머니와의 기억은 그 나이 또래의 평범한 남자들이 갖고 있는 정도의 소박한 것들이었다. 어느날 작업실에 놓여져 있던 할머니의 채송화가 수놓아진 옥양목 손수건이 작가에게 말을 걸어왔다. 어린시절 할머니는 그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손수건에 각양각색의 알사탕들을 싸놓았다가 건네주시고는 했다. 모든것이 풍부하지 못하던 시절, 할머니가 어린 손주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사랑 표현이었다. 1999년부터 시작된 그의 초기 작품들을 보고 있자면 가슴을 치는 장면들이 있다. 채송화가 수놓아진 옥양목 손수건, 어머니의 꽃신, 물방울이 맺혀있는 연두색 우산. <칵테일 사연>이라는 작품을 보면 첫미팅을 하고 있는 그가 떠올라 미소가 지어진다. <할머니의 기원>은 안태영의 작품 중에서 가장 포에틱(Poetic)하다. 염주에 손수건이 감겨져 있다. 한국의 여인들은 습관적으로 나무 앞에서도 돌탑 앞에서도 고개를 숙이고 몸을 낮추고 두손을 모으고 기도를 했다. 그는 사진을 찍듯이 삶의 한 장면을 포착해냈다. 안태영은 작품 속에 그가 기억하고 있는 삶의 파편들을 정교하게 새겨넣었다. 그는 두번째 개인전 전시회 제목을 <사연이 있는 여백>으로 붙였다. 대체 ‘사연’이란 무엇일까. ‘사연’은 기억과도 다르고, 추억과도 다르고, 이야기와도 다르다. 러브스토리와도 완전하게 다르다. 숱하게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구구절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것. 우리가 첫사랑의 혼란스러운 떨림을 말로 표현해낼 수 없는 것과 닮아있다. 그의 작품을 보면서 떠오른 것은 ‘봄날은 간다’라는 유행가 가사다. 새가 날면 같이 웃고, 새가 울면 같이 울자던 님은 어디론가 떠나버리고, 홀로 남은 여인이 손수건에 눈물을 찍어내고 있는 풍경이 섬세하게 묘사된다. 안태영의 작품은 현대미술 안에서 ‘하이퍼리얼리즘’ 계열이다. ‘하이퍼리얼리즘’은 본질적으로 미국적인 리얼리즘으로, 특히 ‘팝 아트’의 강력한 영향으로 일어난 운동이다. 하지만 안태영의 작품들이 ‘팝아트’의 가벼움을 넘어설 가능성이 있는 이유는 그 작품들이 품고 있는 삶에 대한 깊이 있는 관조 때문이다. <휴일의 세탁소>라는 작품에서는 다리미의 디테일한 묘사 때문에, 다리미가 주인공이 되어 나타나 20년동안 세탁소 주인과 동거동락하면서 울고 웃었던 이야기들을 주절이 주절이 털어놓을 것만 같다. 다리미의 전선에 돌돌 감겨져있는 낡고 손때묻은 옷감들에는 세탁소 주인이 보내온 지난한 세월의 그림자들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밥을 벌어, 자식들을 입히고 가르치면서 울고 웃었을 세월의 흔적들이다. 어머니의 뒷모습을 그린 <꽃신에 얽힌 사연>에 이르면 작가와 작품간의 가까워진 거리 때문에 더 밀도있게 감정선이 드러난다. 캔버스 뒷면에 붓 한자루가 정중앙에 놓여져있는 <마이웨이>에서 그는 자신의 화가로서의 앞날의 소망을 정확하게 표현해냈다. 그리고 <할머니가 주신 왕사탕>은 또 다른 시작같다. 힘겹게 알을 깨고 나와 새로운 차원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청년작가 안태영에게, 높고 푸른 하늘같은 예술적 풍경이 펼쳐지길 기원한다. 안태영, <할머니가 주신 왕사탕>, 2009, 53.0×33.4cm, 캔버스에 유화, 2009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