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네- 화가 황재형 ②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광주미연 작성일18-12-12 12:10 조회1,640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네 화가 황재형의 작품 세계 - ② 백은하 (소설가) 일을 끝내고 돌아오던 어느 저녁, 그는 황지의 샛강 위로 노을이 지는 것을 보았다. 아름다웠다. 석탄 때문에 강물은 검게 변해서 흐르고 있었지만 그 검은 강물 위로 노을이 졌다. 그는 발걸음을 멈추고 그 광경을 응시했다. 눈물이 났다. 그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졌다. 자신이 탄을 캐는 노동자가 될 수는 없지만, 그가 받은 고급 미술교육을 통한 진정한 노동이 있을 법도 했다. 그는 작업과 미술 사회교육 활동을 서서히 함께하기 시작했다. <탄천의 노을>은 227× 162㎝ 크기의 유화로 그린 대작이다. 그는 캔버스 밑칠에 석탄이나, 흙 등을 발라보았다. 석탄, 황지의 흙, 유화 물감 등을 혼합해서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내용만큼이나 형식도 중요하지만 그는 자신의 주변에 가까이 있는 것들에 생명을 불어 넣으면서 소처럼 느린 걸음으로 그러나 지치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기 시작했다. 커다란 이백호 화면에 손으로 흙을 짓이겨서 발라보기도 하고 탄가루를 발라보기도 했다. 흙이나 탄가루에는 자연의 물성이 주는 촉촉한 질감이 있었다. 흙이 유화 물감을 빨아들이면서 내는 독특한 색채도 있었다. 급격한 산업화로 세상이 급변하고 있듯이 한국 미술계의 내용과 형식도 급변하고 있었다. 새로운 사조들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그러나 그는 평면의 아름다움을 의심하지 않았고, 그리는 것의 수공업적인 아름다움도 잊지 않았다. 캔버스에 손으로 흙을 문지를 때의 몸과 캔버스의 일치가 주는 충일감, 캔버스에 붓질을 할 때의 몸의 감촉과 더워지는 피. 그는 갈급하지 않았고 침착했으며 시간의 힘을 믿었다. 조르주 브라크는 “예술가를 생각나게 하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인간을 생각나게 하는 작품이 있다.”고 말했다. 황재형에게 중요한 것은 인간이었다. <식사>는 갱도안에서의 광부들의 점심 식사다. 정중앙에 소실점이 있다. 간결하다. 그 소실점을 중심으로 광부들이 둘러앉아 있다. 광부들의 핼멧의 랜턴의 불빛은 정확하게 맞은편에 앉아 있는 동료의 도시락 위에 떨어진다. 서로서로가 랜턴의 불빛에 의지해서 불을 밝히고 밥을 먹는다. 지상에서 가장 맛있는 만찬이다. 연대다. 산다는 것의 숭고함. 그의 모친은 호미로 밭을 메면서 인생을 살아가고 광부들은 갱도 속에서 탄을 캐면서 살아간다. 결국 사람살이였다. <식사>는 오전에 일하고 점심 시간에 동료와 함께 밥을 먹는 아주 소소한 일상이지만 시대를 초월해서 그 작품을 보는 관객의 마음을 치는 울림이 있다. 그가 포착한 <광부 초상>은 아주 평범해 보이지만 극적인 구성이 있다. ‘극적인 효과’란 자연의 한 구석과 그 자연에 더해진 인간을 가장 잘 이해하게 해주는 요소다. 렘브란트의 초상화에서도 극적인 효과를 발견할 수 있다. 어떤 결정적 한 순간, <광부 초상> 속의 인물은 무엇인가를 말하고자 한다. 광부의 인물상은 전신상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평생 거친 노동을 하면서 살아온 광부의 얼굴에는 실처럼 크고 작은 주름살이 나무의 나이테처럼 가득 내려앉아 있다. 황재형은 그 주름살을 극사실주의 기법으로 세밀하게 묘사했다. 주목할만한 것은 ‘광부’라고 이름 붙여진 익명의 남자지만 그 눈빛만은 형형하다. 광부는 형형한 눈빛으로 포커스의 중앙을 응시한다. 관람객의 눈빛과 정면으로 대응하는 각도다. 몸을 옆으로 비틀지도 않았고, 시선을 내려깔지도 않았고, 시선이 위를 향하지도 않았다. 광부는 정면을 응시한다. 단 하나의 장식도 없이 간결하고 단순한 선이다. 인물의 얼굴 주름이며 옷주름, 색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단순하다. 모사를 꾸미거나 헛된 감언이설을 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긍정하면서 일하며 살아가는 노동자의 건강함이 느껴진다. 황재형의 작업이 진정한 ‘美’를 획득해가고 있었음이 느껴진다. 삶과 노동에 대한 ‘완전한 긍정’말이다. <고목>도 소실점을 정중앙에 두고 있다. 오로지 ‘고목’ 한 그루만이 화면을 가득채운다. 겨울을 보낸 나무는 비바람을 맞고 단 한장의 나뭇잎도 없이 헐벗었다. 단 한장의 나뭇잎도 남기지 않고 모든 에너지를 소멸했고 나뭇잎들은 땅으로 돌아갔다. 황토색이 도는 땅에 강건하게 뿌리를 박은 고목. 잔가지 하나하나까지 극사실주의 기법으로 묘사했다. 고목 위로 떨어지는 자연의 빛만이 장식이다. <고목>은 겨울의 말미에 서 있는 듯하다. 냉혹한 태백의 추위를 견뎌낸 고목. 그러나 그 뿌리는 수액을 쑥쑥 뽑아올리면서 새순을 준비하고 있다. 고목은 화면의 정중앙에서 관객의 시선을 받아들인다. 황재형은 ‘공중누각’이 아닌 땅위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삶을 재현해 낸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