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네- 화가 황재형 ⑤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광주미연 작성일18-12-12 18:08 조회1,588회 댓글0건 관련링크 다음글 목록 본문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네 화가 황재형의 작품 세계 - ⑤ 백은하 (소설가) ‘예술이 공공의 선(Public goods)을 구현해 낼 수 있을 것인가.’ 러시아 이동파 화가 즉 일리야 레핀, 콘스탄틴 플라비츠키, 독일의 조각가 에른스트 바를라흐, 케테 콜비츠 등이 종교나 왕정이나 패트런에게 봉사하지 않고 이성의 울림을 지닌 작품을 창조하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공유하기 시작한 꿈이다. 빈센트 반 고흐의 <감자먹는 사람들>의 농민들은 손으로 감자를 먹는다. 밀레가 그려낸 <이삭줍기> <만종> 등에 등장하는 농민들의 검약하면서도 진지한 일상들은 감동을 준다. 독일의 여성작가 케테 콜비츠는 <전쟁은 이제 그만> 등의 작품을 통해 적극적으로 정치적인 발언을 했다. 그리고 자신의 정치적 입장에 대해 책임질만한 태도를 견지하면서 노력하는 지식인의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예술가에게 정치적 입장을 요구하는 것은 가혹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황재형이 살아온 시절은 예술가들에게 끊임없이 정치적 입장을 물었다. 질문을 하는 사람은 친구일수도 있도 스승일 수도 있고 제자일 수도 있었다. 김민기는 <친구>라는 노래에서 “눈앞에 보이는 수많은 모습들. 그 모두 진정이라 우겨 말하면 어느 누구 하나 홀로 일어나 아니라고 말할 사람 누가 있겠오.”라고 노래했다. 그러나 세상은 “아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에 의해 조금씩 진보해왔다. 황재형은 태백에서 회화 작업을 하면서 탄광촌 아이들 미술지도를 하고 문화운동과 교육에 전념했다. 벽화작업도 병행했다. 그는 ‘예술이 공공의 선(Public goods)을 구현해 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해답으로 미술교육을 찾았다. 그가 세상에서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었다.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향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1997년부터 전국 초․중등학교 교사 연수회를 열었다. 몇 년째 연수가 지속되자 40여명에 넘는 교사들이 태백으로 몰려들었다. 20여명은 발령을 내서 태백으로 이주했다. 그는 전국에서 모여든 제자들과 함께 미술교육 콘텐츠를 개발하고 있고 태백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반야분교를 구입해서 ‘태백미술연구소’의 터를 닦았다. ‘교육다운 교육’이 그들이 지향하는 바다. 황재형에게는 정치적 신념보다는 삶의 태도를 질문하는 편이 나을 듯 싶다. 아니 그는 이미 삶의 태도를 보여주었다. 2010년 겨울, 사평역 역사에 난로는 없다. 그러나 아직도 사람들은 식솔을 이끌고 이곳이 아닌 저곳을 향해 떠난다. 항상 사는 것이 아니라 떠나는 것이 문제인 때문이다. ‘유목’은 역동적이지만 정주’에는 그 나름대로의 시학(詩學)이 존재한다. 특히 예술가의 정주는 ‘장소’에 역사성과 미학을 부여한다. 빈센트 반 고흐의 ‘아를르’에서는 바이얼린 선율이 흘러나온다. 웃음 가득하고 햇빛 가득한 소읍인 ‘아를르’가 음악이 된 것이다. 황재형의 정주도 시학(詩學)을 완성해가고 있다. ‘태백’과 ‘황지’. 그 꼬불꼬불한 소도시의 그늘진 골목길에 황재형 화백이 신고 걸었을 장화소리가 들린다. 한국은 반미학적으로 단기간에 급격하게 산업화를 이루어냈다. 노동자들의 피와 지식인들의 피가 민주주의의 제단에 바쳐졌고, 청년작가들의 예술적 감수성이 프로파간다로 소비되고 소모되었다. 그러면서 보다 나은 민주주의의 시대와 이성의 시대를 향해 전진해갔다. 산업의 규모가 커지는 만큼 인권에 대한 갈망도 커져갔다. 황재형의 ‘태백’과 ‘황지’는 ‘장소적인 시학’과 성찰을 담고 예술적인 에테르를 얻었다. 현실 속의 탄광촌 태백은 이미 기체가 되어 기화되어 버렸다. 더 이상 탄광촌 태백은 없다. 화려한 불빛과 자본의 성채인 카지노 도시가 돼 버렸다. 탄광촌 태백은 황재형이 포착해 낸 결정적인 순간들로 응고되어서 화면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장소적인 시학(詩學)’과 ‘색’(色) 그리고 ‘빛’. 황재형의 화면은 삼위일체가 완결되면서 예술성을 획득했다. ‘무엇을 그릴 것인가.’와 ‘어떻게 그릴 것인가.’에 대한 작가의 인내와 기다림, 성찰의 시간들이 모아져서 획득해낸 아름다움이다. 그러나 필자는 황재형의 화면에서 전라도 ‘육자배기’의 흥(興)과 가락을 느낀다. 슈만은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 불을 비춰주는 것이야말로 예술가의 임무다.”라고 말했다. 황재형 화백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마음 깊은 곳에서 작은 등불이 켜진다. 인간에 대한 진정한 존엄과 위로, 산다는 것에 대한 눈물 나는 숭고함 때문이다. 그는 블랙톤으로 <나의 천국에서 (In my heaven)>를 그렸지만 캔버스 바닥에는 황토색의 밑칠이 숨어있다. 숨어있는 황토색과 드러나는 블랙톤. 황재형의 작품을 모두 읽고 나서 진정 궁금한 것은 드러나는 텍스트가 아니라 숨어있는 컨텍스트이다. 황재형의 작품 속에는 과연 필자가 읽어내지 못한 어떤 비밀이 숨어있을까? 그 궁금증 때문에 황재형의 작품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끝>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