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도 더 좋은 날이 되었네 / 화가 최재영 페이지 정보 작성자 백은하 작성일06-09-13 08:20 조회3,419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비가 내리는 오전, 화가 최재영의 작업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아그네스 발챠의 ‘우리에게도 더 좋은 날이 되었네’가 흐르고 있었다. 영혼의 촉수를 건드리는 듯한 아그네스 발챠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크레타의 지중해가 떠오른다. 지중해의 포도주색 바다를 보러 가자는 헛된 약속들. 파니핑크가 우울하게 말했다.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 그녀의 창가에 피어있던 나팔꽃은 파니핑크를 위로한다. 지중해의 포도주색 바다가 보이는 테라스가 있는 카페에서 와인을 마실 수 있을 것이라고. 당신에게도 더 좋은 날이 있을 것이라고. 화가 최재영의 작업실에는 유화 작품들이 제 자리에 맞춤하게 걸려 있었고, 화집과 음반들이 단정하게 숨쉬고 있었다. 그는 작업실 한 쪽을 채우고 있는 부조작품들에 관해 이야기해 주었다. 세상에 몸을 드러내지 않은 미완의 작품. 그는 이미 미래를 살고 있었다. 미래의 작품이 눈 앞에 펼쳐졌다. 예술가에게 있어 신작만큼 설레는 일이 또 있을까. 관람객에게 있어 갤러리에 걸리지 않은 신작을 보는 것만큼 설레이는 일이 있을까. 예술작품을 볼 때마가 프랑스 소설가 미셀 투르니에가 했던 “책은 창백한 새‘라는 말이 떠오르곤 한다. 미술 작품 또한 작품에 화가의 영혼이 스며있다해도 결국은 관람객의 심장의 피가 스며들 때, 비로소 그 작품은 온전한 생명을 얻는다. 작품에 서명을 하고, 액자를 하고, 디스플레이를 하고, 갤러리의 조명이 켜진다. 그 장식적인 연두빛 시간들. 창 밖에는 계속해서 비가 내렸다. 최재영의 부친은 대학에서는 서양화를 전공한 저명한 사진작가였다. 그래서 그는 어린시절부터 예술적인 환경속에서 팔레트며 붓 등을 접했고 자연스럽게 화가의 길을 선택했다. 조선대 회화과에 입학을 해서 본격적인 미술 수업을 받았다. 그는 프란시스 베이컨, 피카소, 조지아 오키프 등의 작품을 좋아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93년 인재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 때까지 그는 많은 실험과 모색의 시기를 갖는다. 인생에서 변화를 가져야할 시점이 왔고 그는 영국으로 떠난다. 런던에 있는 윔블던 예술대학원에서 ‘Drawing'을 전공하면서 인체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된다. 한 작품을 순차적으로 여러 화면으로 보여주는 세미나나 전시회를 하면서 미술 작품에 대한 새로운 해석력이 생겨났다. 한 작품이 마치 식물이 자라나듯이 성장 변화하는 것이 한 공간 안에서 보여지는 것이다. 컨텍스트가 치밀할수록 텍스트 또한 정교해진다. 꽃이 되지 못하고 거름이 되어서 사라지는 컨텍스트들. 결국 작품은 하나의 화면만이 남는다. 그동안 쌓아왔던 고정관념의 틀을 벗어던지는 시간들이 지나갔다. 그는 18세기 김홍도나 신윤복의 작품에 나타난 에로티시즘과 현대 서양 회화에서 나타난 에로티시즘을 비교해서 ‘사회속의 에로티시즘’이라는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종이와 먹을 이용한 ‘스크래치 페인팅’ 기법으로 우연히 에칭이나 목판화같은 환각을 형성한 ‘포옹’ ‘조화’ 등의 작품을 그린다. ‘스크레치 페인팅’ 기법의 작품인 ‘조화’는 여성의 몸과 남성의 몸이 대비되기도 하고, 서양의 문화와 한국의 문화가 대비되기도 한다. 그 사이에도 그는 인체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했다. 최재영은 1998년 런던에 있는 ‘갤러리 포커스’에서 ‘얼굴’ 초대전을 열었다. 그동안 그가 만나왔던 사람들의 얼굴을 그린 전시회였는데 모델이 되어 주었던 많은 친구들이 너무도 즐거워했다. 또한 미국의 밀와키에 있는 ‘리버 레벨 갤러리’에서 드로잉 초대전을 갖기도 했다. 그는 2004년 광주의 무등갤러리에서 ‘꽃’을 오브제로 하는 ‘관계’전을 연다. 꽃이 되어 사라져버린 누이를 그리워하며 그린 ’제망매가‘에는 사무치는 작가의 마음이 녹아있다. ‘관계’전에서 보여준 꽃들은 원시의 꿈틀대는 생명력과 원초적인 에로티시즘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조화’나 ‘포옹’이 화가의 지성에 기댔다면, ‘관계’전의 꽃들은 화가가 비로소 화면 자체의 원시적인 관능을 허락한 듯 하다. 관람객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관계’전의 꽃들에 감정이입하게 된다. 그림을 보는 단순한 즐거움은 카나리아의 새소리같다. 2005년 광주 ‘메트로갤러리’에서 열린 ‘관계’ 전에는 ‘페이스 투 페이스’, ‘바디 투 바디’ ‘바디 투 플라워’ 등의 대비 구조로 다양한 관계들이 형상화된다. 인도의 카마수트라가 연상되는 다양한 몸들. 그들은 사랑하는 몸이기도 하고, 거부하는 몸이기도 하고, 수줍어하는 몸이기도 하다. 쾌락에 취해있기도 하고 울고 있기도 하다. 그의 작업실의 한 면을 채우고 있는 부조작품들은 희노애락에 취한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나신이다. 윤동주의 ‘병원’이라는 시에는 옷을 벗고 햇빛 바라기를 하는 초식동물같은 여자가 등장한다. 최재영의 화면 속의 인간들은 초식 동물같은 인간들은 아닐 것이다. 인간이 맛볼 수 있는 희노애락을 거치면서 성장한 인물들이 원하는 것은 결국은 사람과의 ‘관계’다. 꽃과 관계를 맺을 수는 없지 않은가. 순결보다 관능이 넘치는 디오니소스적인 세계. 여전히 비는 그치지 않았고, 아그네스 발챠의 음반은 ‘ 내 마음속의 공주’ 를 향해서 가고 있었다. 그 사이 작업실에는 사진작가 L이 인터뷰하는 화가를 촬영하고 있었다. 촬영이 끝나고 사진작가 L이 합석했다. 사진작가 L이 말했다. “아침이면 들판을 걸어다니는 것을 좋아했어요. 들에 핀 들국화꽃 향기에 취하면 신열이 날 것 같았어요.” 어디에선가 남국의 들국화향이 나는 것 같았고, 아그네스 발챠는 정밀하게 마침표를 찍으면서 노래를 끝마쳤다. 화가 최재영이 원하는 것은 관람객들이 신열이 날 정도의 열정을 품게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에게도 더 좋은 날이 있기를.♥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