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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진 거울 속에 비친 자화상 - 이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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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백은하 작성일10-06-07 11:39 조회5,22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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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진 거울 속에 비친 自畵像

                                         - 화가 이정기의 작품 세계 -


    글 백은하 (소설가)


      산모퉁이를 돌면 작은 우물이 있다. 우리는 종종 그 우물에 비친 우리의 자화상을 응시한다. 물결은 흔들린다. 그리스의 신화 속에 등장하는 나르키소스는 그 우물에 비친 자신을 사랑해서 우물에 빠져 자살했고, 그 우물 옆에 수선화가 피었다.

      우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시인 윤동주는 ‘자화상’이라는 시에서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라고 노래했다.

      우물에 비친 자신이 미워졌다가 이내 가엾어진다고 했다. 우리는 창작이라는 행위를 통해서 끊임없이 자신을 들여다본다. 자신이 이내 미워지기도 했다가 가엾어지기도 한다. 진정한 자신의 내면과 보여지는 자신, ‘가면’을 쓰고 살아가야하는 현대인은 끊임없이 진정한 자신의 존재를 질문한다.


    자기 분열의 기호, 깨진 거울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은 사물들과 숱한 기호 속에 둘러 쌓여있다. 그 기호들 속에서 진정한 자아와 타자화된 자아가 분열한다. 진정한 자아와 내면은 어디에 있을까.

      작가 이정기는 자기 분열의 기호로 깨진 거울을 차용한다. 그는 ‘거울’이라는 기호를 아주 소박하게 추억한다. 어린 시절 그의 시골집에는 마루에 자개로 연꽃 문양이 새겨진 커다란 거울이 하나 있었다. 그 거울의 아래 귀퉁이가 조금 깨져있었다. 그 깨져있는 부분들은 평상시에는 눈에 띄지 않다가, 그가 부모님께 꾸중을 들은 석양녘이면 유독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꾸중을 들은 그가 마루 귀퉁이에 앉아 있다가, 그 깨진 거울에 비치는 소나무를 들여다보곤 했다. 평상시에는 청정하고 꼿꼿하기만 했던 소나무가 거울 속에서 이지러져 보였다. 그 귀퉁이가 깨진 거울은 그가 도시로 유학을 갈 때까지 마루를 지키고 있었다.

      이정기가 작품을 구상하기 위해, 캔버스 흰 화면의 공포심을 견디면서 캔버스 앞에 막막하게 앉아 있으면, 그의 머릿속에 아련하게 그 깨진 거울 속에서 하늘거리던 소나무가 떠올랐고, 그는 그것을 화면에 표현하기 시작했다.

      

    택지개발로 인해 잘려지고 버려진 나무들

      이정기는 2007년 10월 광주에서 <기념비적 유물전>이라는 전시회에 <나막신> <Recycle> <의자> <표정> 등을 발표했다. <Recycle> <의자> 등 설치작품을 하면서, 광주 신창지구의 택지개발로 인해 잘려지고 버려진 나무와 깨진 거울을 작품에 오브제로 사용했다.

      도시화와 현대화라는 명분으로 잘려나간 소나무들의 표면에 깨진 거울 조각을 붙였다. 깨진 거울 조각을 붙이는 작업을 그는“ ‘현실 속을 살고 있는 自我’와 ‘의식하는 반성적인 自我’, ‘두 개의 自我’를 만들어 낸다.”고 말한다. 물질적 풍요의 추구로 인해 자기 자신에게 있어 타자가 되기 전, 소외되기 이전의 모습을 되찾아가는 것이다.

      시인 윤동주는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면서 진정으로 순결한 자신을 열망했다. 그러나 청동거울 속에 비친 자아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일 뿐이었다. 현대인들은 순결하고 순수한 자신을 열망하지만,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추악한 현실은 한 개인의 순수를 쉽사리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나 깨진 거울을 복원시켜 어린 시절의 ‘빨간 돼지 저금통’에 담긴 소박한 꿈과 순수를 지켜내는 것만이 우리의 ‘꿈꿀 권리’를 지켜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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