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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자기가 있는 풍경 / 아티스트 정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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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백은하 작성일06-10-10 15:48 조회3,55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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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자기가 있는 풍경

    설치미술가 정운학의  작품세계


    백은하 (소설가)


      함평 월야로 가는 길에는 들국화가 피어 있었다. 머지않아 단풍을 부르는 숲의 소리도 들렸다. 설치미술가 정운학의 작업실은 함평문화마을내 하얀색 스틸하우스였다. 작업실의 외양은 하얀색이었는데, 높고 넓었다. 작업실 안에는 설치 작품들이 갤러리처럼 배치되어 있었다. 책꽂이에 책들이 단정하게 꽂혀있었고, 한 켠에 타자기가 한 대 있었다.


      ‘타이프라이터’는 한 때 모더니티의 상징이었다. 종이와 펜을 버리고 기계문명으로 글쓰기를 하는 것 말이다. 자음과 모음이 모여서 음절이 되고, 음절이 모여 어절이 되고, 어절이 모여 문장이 되고 문장이 모여 사상이 된다. 필자는 타자치는 소리를 “타닥타닥”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타자치는 소리가 “TICTIC"이 될 수도 있다.


      작업실의 유리창 옆에 위에서 아래로 ‘E/S/R/E/G/N/E/T’라는 기호가 설치되어 있었다.

    ‘에스 레그네트’, ‘비가 내린다’라는 뜻의 독일어다. 그의 작품들 중의 하나다. 음절들을 분절해서 ‘비가 내린다’ 라고 기호로 설치했다. 처음에 보았을 때는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작가가 “에스 레그네트”라고 발음했을 때도 아무런 감흥도 없었다. 그런데 “비가 내린다”라는 한국어로 듣는 순간, 창 밖의 햇살은 온데 간데 없고 나뭇잎에 빗줄기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정운학은 프랑크프루트에서 수학을 할 때, 타자기 한 대를 구입했고, 그 타자기로 글을 쓰고 공부를 하면서 정이 들었다. 그리고 훗날 그는 타자기알 160개를 오브제로 ‘TICTIC’이라는 개념적인 작품을 창작했다. 작업실에 있는 ‘ESREGNET’는 그 작품들 중 한 부분이다.


      정운학은 대학에서는 페인팅을 전공했고, 1995년 독일로 미술 유학을 떠났다. 독일 브라운슈바익 의 조형미술대학을 졸업한 후, 프랑크푸르트 미술대학을 졸업했다. 퍼키르커비 교수의 마이스터슐러.

      1998년에 독일 도르트문트에 있는 ‘갤러리게르다튜르케’에서 첫 개인전을 가진 후 다섯번의 개인전과 여러 단체전에 참가했다.


      그는 평면과 설치가 동시에 보여지는 작품들을 보여주고 있다. ‘입구’ ‘비어있는 방’ ‘계단이 있는 공간’ 등의 작품에서는 뒤바뀐 공간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역원근법’이라고 표현했다. 두 개 혹은 세 개의 공간이 한 차원에 있고 그 공간들은 중첩되어 있다. 그리고 그 중첩된 공간들은 뒤바뀌어 있다. 즉 현재의 시점에서 멀리 있는 기둥보다 가까이 있는 기둥이 더 커 보인다. 그리고 문을 열면 보이는 저 먼 곳의 벽이 관람자를 향해 돌진한다.


      세 개 의 방이 겹쳐져서 선으로 표현되어진다. 그 선은 방이고 그 방은 건물이고 그 건물 안에는 작가가 거닐었던 공간과 그 공간 안에서 읽었던 책들, 작업했던 작품의 여운들이 스며있다. 작가는 세 개의 건물을 경유했던 이, 삼년의 시간들을 청색의 선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화면으로 간명하게 보여준다.  


      작가가 역원근법을 발상한 순간이 있다고 한다. 그는 프랑크푸르트돔에 자주 갔는데 거기서 종교화의 부조들을 재미있게 보았다. 부조들에서 보여지는 조형성이 매력있었고 작품세계에 역원근법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비어있는 방’도 울퉁불퉁한 손맛이 느껴지면서 간명하다. 그러나 그 방이 품고 있는 전설에 관해서 관람객은 상상해야 한다. 그 방이 지금은 비어있지만 한 때 누군가가 꿈을 갖고 습작을 했던 방일수도 있고, 애틋한 연인이 첫 살림을 살았던 단칸방일 수도 있다. 청색 수반에 송이 국화가 꽂혀 있는 기름먹인 탁자가 놓여 있던 부잣집 살림일수도 있고, 주막집 뒷방이었을 수도 있다. 그 방은 모든 전설을 품은 채 지금은 텅 비어 있다. 그리고 작가는 공간들을 손으로 축약시켜서 하나의 둥그런 덩어리로 만들어 놓았다. 덩어리에는 송이국화도 없고 애틋한 정도 없다. 차가운 현대미술 작품이다. 생각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알 수 없다.


      2003년 개인전에서 발표한 ‘회고-졸정원의 산책로’ 또한 시간성과 공간성이 혼재되어 있다. 졸정원은 중국 소주에 있는데,  명대 왕헌신이 만들었다. 우리가 아는 길은 부드러운 능선이고 대부분이 직선이다. 영화 서편제에서 보여준 부드러운 길. 그러나 졸정원의 산책로는 수없이 구부러진 길을 따라서 건물들과 경치가 펼쳐지면서 인위적인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그는 중국기행 3256㎞ 를 하면서 많은 풍광과 문화들을 보았지만, 그 시간들을 ‘회고-졸정원의 산책로’ 라는 담백한 묘사로 보여주었다. ‘Part of space’에서는 하나의 공간을 해체해서 덩어리 덩어리로 보여준다. 기둥과 문과 방과 대들보가 각각 해체되어 있다.


      현대미술에는 센티멘탈도 노스틸지아도 없다. 차갑고 지성적이다. 향수가 없는 공간. 다정한 맨드라미과 붓꽃이 없는 공간. 창문이 기둥이 큰방이 작은방이 제각각 해체되어 있는 공간. 과거의 시간과 현재의 시간이 뒤바뀌어 있는 혼란스러운 공간. 갤러리에 서 있는 관람객에게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정운학은 현대미술이란 “개인적인 관심을 일반화시켜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현대 예술은 지성적인 훈련을 필요로 하지만, 또 다시 현대 미술이 원하는 것은 향수일 수도 있다. 창문과 큰방과 작은방과 기둥을 조형적으로 재구성해서 가족의 사진들을 하나의 액자안에 배치해서 안방에 걸고, 대학 졸업사진을 걸고, 빛바랜 반장 임명장이 있는 추억의 공간을 부르는 그 제의의 시간들은 길고 고독하다. 관람객들은 갤러리 안에서 정운학의 작품들을 보면서 기나긴 고독한 순간들을 견뎌야 할 수도 있다. 해체되어 있는 창문과 기둥과 방이 하나로 합체가 안 되어서 단 한 순간의 추억도 떠오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시간은 흐르고 공간은 소멸한다.
     
    정운학은 관람객에게 노스틸지아를 선물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선물하는 것은 단단하고 차갑지만 너무나 아름다운 개념의 꽃이다. 김춘수 시인의 꽃이거나 신부다. 호명하는 것. 내가 호명했을 때 비로소 나에게 다가오는 것. 내가 호명했을 때 비로소 피어나는 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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