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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호윤 개인전 ‘친애하는 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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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신호윤 작성일25-09-07 12:11 조회18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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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호윤 <관찰자>, 2024, paper cut, 종이에 우레탄 클리어, 45x15x15cm

     

    신호윤 개인전 친애하는 너에게

    2025.09.03-09.14, 뽕뽕브릿지

     

    글쎄, 나는 예술가란 선구자라기보다, 오히려 관찰자(Observer)’에 가깝다고 생각해. 나에게 있어 예술가란, 변화와 소란이 교차하는 시간의 강기슭에 서서 조용히 세상을 응시하는 사람정도? 예술은 늘 시대를 앞서가는 혁명이라 말하지만, 나는 시대의 틈새를 포착하고, 그 세밀한 결을 기록하는 것이야말로 예술가의 본질적인 의무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그런 의미에서 관찰은 단순히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는 거지, 그것은 익숙하게 느끼던 풍경을 낯설게 가공하는 시선이고, 평범한 일상의 밤을 보낸 아궁이 속에서 살아남은 특별함의 불씨를 발견해내는 태도지. 현상의 표면 아래 감춰진 미세한 진동을 감지하며, 평범한 사물의 내면에도 스며드는 고요한 관심 같은 것 아닐까?

    맞아, 관찰자의 토끼 가면은 이러한 관찰자의 사회적 좌표을 상징해.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현실의 굴을 따라 들어가 마침내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게 하는 흰토끼처럼, 나는 이 작업을 할 때면 간혹 현실이라는 땅굴을 헤치고 진실과 해석의 새로운 장으로 나아가고 있는 나 자신을 상상해 보곤 해. 토끼는 겉보기엔 순수하고 연약하지만, 동시에 경계를 넘어 새로운 가능성으로 안내하는 존재와 같은 거야. 예술가로서 나는 이 연작에서 스스로를 그 토끼 위에 동일시하려고 시도하지. 경계의 문턱에 선 채, 아직 밝혀지지 않은 이상한 나라’ - 즉 진실과 감정, 해석의 무수한 가능성이 흐르는 미지의 공간 로 세상과 보는 이들을 그 어딘가로 인도하려 하는 거야.

    특히,토끼 가면의 커다랗고 텅빈 눈, 그것은 어쩌면 불교의 ()’과도 같아. 공의 발()이라고 생각해도 좋아. 그것은 무엇인가를 적극적으로 응시하기보다, 오히려 세상의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한껏 비워진 공간이지. 관찰자의 시선은 때론, 아무것도 담기기 않은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모든 것을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 열린 그릇과 같아.

    이렇세 비워낸 눈으로 세상을 보면 고정된 시야와 의미 없는 것으로 벗어나 무한한 가능성을 열 수 있을 것 같아. 빈 공간에 현실이 스며들고, 타인의 감정과 기억, 시간의 파편이 흘러들어오는 기분이 들어. 마치 불교의 처럼, 비움이 곧 수용의 힘이 되고, 경계와 실체가 허물어지는 자리에 다양한 해석과 감정, 특히 수많은 삶의 감정이 폭풍처럼 밀려 들어와 관찰자는 스스로를 비움으로써 오히려 세상과 깊게 연결되는 거야. 그리고 마지막에는 자아와 세계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거야. 마침내, 텅 빈 눈이 이렇게 속삭여. ‘내가 곧 세계이고, 세계 또한 나야.’

    이제 알겠지? <관찰자>들은 이런 경계에 선 존재의 긴장과 조화를 탐구하는 연작이야. 알다시피 나는 종이의 물성에 오래 천착해 왔어. 연약하지, 종이는. 덧없는 듯, 한없이 연약하지, 하지만 그 위에 쌓여가는 시간과 기억, 반복되는 해체와 재구성의 손길 속에서 종이는 차름 견고한 의미의 지층이 되어 형탸를 갖추어 가는 거야. 각기 다른 경험과 시선, 감정의 파편이 층층이 겹쳐지는 거지. 관찰자에게 종이의 단층은 곧 시간의 흔적이자 관찰의 깊이인 셈이지. 그리고 그는 영원히 닫히지 않는 해석의 문을 남기는 거야. ‘앨리스의 토끼처럼.

    , 관찰자로서 다시 물어볼게. 과연 예술가의 시대적 의무란 뭘까? 기록하는 자? 대면하지 않은 채 경계에 선 자? 토끼가면을 쓴 채 세상의 이면을 응사히는 자? <관찰자>들은 그런 모든 것에 대한 나의 자화상이고, 텅 빈 눈을 통해 얻는 새로운 가능성의 창이야. 토끼라는 익명의 가면 뒤에서 나는 세상의 경계에서만 포착할 수 있는 진실과 감정, 끝내 말로는 완성되지 않는 순간의 속삭임을 들으며, 그 빛을 모으고 기록하는 거지, 예술은 바로 그 경계, 그 틈새로 흘러드는 빛이 아닐까? 나는 그 빛을 조용히 세상 앞에 내밀어 보는 거야.

    - 2025725일 너의 관찰자가 (신호윤의 작가노트)

     

    <신발 속 작은 돌멩이 같은 쉼이 필요해> 당장 멈춰. 지금은 멈춰서 너에게 허락하는 시간이 필요할 때라고. 작은 불편이라도 무시하지 않고 돌아봐야 다시 걸을 힘을 얻을 수 있다고. 각자가 신발 속 돌멩이를 털어낼 수 있도록 서로가 서로를 돌봐야 할 때애

    <오늘도 여섯의 그림자가 남겨진다> 오늘도 나는 어둠 속에서 그림자를 스쳐 지나가며, 서로의 온기를 느껴. 그리고 언젠가 그 너머에 따뜻한 빛이 피어날 날을 함께 꿈꾸곤 해, 그 작은 불빛이 조금씩 우리를 감싸주기를, 나는 믿는다

    <우주는 늘 같은 장면을 재방송한다> 반복되는 나의 우주에서, 나는 어떻게 새로움을 만들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떤 선택과 후회를 반복할까. 나는 그 대답을 알지 못해. 아니, 할 수 없어. 하지만 끝없는 재방송마저도 언젠가 새로운 변주의 실마리가 되어줄 거라는 희망만큼은, 이 낡은 우주의 한 조각으로 남기고 싶어

    <이 무게만큼의 생명이 흩뿌려져 있었어> 지구 한쪽에선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하루에 15명이 굶어 죽고, 그 반대편 벽에선 그것을 보고 파티를 벌이지. 이게 이곳에선 매일 벌어지는 현실이야. △△이 배급을 통제한 이후 굶어 죽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어. 우리는 매일 목숨과 바꾸고 피를 바치며 삶을 지키고 있어.

    <창공의 침묵 아래 잠시의 폭풍처럼 스쳐 간다> 세상의 무수한 상처와 끝내 마주하는 순간에도, 나는 다시,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리고 침묵의 창공 속에 숨어 있는 수많은 이야기와 그 이야기 너머 어딘가에 흐르는 작은 희망의 떨림을 느끼려고 애써. 그것이 삶을 살아가는, 나의 속삭임이 가 닿을 수 있는 가장 깊은 자리에 자리 잡은 마음의 울림일 거야.

    - 신호윤의 2025년 개인전에 붙인 서간문 형식의 작가노트 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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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호윤 <신발 속 작은 돌맹이 같은 쉼이 필요해>, 2024, paper cut, 종이에 우레탄 클리어, 45x25x2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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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호윤 <오늘도 여섯의 그림자가 남겨진다>, 2024, paper cut, 종이에 우레탄 클리어, 35x45x2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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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호윤 <우주는 늘 같은 장면을 재방송한다>, 2024, paper cut, 45x35x3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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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호윤 <이 무게만큼의 생명이 흩뿌려져 있었어>, 2025, paper cut, 45x25x2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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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호윤 <창공의 침묵 아래 잠시의 폭풍처럼 지나간다>, 2023, paper cut, 종이에 우레탄 클리어, 45x35x3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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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호윤 개인전 '친애하는 너에게'가 진행 중인 뽕뽕브릿지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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