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현 초대전; 푸른 낮 붉은 밤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병수 작성일25-09-22 18:09 조회110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이세현 <푸른 낮, 붉은 밤_광천시민아파트>, 2025, 솔벤트잉크젯프린트, 250x700cm 이세현 초대전;푸른 낮 붉은 밤 2025.09.03–11.02, 광주시립미술관 하정웅미술관 기억의 미학, 질문하는 사진 (앞글 생략) 이세현의 사진적 탐사는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적 현장을 향한다. 노근리, 거창, 옛 505보안부대, 국군광주병원, 코발트 광산, 곤을동, 그리고 오키나와의 토도로키 동굴까지. 작가는 이들 장소를 단순히 ‘기록’하지 않는다. 그는 폐허의 구조물 위에 조명을 설치하고, 인공의 빛으로 흔적을 감싼다. 어둠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어둠 안에 있는 시간을 꺼내 보이는 행위이다. 이 작업의 핵심은 장소의 역사성과 시각적 개입 사이의 긴장에 있다. 이세현의 사진은 ‘기념사진처럼 찍힌 역사’가 아니라 질문을 내포한 이미지들이다. 그는 때로 카메라 프레임 안에 ‘던져진 돌’을 삽입한다. 이 돌은 감시자, 증인, 또는 작가 자신의 몸짓으로 해석될 수 있다. 사진 속 돌은 시간의 층위를 깨우고 과거에 대한 관조를 오늘의 시선으로 끌어올린다. 특히 <푸른 낯 붉은 밤> 연작은 색채의 대비를 통해 공간의 감정 구조를 시각화한다. 밤의 어둠 속에 떠오르는 푸른 빛은 죽음 이후의 기억이고, 붉은 색조는 폭력의 잔상이다. 공간은 비어 있지만 이미지는 가득 차 있다. 이 비물질적 충만함은 바로 ‘부재의 현존’—역사미학의 본질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작가가 주도해온 프로젝트명 <Boundary>, <Episode>, <상흔> 또한 의미심장하다. ‘경계’는 현실과 기억 사이, ‘에피소드’는 개인의 경험과 공적 기록 사이, ‘상흔’은 이미지와 트라우마 사이의 관계를 탐색한다. 그의 작업은 이 경계들 위에서 균형을 잡고 선다. 사진이란 본래 지나간 시간의 정지화이다. 그러나 이세현의 사진은 오히려 ‘현재화된 과거’를 만든다. 그는 카메라로 역사를 재현하지 않고, 재현된 역사의 윤곽을 다시 질문한다. 따라서 그의 사진은 다큐멘터리인 동시에 에세이이며, 시각적 사유이자 사회적 성찰의 장이다. 이세현은 묻는다. “그들은 왜 잊혀졌는가?”, “그 자리는 왜 비어 있는가?”, “기억은 누구의 몫인가?” 그리고 그는 말없이 대답한다. 이미지로. 침묵의 기록으로. 사진이라는 느린 시간의 예술로. 사진은 기록이지만, 동시에 응시하게 하는 질문의 장이며, 빠르게 흘러간 역사를 천천히 다시 살아보게 하는 윤리적 미학이다. 장소와 상흔, 이미지의 물리적 개입 (중략) 1. 경계로서의 장소 – ‘Boundary’와 역사적 장소성. ‘Boundary’ 시리즈에서 작가는 군사적, 정치적 폭력의 공간(예: DMZ, 노근리, 505보안부대, 군함도 등)을 촬영한다. 그가 택한 장소들은 국가적 서사의 주변에 밀려나 있었고, 때로는 의도적으로 지워진 장소들이다. 이세현은 이러한 공간을 기념사진처럼 정면에서, 고요하게 찍는다. 그러나 이 사진에는 ‘기억’이라는 내러티브가 아니라 ‘질문’이 작동한다. 가령 <Boundary_DMZ>는 자연과 군사적 폐허가 공존하는 모순적 풍경을 드러낸다. 잎이 무성한 풀숲 뒤로 철조망이 나타나는 장면은 미학적 조형성을 획득하는 동시에, 전쟁의 잔재가 일상에 은폐되어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고발한다. 여기서 ‘경계(boundary)’란 지리적 선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 기억과 망각, 폭력과 평온 사이의 층위들이다. 이세현은 경계 위에 서서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보지 못하고 있는가?” 2. 이미지에 던져진 돌 – 시각적 개입과 역사적 상상력. 이세현의 작업에는 자주 등장하는 물질적 개입이 있다. 바로 사진 프레임 안에 ‘던져진 돌’을 배치하는 방식이다. 이는 ‘푸른 낯 붉은 밤’이나 ‘Episode’ 연작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예컨대, <무엇이었을까(옛 국군광주병원)>나 <버닝(옛 국군광주병원)>에서 우리는 붉은 조명 아래 폐허가 된 병원의 복도를 마주한다. 정지된 시선 속에서 돌은 일종의 ‘시점/관점/견해의 간섭자’로 기능하며, 이미지 내부의 시간성을 붕괴시키는 매개물이 된다. 던져진 돌은 과거를 향한 폭력적 시선의 은유이자, 작가가 역사적 침묵을 깨고자 하는 ‘물리적 행위’로도 읽힌다. 우리에게 ‘치유의 역사학’ 혹은 ‘정신분석학적 역사학’으로 소개된 도미니크 라카프가 말했듯 트라우마는 단지 사건의 기억이 아니라 ‘시간의 균열’이다. 이 돌은 그 균열에 던져진 질문이며 우리가 응답해야 할 윤리적 장치다. 3. 공간의 시적 구성 – ‘푸른 낯 붉은 밤’의 감각미학. ‘푸른 낯 붉은 밤’ 연작은 공간을 빛의 감정 구조로 재구성한 작업이다. 이세현은 역사적 장소에 조명을 설치하고, 파란색과 붉은색이라는 상징적 색채로 폐허를 감싸 안는다. 이 색채는 단순한 미장센을 넘어서, ‘애도의 조명’이자 ‘기억의 필터’로 작동한다. 예컨대 <옥매광산>이나 <옛 광주 적십자병원 수술실>은 파란 조명 아래 섬뜩한 평정을 연출한다. 이 조용한 무대는 오히려 이미지 너머의 폭력성을 암시하며, 보는 이를 증인으로 소환한다. 이러한 작업 방식은 발터 벤야민이 말한 ‘충격’의 미학과도 접합된다. 이세현의 사진은 보이는 것을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억압된 기억, 회피된 과거, 불편한 진실—을 감각화하는 전략이다. 4. 부재의 미학 – ‘상흔’과 장소의 응시. ‘상흔’ 시리즈는 가장 직접적으로 폭력의 흔적을 추적한다. 노근리, 전남도청, 거창 양민학살 현장 등에서 발견된 총탄 자국은 이세현의 렌즈를 통해 확대되고, 정면으로 응시된다. 사진은 말없이 묻는다. “이 총알의 방향은 누구를 향했는가?” 총알의 흔적은 공간이 아니라 시간의 잔재다. 그 흔적을 응시하는 일은,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부재의 현존’을 가시화하는 일이다. 이세현은 말한다. “나는 그 장소를 통해 과거를 이해하지 않고, 현재를 질문한다.” 이처럼 ‘상흔’은 단순한 장소 기록이 아니라, 윤리적 시선의 훈련장이다. 이세현의 사진은 미학이 윤리로 넘어가는 지점을 보여준다. 미학이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응답 가능성’의 문제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하 생략) - 김병수 (한국미술평론가협회 회장)의 이세현 초대전 평문에서 발췌 이세현 <푸른 낮, 붉은 밤_옛 국군광주병원 보일러실 #1, 2>, 2024, 장기보존용 잉크젯 안료 프린트, 각 225x150cm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