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최초 유화가 김홍식 회고전 ‘미완의 누드’ 페이지 정보 작성자 강은영 작성일26-03-14 10:51 조회10회 댓글0건 관련링크 다음글 목록 본문 김홍식 <미완의 나부>, 연대 미상, 캔버스에 유채, 72.5x53cm, 여수시립미술관소장/<욕장>, 1958, 캔버스에 유채, 73.9x61.8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전남 최초 유화가 김홍식 회고전 ‘미완의 누드’ 2026.02.27.-05.03 / 여수 엑스포아트갤러리 이 전시는 여수시립미술관이 소장한 널리 알려지지 않은 ‘미완성 누드’ 한 점에 담긴 미술사적 가치를 조명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미완의 나부(裸婦)>는 여수 출신이자 전남 최초의 동경미술학교 유학생인 김홍식(1897~1966)이 남긴 마지막 유화다. 일제강점기 동경미술학교 조선인 유학생들은 서구의 조형기법과 이론을 체계적으로 습득한 최초의 세대로, 한국미술을 전통회화 중심에서 벗어나 실재하는 사물을 분석적으로 바라보는 근대적 미술 체계로 전환시키는 역할을 했다. 김홍식은 경성제일고보 재학시절 3·1운동에 적극 가담한 뒤 낙향하였고, 이후 법률 공부를 위해 일본에 건너갔으나 재능이 있었던 미술을 선택해 1923년 동경미술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한다. 새로운 시대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지식인으로서 그는 예술을 통해 시대적 가치를 실현하고자 했으며, 졸업작품 <자화상>과 <나녀(裸女)>를 남긴다. 그러나 1928년 졸업 후 귀국한 김홍식은 프랑스 유학을 계획하며 예술가로서의 삶을 꿈꾸었으나, 그가 마주한 식민지과 과도기적 사회환경 속에서 오랫동안 화가로 활동하지 못했다. 고향 여수에서 선각자로서 지녔던 예술적 긍지와 신념, 예술을 통해서 시대적 가치를 구현코자 했던 그의 꿈은 사회의 몰이해와 냉담 속에서 좌절되었고, 해방되기까지 그는 시식인으로서 고뇌의 세월을 보내게 된다. 결국 예술가의 길 대신 그는 여수청년회관 건립과 여수농민회 활동, 남조선철도주식회사 토지 매수 반대운동 등 여러 사회활동에 참여하며 지역사회를 계몽하는 운동가로서의 삶을 선택한다. 그는 동경미술학교 출신 조선인 유학생 가운데 드물게 적극적으로 항일·계몽운동에 참여한 인물로 평가된다. 동경미술학교 졸업생으로서 중앙 화단에서 활동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음에도 그는 적극적으로 항일·계몽운동에 뛰어들었다. 3·1운동 참여 경험은 조선의 독립을 삶의 중요한 가치로 인식하게 한 계기였으며, 예술대신 사회운동이라는 보다 직접적인 실천의 길을 택하게 했던 배경으로 이해된다. 그의 사회운동 활동은 지역사 사료와 당시 신문 기사에 기록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김홍식의 또 다른 삶의 궤적을 확인할 수 있다. 해방 이후 그는 다시 이전의 삶을 정리하고 만성리 절골 아틀리에로 들어간다. 차마 놓을 수 없었던 화업의 기ᅟᅵᆯ로 돌아왔을 때 그의 나이는 이미 오십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후 1966년 69세의 일기로 타계하기까지 작업을 멈추지 않았으며, 대표작 <욕장(浴場)>, <백모란> 등 20여점의 인물화, 정물화, 풍경화를 남긴다. 현존 작품 가운데 절반 이상은 작가의 서명이 없는 미완성작이며, 그 중 <미완의 나부>는 배경을 다 채색하지 못한 채 남아있다. 미처 완성하지 못한 그의 화업을 닮은 나부의 뒷모습과 캔버스의 여백에서는 처연하면서도 아름다운 미완의 미학이 감지된다. 이번 전시는 김홍식의 ‘미완의 화업’을 단순한 개인적 실패나 한계로 정의하지 않는다. 그것을 일제강점기와 해방 전후라는 시대적 조건 속에서 사회운동과 맞물린 ‘선택의 결과’로 바라본다. 동경미술학교 출신이라는 엘리트적 조건에도 불구하고 항일·계몽운동의 현장으로 향했던 그의 삶을 통해 근대예술가가 처했던 역사적 딜레마와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질문을 던진다. 특히 여수라는 식민지 주변부 공간을 배경으로 완성된 화업 중심의 기존 미술가 서술을 넘어 미완과 단절, 그리고 선택의 윤리를 포괄하는 확장된 의미를 제시하고자 한다. 나아가 해방 이후 다시 예술로 돌아온 김홍식의 행보를 통해 전남 초기 유화단을 예술작품의 성취에만 한정하지 않고, 시대와 삶의 총체 속에서 역사, 사회, 운동사와 결합된 하나의 서사로 재조명함으로써 한국 근대미술사의 또 다른 중심을 형성하고자 한다. - 강은영 (여수시청 학예연구사) 김홍식 <자화상>, 1928, 캔버스에 유채, 60.8x45.7cm, 동경예술대학 미술관 소장 / 노년의 김홍식 김홍식 <봄날의 정원>, 연대 미상, 캔버스에 유채, 45.7x53.5cm, 유족 소장 김홍식 <거위가 있는 풍경>, 1965, 캔버스에 유채, 50x61cm, 우종미술관 소장 김홍식 <해안풍경>, 연대 미상, 캔버스에 유채, 45.5x53cm, 유족 소장 김홍식 <백모란>, 연대 미상, 캔버스에 유채, 38.1x45.7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김홍식 <백합 화병>, 연대미상, 캔버스에 유채, 53x45.5cm, 유족 소장 김홍식전-미완의나부,여수엑스포아트갤러리,20260312-1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