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서양화단 구상회화의 맥 페이지 정보 작성자 조인호 작성일21-03-11 18:21 조회2,251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남도 구상화단의 맥' 전시 중 2부-오지호와 오승우의 대화 전시실 남도 서양화단 구상회화의 맥 무안군오승우미술관 개관 10주년 특별전 / 2021.02.27.-05.11 남도는 전통적으로 한(恨)도 흥(興)도 많은 특유의 지역정서와 함께 풍부한 감성으로 수많은 예인들을 배출해 왔다. 남도회화의 자연교감, 사의화(似意畵), 물아교융(物我交融), 감흥 등도 시각적 형상만이 아닌 정신과 정서의 심미작용들이다. 남도 서양화단 초기에 구상회화의 근간을 세운 이는 오지호(1905~1982)이다. 오지호는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후반 유학시절부터 ‘민족미술론’에 바탕을 둔 회화탐구와 ‘녹향회’ 등의 단체활동, 언론매체 기고 등을 통해 자연생명과의 교감을 강조하며 한국적인 회화세계를 모색하였다. 일찍이 1938년 『오지호 김주경 이인화집』부록과 그해 동아일보에 기고한 ‘순수회화론’에서 “예술은 철두철미의 감성의 세계요 지성의 세계가 아니다. 생명이 그 본성의 요구대로 살 때 그것을 절대한 환희다. 이 환희에서 사는 것이, 즉 생의 환희에서 사는 것이 예술이다. 회화는 태양과 생명의 융합이다. 그것은 광(光)을 통하여 본 생명이요 광에 의하여 약동하는 생명의 자태다.”고 주장하였다. 오지호의 자연감흥 회화는 60년대 이후 조선대학교 후임 임직순에 의해 더욱 농익게 되었다. 임직순은 화문집 『꽃과 태양의 마을』(1980)에서 “빛과 색채의 만남으로 건강한 생과 자연에 대한 헌사를 그림으로 그리고 싶다. 나의 감흥을 나 나름대로의 색채와 형태로 정리하여 찬란한 원색의 집합을 창조해 간다.”고 하였다. 자연과의 교감과 감흥을 우선하는 오지호에 비하면 주관적 조형화와 재창조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는 점에서 상보적 관계를 찾을 수 있다. 오승우(1930~ )는 부친이자 대학 스승인 오지호 문하에서 구상회화의 토대를 다졌다. 그러나 큰 거목의 그늘을 벗어나 서울로 활동근거지를 옮긴 1960년대 초 전위미술운동 등 한국 현대미술의 격동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오로지 구상회화에 천착해서 10여년 주기로 대 주제를 정해 독자적인 회화세계를 모색해 나갔다. 산천경계의 기운과 세상풍물, 세계 곳곳 문화의 원형을 파고들며 부친의 자연감흥이나 생명의 환희심과는 또 다른 자연생태 기운의 진수를 찾아내고 주관적인 화폭 운용과 소재의 재해석으로 주관적인 표현성에 더 비중을 두었다. 여기에 민족문화 전통의 우주관이나 생명철학에 바탕을 둔 초월적 이상향의 세계까지 회화의 폭을 넓히고자 하였다. 남도의 대표적 미술양식으로 일컬어진 ‘호남 인상주의 회화’는 1950년대 이후 거의 30~40년 동안 지역미술의 주류로 일반화되어 왔다. 물론 이 지역에 인상주의 화풍만 있는 것은 아니어서 좁은 단위의 어느 지역이나 대학, 단체, 사승관계 등에 따라 조금은 다른 성향을 띠는 경우도 있고, 개성 있는 표현주의적 회화세계를 추구하는 개인들도 있었다. 그러나 화단이나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선도자의 작품특성과 활동을 뒤따르는 무리들에 의해 정형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그러던 남도화단은 1980년대 5·18민중항쟁과 이후 민주화운동 과정을 겪으면서 예술과 사회와의 관계, 시대문화에 대한 현실자각들이 일어나면서 변화들이 일게 되었다. 거친 붓질과 강렬한 색채, 직설적인 소재들의 병렬식 복합구성으로 자연과 예술 우선이 아닌 시대와 사회로 향한 현실주의 참여미술 운동으로 화폭뿐 아니라 작가의식에서도 전면적인 변화들을 실행해 나갔다. 이와 더불어 80년대 후반부터 포스트모더니즘의 자극을 따라 창작의 새로운 출구를 찾아 순수 예술의지와 과감한 형상해체로 내적 혼돈상태를 표출시키는 신조류가 나타났다. 이들은 수없이 단체의 이합집산을 거듭하고, 돌파구로 외국 유학을 다녀오고, 오브제와 조형형식, 공간설치, 행위예술 등으로 저돌적인 표현활동을 감행하였다. 이 같은 80년대부터 시작되어 1990년대 전반으로 이어진 남도미술의 대 변혁은 1995년부터 시작된 광주비엔날레에 의해 더욱 강렬하게 변화를 기운을 타게 되었다. 격랑의 시대를 일선에서 이끌었던 현실주의 참여미술은 그 거칠고 격렬한 대 사회적 직설 대신 보다 치밀한 사실묘사나 순화된 풍자, 함축된 메시지로 공감대를 높이고, 일상 삶 주변의 소소한 것들로 정겨움과 위로를 담은 서사적, 서정적 현실주의로들 많이 전환하였다. 또한 민족 주체문화의 현대적 해석과 함께 색다른 사실묘법과 의미내용의 조형적 형상화, 신소재나 매체를 끌어들여 시대변화에 따른 표현세계의 확장을 꾀하며 쉼 없이 분화되고 있다. 문화·예술활동은 사회적 산물이라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회화양식이나 예술세계도 시대변화와 창작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번 무안군오승우미술관이 개관 10주년 기념 특별전으로 기획한 ‘오지호와 오승우, 그리고 남도 구상화단의 맥’은 이 지역 남도미술의 근·현대기 활동과 특성, 주류 양상과 독자적 창작활동, 공동체와 작가 개개인의 향후 과제들을 되짚어보는 의미 있는 장이다. 지난 2월 27일 시작해 5월 11일까지 진행되는 이 전시는 맨 먼저 1부로 미술관 주인공인 오승우화백의 50년대부터 최근까지 작업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게 선별해 꾸몄다. 꽃과 요정, 한국의 100산, 동양의 원리, 십장생도 등 시기별 작품과 주제별 연작들이다. 이어 부친과의 예술세계에서 조우로 꾸민 2부 ‘오지호와 오승우의 대화’도 흥미롭다. 두 분의 주요 작품들을 마주보게 배치하고 그 사이 사이에 사진, 도록, 언론기사 등 아카이브 자료들을 곁들였다. 국립현대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목포자연사박물관 등에서 빌려온 작품들로 전시의 특별한 의미를 더하고 있다. 3부는 두 부자와 더불어 남도 구상화단을 일궈온 일제강점기 유학파들부터 최근 청년작가에 이르는 길고도 넓게 펼쳐보는 공간이다. 섹션 I-‘일본 유학파 1세대 서양화가와 해방 직후 호남 서양화단’, 섹션 Ⅱ ‘2세대 서양화가의 등장과 지역미술단체 활동(1950~1970년대)’, 섹션 Ⅲ ‘새로운 사생의 흐름’으로 공간구성이 연출되어 있다. 지역 화단의 맥을 현대에서 되비춰보는 이번 기획전의 가장 의미 있는 부분으로 보인다. 여기서는 김홍식, 김영자, 강동문, 김수호, 양인옥, 손동, 윤재우, 김보현, 배동신 등등 일제강점기 유학파들의 40년대부터 해방 이후의 작품들을 비롯, 지금은 원로 중진들이 된 김암기, 조규일, 진양욱, 최쌍중, 황영성, 강연균, 박석규 등등 제자와 후배들, 지역 정서와 감성을 바탕으로 개별 독창성의 모색들이 한 자리에 모아져 있다. 또한 지역미술계에 새바람을 일으키고자 1958년 결성된 목포의 10대전 자료들도 흥미롭고, 목우회를 구심점으로 한 구상화단의 공통된 특성과 개성파들, 오병욱 송필용 등의 두툼하면서도 기운찬 화폭들, 남도 서정과 감흥을 시적 형상으로 녹여낸 정선휘 박성완 등등 색감과 필치의 맛을 고루 만나볼 수 있다. - 조 인 호 (광주미술문화연구소 대표) 호남출신 첫 서양화가 김홍식의 <잔몽>(1956, 53x73cm, 광주시립미술관 소장)과 <욕장>(1958, 73.9x61.8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오지호 <처의 상>, 1936, 캔버스에 유채, 72x52.7cm / <북구의 정원>, 1976, 캔버스에 유채, 53x41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양인옥 <유채화>, 1989, 캔버스에 유채, 38x45cm / 김보현 <손박사>, 1955, 캔버스에 유채, 34x20cm, 조선대 김보현실비아월드미술관 소장 오지호의 <아미타후불탱화>(중앙, 1954), 오승우 <원효사 칠성탱화> <원효사 신중탱화>(좌우, 1954), 송광사 성보박물관 소장 오병욱 <겨울꽃밭 1,2>, 2015, 캔버스에 유채, 162x130cm 송필용 <땅의 역사>, 2018, 캔버스에 유채, 각 194x130.3cm 정선휘 <삶 속에서>, 1997, 캔버스에 유채, 116.8x91cm 박성완 <소태동 호떡>, 2021, 캔버스에 유채, 69.3x136.3cm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