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묵사실화로 엮어낸 하성흡의 ‘윤상원 열사 일대기’ 페이지 정보 작성자 조인호 작성일21-06-15 14:14 조회1,940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하성흡의 '윤상원 열사 일대기' 전시 중 일부 수묵사실화로 엮어낸 하성흡의‘윤상원 열사 일대기’ 생애와 항쟁일지 따라 12폭 2300호로 담아내 시대를 밝힌 한 인물의 진면목을 제대로 이해 기억하고 그 삶과 활동의 가치를 사회적 자양분으로 삼는 일은 공동체의 과제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상징적 인물 윤상원 열사의 일대기를 수묵사실화로 펼쳐내어 대중 앞에 발표하는 전시회가 있었다. 현실주의 수묵화가 하성흡이 장고 끝에 완성한 대하소설 같은 작품들이 ‘역사의 피뢰침, 윤상원’이라는 전시명으로 지난 5월 27일부터 6월 13일까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창조원 6관에서 선을 보였다. 고교 3년이던 80년 오월 당시 도청 가까이에 살았던 하성흡은 충격의 현장상황들을 목격하고 분개하여 시민군의 거리항쟁에 참여하였다. 상황종료를 위한 계엄군의 진압작전을 대비하던 폭풍전야의 마지막 밤, 조여 오는 극도의 긴장 앞에서 몰래 도청을 빠져나오며 그림으로써 증거하리라 다짐했던 자신에 대한 약속이 비굴한 도피변명이 되지 않도록 그동안 수없는 ‘광주오월’ 연작들을 그려왔었다. 그런 오월의 경험과 예전 작업들을 토대로 윤상원 열사의 생애와 오월 당시 활동들을 마침내 일련의 수묵사실화 작업으로 풀어낸 것이다. 그는 전시회 도록에 실은 작가노트에서 “비록 그것이 양심에 따른 정의의 선택이라 할지라도 그 상황을 견디어낸다는 건 상상하기 힘든 거다. 그들은 어떻게 참고 견디고 버티어냈을까? 그분들에 대한 경외가 이 그림을 그린 동기다.”고 말한다. 비경험 또는 이후 세대가 세상의 주축이 되고 있고, 편협된 자료접촉이나 정치적 매도, 왜곡, 폄하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역사의 진실과, 항쟁의 과정과 실체, 광주의 당당한 미래와 한 생의 가치 있는 삶을 위해 기꺼이 죽음의 어둠 속에 남았던 157명의 결사항전대와, 끝까지 그들을 이끌었던 한 아름다운 청년의 비장하고도 숭고한 희생이 광주의 당당한 오늘을 만들었고, 그 정신을 그림 속에 담고 싶었다고 전시작품을 설명하기도 하였다. 2016년부터 구상한 필생의 이 일대기 작업은 내용전개의 전체 맥락과 주요 지점들을 효과적으로 집약 구성하는 것이 우선적인 과제였다. 이에 따라 처음에는 메모지만한 종이에 연필로, 그다음 8절지 정도에 먹과 콘테로, 다시 실제 화폭 크기에 목탄으로 구상부터 밑작업들을 거친 뒤 화폭에 본작업을 담아내는 4단계를 거쳤다 한다. 그만큼 개인적 책무의식뿐 아니라 모두가 기억해야 할 역사이자 상징인 인물과 광주의 빛줄기를 효과적으로 집약하고 회화적으로 풀어내는데 깊은 고심과 심혈을 기울였음을 짐작케 한다. 물론 40여년 가슴에 담아 온 숙제를 어떻게 회화작업으로 풀어낼지는 온전히 작가의 몫이다. 하지만, 방대하고도 결코 가벼이 여길 수 없는 이 작업을 열사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게 실현시켜내는 일은 현실적인 부담부터가 컸다 한다. 그 과정에 그의 뜻이 열사의 태생지인 광산구와 연결이 되고, 기록화 공모입찰방식을 통해 재정적인 지원이 이뤄지면서 2019년부터 본격적인 밑작업을 거쳐 2020년과 올해 봄까지 온힘을 집중해 거대한 서사를 일궈낸 것이다. 작업은 열사의 일대기를 집약한 12개의 지점들에 따라 각각의 화폭에 큰 주제처럼 윤상원을 상징으로 세우고, 그와 연관된 여러 상황들을 군집별 이야기주머니들로 구성하고 있다. 처음에는 100호 10점으로 1000호를 계획했는데, 일대기의 연결지점 배치와 전체 서사의 완성도를 높이려다보니 120호 12점으로 키워지고, 거기에 구성상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더하고 중간에 360호로 키운 3폭을 더하다보니 결국 다 합해 2,300여 호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12폭으로 구성된 본작업들 외에 몇 번씩 거듭했던 습작이나 이야기별 소품작업들은 별도로 제외하고서다. 작품구성은 열사의 어린 시절부터 전남도청 최후 희생까지 주요 장면별로 1폭-임곡마을 유년시절, 2폭-사춘기시절, 3폭-대학시절, 4폭-귀향, 5폭-들불야학, 6폭-분노, 7폭-투사회보, 8폭-집단발포, 9폭-광천(도청사수 결심), 10폭-시민군 대변인, 11폭-도청 죽음, 12폭-부활(영혼결혼과 6월항쟁) 등으로 엮어진다. 황지우는 전시도록에 올린 글에서 “계엄군이 퇴각하고 명령하는 권력이 사라진 문자 그대로의 ‘무정부’ 상태에서, 그러나 광주 시민들은 폭도이기는커녕 소위 ‘해방광주’의 나흘 간에 그들이 보여준 아름다운 자치능력은 놀랄만한 것이었다… 지도자 없는 다중의 시민적 자율성을 입증한 ‘광주코뮨’… 윤상원은 역사가 자신을 불러내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는 기꺼이 그 자리에 서서 자신은 새까맣게 타져버리는 역사의 피뢰침이 된 것이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하성흡 작품에 대해서는 “왠지 울먹거려지고 마음이 싸하게 동하는 심리적 공명이 울리도록 작가는 화면을 넓힌 만큼 생기는 여백을 두었다. 이야기를 줄이고 빈 여백을 그는 갈필로 찰묵법(擦墨法)에 의해 여러번 문질러 까끌까끌한 촉감의 ‘회화적인 맛’을 우려냈다.”고 평한다. 그동안의 수묵사실화와 남도풍류와 오월기록화 작업 경험들을 바탕으로 삼으면서도, 영웅적이고 기념비적인 강조를 위한 과도한 작위적 왜곡이나 임의조형, 감정의 개입을 삼가고 사실에 충실한 서사를 풀어내었다. 필요한 경우 모필 선묘의 맛을 살리지만 독창성을 우선한 회화적 묘법보다는 마른 먹을 덧쌓고 우려내고 번지고 엷은 채색을 더하면서도 기록과 회화적 구성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무채색의 먹과 필요한 부분만 절제해서 올리는 엷은 색 위주의 작업 특성상 차분하게 정제되어 보이면서도 넓은 검은 공간 등 여백을 많이 두어 혼탁한 시대와 열사의 깊은 번뇌, 그림 전체의 장중함이 더해졌다. 이는 시각적 색채효과와 필촉들, 세부묘사들이 적나라하기도 한 일반적인 기록화들과는 사뭇 다른 절제와 함축과 비장미가 전면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평소 작업 특성상 회화적 묘법을 앞세우거나 특정부분의 차별적 강조, 또는 극적인 감정의 고양으로 이끄는 화폭을 연출하기보다는 사실과 정신의 기록에 성실하게 임했던 작화태도를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일생일대 작업으로 여겼던 이 과업에 피울음을 참아가며 심신을 다해 오랜 기간 몰두하느라 건강이 많이 상하기도 했다 한다. 그림으로 읽는 5‧18의 횃불 윤상원 열사의 일대기, 하성흡 작가 자신도 분명 화업일생의 필작이라 여겼을 것이다. 그 집념의 작업들을 1980년 오월 도청 최후 항전의 날이자 새로운 광주 역사의 시작이 된 5월 27일에 시작해서 20여 일간의 짧은 전시기간과, 코로나19 상황에 따른 자유로운 문화활동의 위축으로 많은 분들과 함께 하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 광산구에서 추진하는 열사의 기념관이 마련되면 거기에 일괄 소장 전시될 예정이라 하니 그곳에서 더 많은 이들과 함께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조인호 (광주미술문화연구소 대표) 120호 9점과 360호 3폭으로 구성된 '윤상원 열사 일대기' 12폭 '윤상원 열사 일대기' 화폭의 부분들 '윤상원 열사 일대기' 중 일부 '윤상원 열사 일대기' 밑그림 중 일부 하성흡의 '윤상원 열사 일대기' 전시가 열린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창조원 6관 '윤상원 열사 일대기' 전시작품 설명하는 화가 하성흡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