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채 개인전 ‘이토록 찬란한 무게’ 페이지 정보 작성자 권은영 작성일21-07-06 12:18 조회1,939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임현채, <그렇게 간다>, 2021, 종이에 아크릴과슈 임현채 개인전 ‘이토록 찬란한 무게’ 2021.07 –07.06 / 광주 신세계갤러리 “아이를 남의 손에 맡기고 일하는 게 아이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듯, 일을 그만두고 아이를 키우는 것도 일에 열정이 없어서가 아니다.“(조남주,『82년생 김지영』, 민음사, 2016, 145쪽) 오색찬란한 장난감이 한 가득 화면을 채우고 있다. 빨간색 자동차, 파란색 로봇, 노란색 목걸이, 초록색 곤충모형, 보라색 나팔꽃 그리고 축포까지. 소년의 오늘 하루를 책임져줄 하염없이 큰 행복이 담겨 있는 장난감들이다. 보고만 있어도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어딘지 모를 어색함에 한 걸음 다가가 보면, 자동차 위에 집적되어 있는 장난감들이 투명 테이프와 얽히고설켜 무너질 듯 말듯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순간 우리는 작품 속 장난감 자동차가 되어 내 어깨 위를 누르는 삶의 무게를 마주하게 된다. <아름다운 행진> 연작은 버겁지만 소중한 일상의 무게를 감내하고 전진하는 우리의 모습을 담고 있다. 때로는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이야기조차 할 수 없을 때도 있다. 청테이프로 동여맨 장난감 속에는 차마 말로 할 수 없지만 무의식적으로 세어 나온 숨기고 싶은 감정의 흔적들이 발견된다. <그렇게 간다> 연작에서 일기장에 힘주어 한 글자씩 써내려간 그날의 감정을 살포시 덮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을 그리고 내일을 이겨내야 하는 우리의 현실이 투사되어 보인다. 조금은 버겁지만 무너지지 않고, 다시 또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은 결국 우리 스스로 안고 있는 수많은 역할들이 지우는 책임과 의무의 무게보다 더 큰 사랑의 힘이라고 작가는 이야기 한다. 투명테이프와 청테이프가 사라진 <사랑으로>에서 가느다란 노끈만으로도 거뜬히 그 무게를 견딜 수 있는 비결은 아이가 선물해준 울퉁불퉁 무지개 찰흙 장난감에 담긴 소중한 마음 덕분이라고 피력하고 있다. 여느 사찰에서 볼 수 있는 돌탑에 담긴 모두의 소원에 더불어 나의 소원도 얹어 멀리 반짝이는 별을 향해 순풍에 돛을 달고 전진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를 선사한다. 이번 신작들은 특히 익숙한 풍경 속에 데페이즈망(dépaysement)적으로 결합된 일상의 소재들이 자아내는 초현실적 내러티브가 돋보인다. 버겁지만 찬란한 삶의 무게를 경쾌한 색채로 담아내어 우리 모두를 위로하는 듯하다. 반면 드로잉 시리즈는 앞선 작품들과 달리 크기도 작고, 무채색 톤에 옅은 담채로 표현하고 있다. 바닷가에서, 산과 들에서, 놀이터에서, 공터에서, 버스 정류장에서, 길거리에서 소중한 사람과 함께 했던 찬란한 순간들을 역설적이게도 그녀는 회색조로 담담하게 담아내고 있다. 그림자처럼 잡고 싶어도 잡을 수 없는 그날의 행복한 순간은 아련하게 박재되어 우리 곁을 지켜준다. 인물을 배제하던 기존 작품과 달리 아기자기하게 소환된 실루엣에서, 그렇게 해서라도 붙잡고 싶은 화면 속 주인공들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엿보인다. 작품 한켠에 세필로 새겨진 작가의 소박한 심경은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의 순간에 더욱 빛을 더한다. 임현채 작가의 솔직한 작품들은 일기처럼 그녀의 일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작가는 줄곧 주변에 대한 세심한 관찰을 바탕으로 선택된 대상들로 화면을 구성한다. 초기 작품들은 공간과 기억을 구심점으로 외부와의 소통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면, 결혼을 한 이후 아홉 번째 개인전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기점으로 작가의 시선은 ‘원거리에서 근거리로’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번 열 번째 개인전에서 작가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하나의 풍선을 가지고 있던 코끼리가 떠나고, 그 자리에 홍수처럼 밀려오는 장난감을 질끈 동여매고 우직하게 전진하는 자동차들이 등장한다. 구작은 모성애가 강한 코끼리를 통해 엄마로서의 역할에 방점이 찍혀있었다면, 올해 신작은 자동차를 통해 본인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전진하려는 작가로서의 열의가 가득하다. 딸이자 아내이자 엄마이자 작가로서 임현채 작가 인생의 변곡점들이 솔직하다 못해 투명하게 표현된 작품들은, 마치 ‘80년생 임현채’ 한편의 영화로 다가온다. ‘82년생 김지영’과는 달리, 임현채 작가는 한 손에는 엄마라는 이름의 공을, 다른 한 손에는 작가라는 이름의 공을 들고 아슬아슬 외줄타기를 하며 꿋꿋하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작가는 “내 자신이 사라질 것 같아서”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육아맘이라는 현실의 장벽 앞에서 그녀를 지켜주는 것은 작품인 것이다. 작품은 곧 “나의 의지”라고 강조하는 작가의 목소리가 애잔하게 다가온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찰리 채플린)이라고 한다. 우리 모두는 매일 다양한 역할 놀이의 주인공으로 열연하고 있다. 때로는 어깨를 짓누르기도 하지만, 나를 사랑하는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있기에 우리는 흔쾌히 이고지고 나아갈 수 있다. 그때는 무거웠지만, 기억 속 그날은 애틋하기도 하다. 임현채 작가의 작품은 버겁고도 찬란한 삶의 무게를 기꺼이 감당하는 우리 모두에게 선사하는 따뜻한 위로로 다가온다. - 권은영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아시아문화원 큐레이터) 임현채, <사랑으로>, 2021, 캔버스에 아크릴과슈 임현채, <꽃다발을 선사합니다>, 2021, 종이에 아크릴과슈 임현채, <꼬마숙녀로부터>, 2021, 종이에 아크릴과슈 임현채, <아름다운 행진>, 2021, 종이에 오일파스텔, 아크릴과슈 임현채, <드로잉> 연작 중, 캔버스에 아크릴과슈, 먹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