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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으로부터의 형상; 박민광의 조각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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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고영재 작성일21-11-20 20:09 조회2,00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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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민광 <그대 향한 사랑>, 2020, 테라코타, 40x30x22cm

     

    마음으로부터의 형상; 박민광의 조각상들

     

    미술인들과 만나 술잔을 기울이다보면 종종 취중진담의 순기능이 발휘되고는 한다. 작업이라는 긴긴 여정에서 불가피하게 사회적인 관계성과 허식에 체화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이 창작의 길로 들어설 때의 첫 마음은 변함이 없다. 현실에 치여 그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없었을 뿐, 창작자의 다짐은 의외로 담백하다. “한 사람만이라도 내 작품에 감동하고 내 작품을 좋아해준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어요.” 작가로서의 바람을 물었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지만, 단순히 취중 문답이라고 하기에는 그 목소리의 울림이 자못 절절하고 간절했던 기억이다. 세태에 빠르게 적응해가고 전략적인 흐름 속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러한 다짐은 다소 소박하면서 답답한 그 무엇일 수도 있겠으나, 가장 근본적으로 간직할만한, 혹은 간직해야 할 가치이기도 하다. 재현미술, 특히 조각 작업의고전적인 태도에 천착하는 박민광의 작품이 눈에 들어왔던 이유도 비슷한 맥락에서였다. 2년 전, 지천명을 넘긴 시기에 첫 개인전을 치렀던 그는 여전히 마음을 울릴 형상을 위해 분투한다.

    흙에서 피어나는

    박민광은 본래 석조를 좋아했다. 그는 대리석 공방이 즐비한 이탈리아 카라라에서의 유학을 꿈꿨지만, 93년 대학 졸업 이후 이내 러시아로 향했다. 작가는 우즈베키스탄 타쉬켄트에서 모뉴멘트 장식예술을 수학 후 작업을 더욱 확장시키기 위해 러시아 국립레핀미술아카데미에서 조소를 전공한다. 리얼리즘의 전통이 굳건한 러시아에서 규모와 서사가 돋보이는 모뉴멘탈한 조각상들을 접하면서, 더불어, 현대적인 도구 없이 고전 방식을 고수하는 현지 작가들을 보면서 그는 조각미술 본연의 매력에 더욱 심취한다. 손맛이 그대로 묻어나거나 흙의 질감이 돋보이는 이 시기의 작품은 석고와 테라코타 작품이 대부분이다.

    박민광은 인간성의 순수와 이상적인 미의 구현을 위해 서양미술에서 가장 오래전부터 예술 형식으로 삼은 누드를 중심으로 사실적인 모델링 작업을 펼쳤다. 작품 <빅터르> 속의 무릎을 구부려 잔뜩 웅크린 남자는 무슨 생각엔가 골몰해 있는 듯 땅으로 시선을 떨구고, 쭉 뻗은 오른 팔에 기대어 편안하게 다리를 꼰 채 눈을 감은 여인은 <휴식>이라는 제목처럼 달콤한 쉼에 빠져있다. 주로 테라코타로 표현한 소형 습작들은 더욱 표현적이며 주정적이다. 이제 막 흙 속에서 피어난 것처럼 얼핏 추상적인 덩어리로 인식되는 당시의 작품들은 흙의 거친 물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허리를 비틀어 하늘을 향해 절규하는 여인, 평평한 바닥 위에 온전히 자기 몸만을 의지하며 부유하는 남자, 당당히 바람과 맞서고 있는 여인 등 박민광의 유학 시기 작품들에는 해부학적인 완성도와 기법상의 사실적인 표현력만이 아닌, 그 대상이 인간이기에 느낄 수 있는 생의 감성들이 드문드문 묻어있다.

    미세한 근육의 흐름과 안정적이면서 강건한 동세 속에서도 작가의 초창기 작품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눈에 들어오는 건 인물들의 섬세한 표정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 즉 실재하는 삼차원의 공간에 자리하게 될 때 그 작업적 의미가 완성되는 조각미술의 사실미 안에는 무엇보다 보이지 않는 감정까지 여실히 담아내야 하는 작가만의 내적 직관력이 포함되어 있다. 어느 누구나 거쳐 온 인생의 희로애락이 덩어리를 깎아내는 과정을 통해, 혹은 덩어리를 한 점 한 점 붙여나가는 과정을 통해 다시 펼쳐지게 되고, 사람이 사람의 삶을 표현하고 때로는 대변함으로써 결국에 예술은 우리 삶 안에서 궁극의 힘을 발휘하게 된다. 박민광이 조각의 근본적인 미감에 집중하는 이유 또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삶을 에두른 감성들

    창작자의 작업세계가 무르익기 전에 가장 먼저 본인 작업의 주제로 삼게 되는 것은 무엇보다 자기 자신일 것이다. 나의 이야기이지만 어찌 보면 당신의 이야기이기도 한 작품 속 저간의 사정들은 향수자로 하여금 쉬이 정서적 소통을 이끌어낸다. 귀국 이후 2000년 초반부터 현재까지의 작가의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소재는 단연 여성이다. 박민광은 여성으로서의 자신의 삶을 작품 속에 녹여내며 특유의 섬세한 분위기를 만들어왔다. 더불어서, 석조와 같은 질감을 내는 작품의 물성은 FRP와 대리석 가루 등의 재료에 의한 것인데, 이 외에도 테라코타와 함께 여건이 허락되는 대로 브론즈 작품 또한 선보여 왔다.

    대학 시절이나 귀국 후의 작업 형식에는 공중에 띄운 인체가 많다. 그만큼 역동적이고 에너지가 가득한 동세를 선호했던 작가이지만, 한 해 한 해를 보내면서 우리 삶을 에두른 미묘한 감성들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사랑으로 피는 꽃> <기다림>에는 반려자이자 예술적 동지인 남편에 대한 사랑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세대 간의 어울림을 주제로 한 <세월의 향기>는 이웃하던 동네 할머니와 아이가 모티브가 된 작품이다. 작품 속 노인과 소녀는 무심한 듯 가까이 서로의 일상 안에 자리한다. 작가는 벤치에 걸터앉거나 기댄 인물들 간에 적절한 여백을 둠으로써, 그 빈 공간 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세대의 인물을 배치한다. 모성의 강인함을 표현하며 살아감의 의지를 다진 작품 <성숙>, 생명을 잉태한 젊은 여성이 맞닥뜨리는 본능적인 두려움 혹은 신산한 감정들이 담겨진 <남몰래 흘리는 눈물>, 인생의 화양연화인 듯 결코 잡을 수 없는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 <찰나>까지, 박민광은 끊임없이 피고 짐을 반복하는 꽃을 여성의 삶과 대입시킨다.

    작가는 보이는 대상, 혹은 장식적인 소재로써의 꽃이 아닌 삶에 대한 근원적인 욕망과 꿈이 응축된 상징물로서 꽃을 사용한다. 화려한 장미는 열정적인 삶을 내포하고, 혹한에도 화려하게 꽃을 피우는 동백은 생의 강인함을 연상시킨다. 꽃송이 전체가 일순간에 떨어져버리는 동백은 낙화한 그 자리에 다시 싹을 틔우기에 소재 자체로서 희망을 상징한다. 한편, 작품 <><그대 향한 사랑>과 같은 근작에서는 보다 자유로운 손맛과 서사가 느껴진다. 천년의 사랑을 상징하는 카라꽃 한 송이를 부둥켜안은 여인은 절절히 어느 한 사람을 깊이 연모하는 듯하고, 미간을 찌푸린 채 사뭇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젊은 청년은 사랑이라는 깊은 늪에 빠져들고 있다. 작가는 보다 한 덩어리로 인식되는 형상과 서사적 구조에서 다시 표현의 자유로움을 찾아가고 있다.

    그저 미술이 좋았던 꼬마 때부터 작가의 꿈은 누가 봐도 감동을 주는 작품 한 점이었다. 여전히 그는 정서적 감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제가 훌륭한 작품을 보면서 느꼈던 것처럼, 작품이 작품 자체로 와 닿았으면, 그저 감동으로 다가갔으면 좋겠습니다.” 박민광은 작업이 순수한 소통이라고 생각한다. 작가만의 일방적인 발언이 아닌 서로에게 용기가 되는 그러한 작품을 계속 소망하기에, 그의 작업은 보다 따스해 질 수 있을 터이다.

    - 고영재 (독립큐레이터) / [전라도닷컴] ‘고영재의 작가탐험’ 202112월호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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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민광 <길 위의 꽃>, 2019, 테라코타,_36X25X3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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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민광 <빅터르>, 1998, 석고,_45X24X32cm / <습작 Ⅳ>, 1997,_테라코타, 24X9X2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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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민광 <사랑으로 피는 꽃>, 2001, 석고,_37X37X1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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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민광 <남몰래 흘리는 눈물>, 2019, 수지에 대리석가루,_25X23X27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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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민광 <찰나>, 2019,_수지에 대리석 가루, 40X79X37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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