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인상에서 투영되는 풍경으로; 이인성의 ‘아이엠 그라운드’ 페이지 정보 작성자 고영재 작성일22-03-26 19:43 조회2,164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이인성 <그라운드>, 2021, 캔버스에 아크릴, 91x116.7cm 생의 인상에서 투영되는 풍경으로; 이인성의 ‘아이엠 그라운드’ 광주시립미술관 청년작가초대전 (2021.12.14~2022.03.20) 리뷰 개인의 삶에서 연유한 이인성의 회화는 붓과 물감으로 쓰인 일종의 일기와도 같다. 말로써 표현하기 힘든 사유의 단상들을 은유와 상징적인 장치를 통해 그려나가는 그의 작업은 회화 본연의 표현적인 힘에서 비롯된다. 포착된 생의 인상 지난 연말부터 3월까지 광주시립미술관 분관 하정웅미술관에서 진행했던 「이인성 – 아이엠그라운드」 전은 작가의 작업 세계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자리였다. 대학 졸업 이후 근 13년간의 작업 세계의 흐름과 함께 앞으로의 화업을 가늠해보는 자리였지만, 무엇보다 회화라는 순수미술의 장르적 속성에서 구축해낸 작업적 변화의 틀거리를 발견하는 기회로써 나름의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우리가 지극히 개인적인 일상 안에서 느끼는 상실과 공허, 혹은 소외와 같은 감정들을 필두로 작가 본인의 경험을 화폭 안에 함축해온 이인성은 근작에서 체감의 영역을 더욱 확장하고 있다. 여기에서 언급하는 체감이란 작가의 이야기 전달 방식이 친절하거나 설명적이어서 관람자를 설득하는 방식의 일방적 소통이라기 보단, 관람자의 개별적 서사에 맞게 읽히는 작품 독해의 가변성을 지칭한다. 근작의 가능성을 언급하기에 앞서 이인성 작업세계의 흐름을 대략 훑어보자면,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개인에서 주변으로의 시점 확대이다. 작가의 초기 작업인 <아지트 Agit> 시리즈에서는 나와 나를 둘러싼 하나의 ‘상황’들이 주로 열거되었지만, 종국에 드러내고자 했던 대상은 철저히 나였다. 일상과 주변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 놓인 나를 보여줌으로써, 빠르게 급변하는 시대 안의 무수한 개인들을 거리낌 없이 풀어냈다. 초기작은 회화적인 굵은 붓 터치와 무채색 톤이 화폭의 균형을 잡아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대비된 색상들로 인해 강한 인상을 풍긴다. 삶의 근원적인 상실감을 이야기하기에 무채색과 원색의 대비, 그리고 거친 붓질은 가장 효과적이면서 극적인 표현 수단이었을 게다. 인물들 또한 주제에 걸맞게 무표정으로 일관하며 명확하지 않은 형태로써 각각의 개성들이 거세되어 있다. 이성보다는 감정 지향적인 이러한 성향은 점차 자기 반성적 시점으로 변화하며, 이후 절제된 화면을 구사하기 시작한다. 작가의 표현대로 “단순한 감정표현이 아닌 작품으로서 관객과 어떻게 관계 맺을까에 대한 고민”은 표현의 시점을 일인칭에서 삼인칭으로 확장시킨다. 이인성만의 특정한 서사성은 개인전 「Hisdy」와 「공(空)empty」를 거치며 희석되는 경향을 보인다. 작품 <울음> 과 <너머의 풍경> <공(ball)> <보물찾기> <그들이 말하는 것> 시리즈 등에서 보이는 절제된 색조와 단순화된 터치, 그리고 이전보다 상징성이 배가된 화면 연출은 관람자로 하여금 사색의 여지를 남긴다. 삶에 대한 상호 공유 작가에게 있어 2011~12년 중국 북경에서의 레지던시 시기는 작업 전환의 중요한 회전축이 되었던 때이다. 표현 대상의 확장에 있어 개인에서 주변으로의 이동, 그리고 보다 함축된 화면 구성은 이 시기의 특정한 프레임 포착에서 시작되었다. 2012년 작품 <혼자 하는 테니스>가 그 실재한 현장으로 화면 속 인물은 아무도 없는 적막한 테니스 코트에서 홀로 경기에 열중하고 있다. 벽을 향해 공을 날리며 라켓을 흔들고 있는 이 사람은 마치 언어의 묵음 처리처럼 싸울 대상이 가시화되지 않았을 뿐, 제법 치열한 현장에 놓여 있다. 특히 회색 끼의 화면 안에 선명하게 배치된 주황색 형광공은 이후 이인성의 작업에서 형식과 내용상의 중요한 환원장치가 된다. 현재까지의 작품에 주로 등장하는 이 형광공은 보는 이에 따라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삶의 다채로운 편린이자 기제로 읽을 수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생을 진행하게 하는 에너지이자 근원을 상징한다. 작가는 「아이엠 그라운드」전에서 이 장치를 설치 형태로 구축했다. <그라운드>라는 제목의 설치작품은 테이블 축구에서 착안한 것으로 아군과 골대도 없이 자기 스스로의 싸움에 고군분투하는 현대인을 표현한 것이다. 어떠한 미동도 없는 운집된 무리들 밖으로 무수한 형광공들이 흩뿌려져 있다. 발광체에 의해 더욱 가시화되는 공들은 멈춰 있는 군상과 대비됨으로써 그간의 치열했던 싸움을 암시한다. 어찌 보면, 최근의 전시에서 ‘상황’은 다시 두드러지는 형국이다. 이인성은 투우와 축구, 테니스 게임 등 자못 동적인 소재들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삶터의 모습을 직관적으로 표출한다. 현실이라는 거대한 바람과 싸우는 들판의 붉은 인물, 한치 앞도 가늠할 수 없는 망망대해에 떠 있는 듯 유영하는 자아, 돌진하는 적을 막아내야 하는 골키퍼의 움직임으로 아득한 지평선을 응시하는 사람, 낙뢰의 바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광대 차림으로 악기를 연주하는 인물까지, 구체적인 상황과 비유 속에서 대상들은 하나같이 최선을 다해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종전의 작업에서 삶의 목표나 막막함 따위는 비교적 상징적인 이야기체로 서술되었지만, 근작에서의 삶이란 고민할 틈도 없는 명징한 실루엣으로 묘사가 된다. 각각 2016-17년의 작품 <나무 심는 사람들> <뗏목 위의 두 사람>에서의 인물과 근작 <폭풍우 치는 밤> <광야>에서의 인물은 주제는 동일하더라도 그 풍기는 에너지는 사뭇 다르다. 형식은 이전보다 절제되었지만 내용은 더 극명해진 느낌이 든다. “아직도 화면에 터치가 없으면 불안해요. 의도적으로 구성했던 주황색 점 또한 작품 형식에 있어서 어느새 덫이 돼버린 느낌도 들지만, 스스로 종속되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형식적인 고민의 와중에 빠르게 진행된 최근의 작품들에서 외려 이야기의 독해성이 높아졌음을 느낀다. 그간 설치와 사진 등 다양한 장르에서 작업적 실험도 단행했지만, 이인성의 작업에서 주된 골자는 분명 회화일 것이다. 이는 달리 말해 그의 작업에서 중요한 지점은 단연코 형식보다 내용이라는 의미이다. 3개월 여 진행된 지난 전시가 반가웠던 이유는 그 스스로의 삶과 유리되지 않는 작업들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창작자가 작업에서 생의 진실을 찾아감은 이내 가치 있는 과업일 테지만, 의도적으로 너무 심각할 필요는 없다. 일도 창작도 그저 삶의 한 부분임을 인지하지 못하면 결국에는 나에게 집중하지 못하고 중심을 자꾸 외부에 두게 된다. 궁극에는 나를 찾는 과정이지 않을까? 촘촘히 그 삶을 살아내고 또 드러내다 보면 작품을 대하는 이들 또한 작가가 제시한 심리적 풍경 안에서 그들의 생을 오롯이 투영할 수 있을 터이다. 그림일기와 같은 작가의 수많은 드로잉과 에스키스가 의미 그대로 하루하루의 ‘일기’처럼 지속되고 있듯이 말이다. - 고영재 (미술비평·전시기획), [전라도닷컴] ‘고영재의 작가탐험’, 2022년 4월호 이인성 <광야 2>, 2021, 캔버스에 아크릴, 31.8x41cm 이인성 <Keeper>, 2021, 캔버스에 아크릴, 130x162cm 이인성 <작업실에 앉아 있을 때면>, 2021, 캔버스에 아크릴, 91x72.7cm 이인성 <폭풍우 치는 밤., 2020, 캔버스에 아크릴, 72.7x60.6cm 이인성 <일을 위한 시도., 2019, 캔버스에 아크릴, 162x130cm 이인성 <그라운드>, 2021, 나무, 스틸, 셀룰로이드, 볼, 형광안료, 블루라이트, 가변설치 이인성 <그라운드>(부분), 2021, 나무, 스틸, 셀룰로이드, 볼, 형광안료, 블루라이트, 가변설치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