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듯, 낯선’ - 윤준영 초대전 페이지 정보 작성자 양초롱 작성일22-08-03 19:21 조회1,933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윤준영 <Believer>, 2022, 자연석, .3D프린팅 미니어처, 신세계갤러리 사진 ‘익숙한 듯, 낯선’ - 윤준영 초대전 2022.07.28-8.16 / 광주신세계갤러리 달이 머무는 곳, 마음의 집 스스로 깊어져 가는 바다는 푸른 해질녘의 밤을 품는다. 달이 비추는 버려진 섬에도 꽃이 핀다. 나무는 낮의 빛에도 밤의 어둠에도 자란다. 그러나 윤준영의 도시_섬의 시간은 멈춰있는 듯하다. 그곳은 밤이 아니라 현실의 어둠이기 때문이다. 벽으로 둘러싸인 건물, 보이지 않는 창문, 콘크리트 등으로 묘사된 현대 건축물은 답답할 정도로 밀집해 있다. 화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무채색과 대상들의 정적인 속성은 고요하다 못해 숨이 막힐 정도다. 그림을 보고 있으면, 순간 불안한 감정이 몰려온다. 어두운 적막이 흐르는 화면에 홀로 선 집 한 채. 자신을 둘러싼 알 수 없는 불안과 두려움 앞에서 그녀는 자신에게 놓여 있는 어둠을 직면한다. 낯선 대상들과 공존하며 자신의 창조성을 세상에 풀어내기 시작한 윤준영. 오랜 시간 자신을 감싼 순전한 어둠에서 실존의 푸른 꽃이 핀다. 윤준영의 초기작은 고립된 도시_섬을 묘사했다. 언제나 같은 면을 향해 있는 달의 표면처럼, 그녀의 도시_섬은 관찰자적 시점이다. 각각의 건축물로 쌓아 올려 표현한 현대 도시는 대부분 공중에 있다. 하늘과 물이 맞닿아 있는 곳에 위치한 도시 건축물들은 서로를 잠식하는 콘크리트 구조를 통해 섬의 형태를 이루기도 한다. 건축물_도시, 건축물_섬의 형태는 수없이 밀집된 건물들 개수보다 상대적으로 가벼워 보인다. 따라서 도시_섬을 지탱하는 근간 역시 위태로워 보인다. 인위적인 도시의 대립적 구조항으로서 자연의 요소들이 등장하지만, 좀 더 깊숙이 들여다보면, 인공의 도시 건축물과 자연의 섬은 그 자체로 유사하다. 검은 나무, 잎 없는 나뭇가지, 무채색의 숲 등과 같은 자연적 요소 역시 자신의 기능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시_섬은 땅의 근간이 없는 건축물, 제멋대로 뚫렸지만 막힌 창문, 틈새나 내부를 전혀 들여다볼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해 불안하다. 지배적인 타인의 일상 세계인 도시_섬, 불안한 그곳과 거리를 두고 싶은 마음은 가벼운 구름이나 묶여 있는 풍선처럼 위태롭고, 결코 성취할 수 없는 바램일 뿐이다. 이렇듯 그녀는 인간관계에서 오는 다양한 상황들과 알 수 없는 원인으로 인한 불안한 마음의 상태를 적극적으로 묘사한다. 화폭은 그 자체로 불안으로 가득 찬 세계이다. 인공적인 공간(건축물)과 자연적인 공간(산, 숲, 물, 하늘, 섬)을 결합·배치했던 두 대립적 관계성은 《다섯 번째 계절》(2016), 《환상방황》(2018)의 개인전에서 점차 ‘공존’하는 방법으로 발전한다. 그 가운데도 가장 큰 변화는 화면 전체를 가득 메우는 무채색과 ‘나(자아)’의 공존, 그리고 건축물 형태이다. 밀집된 건축물 형태로 이루어졌던 도시_섬은 점차 미로 구조물로 변형된다. 그 길 가운데우리는 얼핏 보이는 내부와 틈새, 그곳에서 새어 나오는 푸른 빛, 그 가운데 있는 존재들을 만날 수 있다. 또한 윤준영은 지독할 정도로 스스로 고립을 선택한다. 그녀 스스로 고립을 선택해 얻고자 하는 것은 자유, 바로 그 가운데서 사유함으로써 나 자신과 관계를 맺는 ‘고독’이다. 그녀는 스스로 불안으로 가득 찬 세계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엄습해오는 불안의 대상과 마주하는 상징 매체들은 자신이(자기 존재를) 화면에 개입하는 소재였지만, 바깥을 바라보는 태도로써 존재했고, 외적 환경에 항상 둘러싸여 있었다. 그런데 <반짝이는 빛 속에 있기를 바랐는데 매일 까만 어둠을 헤맨다.>(2018)의 변화를 보라. 나지막한 지형에서 짙은 어둠에 방향 감각을 상실한 채 동일한 지점을 방황하는 상황을 의미하는 제목에도, 곧 뭔가 엄습할 듯한 새 떼들의 움직임에도, 근경에 몰려오는 어둠에도 어떠한 동요도 없이 굳건히 서 있는 존재가 있다. 단독자로서의 집 한 채. 홀로 있는 단독자는 아주 작은 푸른빛을 품는다. 그녀는 또한 달의 존재성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달이 지고 해가 뜨는 것이 아니라, 달은 태양 가운데도 어둠 속에도 존재한다. 달이 빛에 의해 변화되듯, 그녀는 변화의 과정에 있는 상징 매체들을 통해 단절된 경계를 넘나든다. 이를 위해 그녀는 무채색의 다양한 농도를 통해 어둠의 질감을 표현한다. 그녀는주체적으로 ‘들여다봄’을 통해 그‘곳’에 개입하여 ‘공존’함으로써 관계를 시작한다. 그래서 그녀에게 달, 나무 등은 변화의 여지를 주는 개체이면서 기대감이라는 복합적 요소를 지닌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비워지고 채워지며 형태를 달리하는 달은 불안과 고독, 무력감과 상실감을 포함하면서도, 어둠에서의 존재감, 빛의 존재, 변화의 단계로서 현재의 감정적 변화를 대변한다. 달이 저물고 나면 더욱 밝은 해가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어두운 밤이 찾아올 수 있지만, 그곳에도 자신을 비추는 달이 존재한다. 달은 빛이 있을 때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달’은 작가가 갖는 이상, 변화의 과정, 바램 등으로 바로 자신이기도 하다. 어떤 불안도 감당할 수 있는 상황으로 변모해가면서 그녀의 인간 이해 과정과 함께 작품 역시 발전한다. 이번 전시, 《익숙한 듯, 낯선》(2022)에서 윤준영은 불안의 문제, 갈등의 충돌 가운데도 함께 공존하는 방법을 찾아낸 듯하다. 그러한 과정에서 그녀가 굳건히 들여다보는 것은 ‘자아’이다. 그녀가 오랜 시간 작업에 몰두하는 과정을 통해 자아를 들여다보고자 하는 ‘태도’, 이를 통해 비슷한 듯 다른 타인과 세상을 이해하고자 하는 방법들이 녹는다. 우리는 그곳(작품)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자기 자신의 모습과 맞닥뜨리게 된다. 그녀의 작품은 어두운 색으로 인해 사회에 대한 부정적인 분위기가 진하게 배어 나오지만, 기대와 희망의 끈을 절대 놓지 않고 있다. 그녀가 사회와 인간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방법을 통해, 그녀 스스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태도를 선보이는 것이다. 그녀의 작품은 그 자체로 자신의 삶이기 때문이다. 어둠이 내리는 시간, 그곳에 달은 머문다. 달의 그림자 속으로 들어갈 때, 그림은 그 자체로 감정 덩어리이다. 어둡고 정적인 무채색의 그림은 빛이 있고, 변화(움직임)가 있고, 온기가 있다. 윤준영에게 그리는 행위는 ‘나’의 원형을 발견하고, ‘나’가 갖는 고독, 외로움, 슬픔, 고통의 원인을 힘겹게 짚어 나가는 도구이다. ‘나’는 그림을 그리는 행위만으로도 있는 그대로의 ‘나’와 마주하는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과정을 통해 겨냥하는 주체로서의 ‘나’의 발견이라는 경험적 과정에 우리도 참여하길 바란다. 우리는 윤준영의 작품 내막을 들여다보고, 상징 매체를 통해 그 기저에 존재한 미묘한 진실과 아이러니를 발견할 수 있다. 이 작업이 자아와 인간을 이해할 수 있는 어떤 단초로 작용하기를 기대해본다. - 양초롱 (미술사 박사) 윤준영 <Believer>, 2022, 자연석, 3D프린팅 미니어처 윤준영 <각자의 방식>, 2022, 한지에 먹, 콩태, 채색, 91x116.8cm, 신세계갤러리 사진 윤준영 <어딘가에>, 2022, 한지에 먹, 콩태, 채색, 110x100cm, 신세계갤러리 사진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