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태의 알레고리, ‘별을 통과하기’ 페이지 정보 작성자 박현화 작성일23-08-03 13:40 조회1,371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조정태 <별이 된 사람들-문명의 시작>, 2022, 캔버스에 아크릴, 244x600cm 조정태의 알레고리, ‘별을 통과하기’ 2023.08.01-08.20 / 강진아트홀 ‘나는 화가다.’ 그는 "나는 화가다"라고 말한다. 조정태는 모두들 알고 있는 이 사실을 굳이 강조함으로써 우리는 오히려 화가가 아닌 여분의 혹은 잉여의 그는 누구였다는 말인가라는 질문에 직면하게 된다. 화가 조정태의 ‘나는 화가’라는 자신에 대한 이 반복적 선언은 사람들이 그를 작가 이외에도 통상 민미협 회장, 전시 기획자, 조직가라고 지칭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좀 더 그의 말의 두께와 켜를 살펴보자. 켜의 두께와 무게가 아마도 그의 그림을 이해하는 중요한 요소일지도 모른다. 화가는 마땅히 그림으로 모든 걸 표현하는 사람이므로.. (중략) 조정태의 알레고리, 별 조정태가 별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2012년 제작된 <별이 된 사람들-1, 2, 3> 연작으로 보인다. 비둘기가 날고 있는 평화로운 산하가 아스라이 겹으로 펼쳐지고 있는 하늘 위로 무수한 별자리가 흩어져 있다. <별이 된 사람들>을 다시 대작으로 만날 수 있었던 것은 2020년 광주 시립미술관에서 개최된 5.18 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전에서이다. 이 전시의 주제가 ‘별이 된 사람들’이었는데 바로 조정태작가의 작품 제목에서 따온 것이다. 그는 이 전시를 위해 <별이 된 사람들>을 120호 캔버스를 아홉 면으로 전개시켜 1172cm의 거대한 길이로 제작하였다. 이후 제작된 <별이 된 사람들> 버전에서 조정태는 ‘오월의 역사에서 희생된 자들의 영혼’이라는 ‘별’에 함축되었던 비유적 의미를 점차 확장시켜 나간다. <적요-물 위의 길>과 <별이 된 사람들-귀천>에서 그는 하늘 위의 물길을 따라 배를 타고 사후의 세계를 여행한다고 믿었던 고대 이집트인처럼 바다와 별이 흩어져 있는 하늘 중간쯤에 배를 걸어 바닷길을 내고 있다. 조정태가 공중에 걸었던 물 위 하늘을 항해하는 배의 공간은 유한한 인간이 죽음이라는 타자와 소통하며 무한의 세계를 상상하는 통로처럼 보인다. 조정태는 <별이 된 사람들>에서 별은 역사의 진보를 위해 희생된 사람들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아직까지 살아남은 어떤 순수한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민중미술 작가인 조정태의 삶에서 짐작할 수 있는 일관된 역사주의의 이념이 아니라 오히려 그에 대한 반성이며, 별은 개별적인 실체를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삶의 조각들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이념은 동질성으로 이루어진 단일한 것이 아니라 무수히 흩어져 분열되어 있는 수많은 별들의 현상들로 이루어지는 것이며 그것은 밤하늘에 빛으로 존재하다가 새벽에 사라져버리는 그리하여 결코 우리가 그 형상을 파악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점들로 존재하는 수많은 별들로부터 서로의 관계를 이으며 별자리의 이야기와 신화를 만들어 낸다. 그러기에 벤야민은 이념과 현상을 쉽게 말하면 별자리와 별, 즉 세계관과 세계로 비유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별자리는 변증적으로 알레고리를 형성하여 서로를 소멸과 폐허로부터 구제하는 존재들, 바로 나치의 박해에서 고통스런 날을 보냈던 벤야민이 독일 낭만주의에서 발전한 계몽주의로부터 나치의 이념이 발아했던 것을 비판하면서 생존의 길을 세우기 위해 사유했던 ‘성좌의 개념’을 의미할 것이다. 조정태의 성좌는 자신이 오랫동안 역사를 관통하며 획득한 어떤 윤리적인 세계로 보여진다. 그의 그림이 단순히 자아를 찾고자했던 나르시시즘적 자기의 표현의 세계로 회귀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역사를 새롭게 재현하는 방식에 대한 사유를 중단하지 않았던 결과일 것이다. 아마도 그 기저에는 졸업 작품으로 제출되었던 <Homo Politicus>에서 읽을 수 있었던 안젤름 키퍼의 영향을 생각할 수 있다. 조정태는 학부시절 동료작가들 사이에서 당시 추상적인 모더니즘에 대한 반성으로 부각되기 시작한 신표현주의 그림은 논의의 대상이었으며, 자신은 특히 키퍼의 작품에 관심이 컸다고 말한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폐허에서 태어난 키퍼는 영점시대의 침묵을 깨고 과거의 불편한 역사를 사람들로 하여금 직접 대면하게 했던 작가이다. 키퍼의 성좌는 낭만주의에서 계몽주의 역사의 이념이 나치라는 괴물을 낳았던 독일 민족주의 역사의 광기를 파열시키고 다시 새로운 의미를 길어 올리는 알레고리 전략을 통해 자신의 상실된 자아를 재건하는 것을 의미하였다. 조정태의 <별이 된 사람들> 연작에 나타난 별자리 이야기 역시 민족주의라는 동질성의 한계를 넘어 역사에 대한 다층적인 의미와 개인적 실체가 함께 기거할 공간적 의미를 지닌 알레고리로서 재현되었다는 점에서 키퍼와의 유사점을 찾을 수 있다. 2022년에 제작된 <죽음의 천사>는 그가 키퍼로부터 역사의 알레고리를 재현했던 방식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고 있었음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키퍼 역시 <화가의 수호천사>와 <역사의 천사-양귀비와 기억>에서 홀로코스트의 기억, 전쟁, 계몽주의 이념 등에 희생되어 날지 못하는 멜랑콜리한 역사의 알레고리로서 천사를 다루고 있다. 조정태의 <죽음의 천사>에서 검게 변해버린 커다란 날개의 주인인 천사의 몸은 전쟁에서 폭탄을 맞은 듯 붉은 덩어리로 산화해버렸다. 그는 제목의 ‘천사’는 원래 ‘상인’이 변화되었다고 말한다. 그가 생각했던 원제의 ‘상인’의 의미는 이 작품이 그가 30년 동안 몸담고 있던 광주 민미협을 탈퇴를 선언한 해에 그려졌다는 사실로부터 유추해낼 수 있다. 그는 민미협의 성향이 공공미술 프로젝트나 보조금 사업을 위한 도구으로 변질되어 가는 것을 보고 계속해서 버티기 힘들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조정태의 우울한 천사는 이제 인간의 희망을 구제하기 위해 다른 별자리 이야기를 창조해야 한다. 조정태가 2012년부터 10여 년에 걸쳐 지속적으로 매달렸던 <별이 된 사람들> 연작은 화가로서 개인적인 실체를 탐색하는 과정과 함께 민중미술 작가로서 자신의 몸속에 체화된 역사적 세계관이 엮어낸 별자리(성좌)의 이야기이다. 경계에 서서 그 두 세계를 아우르며 중의적인 알레고리를 나타내고 있는 그의 별자리 이야기는 역사를 재현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보인다. 하늘과 바다 위로 삶과 죽음의 길을 내며 무한의 세계로 항해하고 있는 조정태의 성좌가 아름다운 가상을 의미하는 상징성을 벗어나 동일성의 체계에 결코 사로잡히지 않고 타자와 소통할 수 있는 알레고리의 세계이기를 바란다. - 박현화 (미술사가, 무안군오승우미술관 관장) 조정태 <기념탑>, 2022, 캔버스에 아크릴, 244x244cm 조정태 <바람은 차고 아직 파도는 거칠다>, 2023, 캔버스에 아크릴, 162.2x260.6cm 조정태 <별이 된 사람들-귀천>, 2022, 캔버스에 아크릴. 244.6x488cm 조정태 초대전 '별을 통과하기' 일부 조정태 초대전 '별을 통과하기' 일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