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선호의 작품세계 ‘잊히는 시간과 삶에 대해’ 페이지 정보 작성자 고영재 작성일21-02-23 14:04 조회2,119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강선호 <계림동 재개발>, 2019, 캔버스에 아크릴릭, 91x116cm 강선호의 작품세계 ‘잊히는 시간과 삶에 대해’ 극장 옆 골목길은 길고 좁았다. 땅따먹기를 하거나 술래잡기를 하기에는 아주 근사한 장소여서 그 길은 항상 아이들로 북적였다. 언니들은 극장 뒤로 뚫린 개구멍을 드나들며 몰래 영화를 훔쳐보기도 했다. 계림극장 옆 좁은 골목길 끝에 자리했던 나의 외가, 은밀한 다락방과 같았던 그곳은 여전히 내 기억 속에 머물러 있다. 문 만드는 목수였던 외할아버지의 작업장은 도깨비 방망이의 요술처럼 신비로웠다. 작업대에 나란히 붙어있는 할아버지의 눈곱, 가난한 살림과는 어딘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이모의 피아노, 그리고 텔레비전 위의 못난이 인형들까지 자잘한 일상의 단편들이 여태 문득 문득 떠오른다. 외갓집 터엔 현재 주상복합 아파트가 들어섰다. 엄마의 시간도 함께 서린 곳이기에, 그 앞을 지나갈 때면 황망하고 서운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내가 강선호 작가의 <계림풍경>을 보며 느꼈던 기묘한 노스텔지어 또한 어쩌면 스스로도 채 깨닫지 못한 그리움의 감정이었는지 모르겠다. 익숙하지만 소멸되어 가는 장소, 그리고 그 공간 안에 깃든 아무개들의 삶을 강선호는 묵묵히 바라본다. 회화 작업을 하는 강선호는 주로 광주의 재개발 공사현장을 그린다. 중흥동, 계림동, 월산동과 같은 구도심의 재개발 모습을 건조한 시선에서 그려내는 그는 ‘현재’라는 범주 안의 풍경을 기록한다. 기록의 시점은 현재이지만 화폭에 등장하는 장소나 공간은 지나간 시간과 지금의 시간을 모두 아우른다. 이러한 시간성의 내포로 인해 작가의 풍경은 얼핏 찰나와 같은 인상을 심어준다. 대부분이 철거 중이거나 철거된 건물이고, 이는 마치 지난한 외과 수술의 현장처럼 생명이 사그라드는 느낌이다. 부수고 다시 지어질 그 현장에는 새로운 기운보다 적적함만이 배어있다. 많은 이들의 삶의 흔적이기도 한 주거지역의 재개발 풍경은 단순히 건물을 부수고 다시 짓는 것이 아닌, 살아온 시간들의 갈무리이자 지나간 것들에 대한 그리움을 담보한다. 소멸과 생성에 대한 관찰은 강선호의 초기 작업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태도이다. 작가는 어떠한 대상이 분해되고 해체되는 과정을 통해 생명력과 시간성 따위의 비가시적인 주제를 담아내고자 했다. 먹다 놔둔 사과에 슨 곰팡이로 인해 온전한 대상이 부패되어 가는 과정 한 가운데에서, 그는 ‘끝의 시작’과 같은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지점에서 시작은 새로운 희망이나 치유 등의 피상적 감정이 아닌, 끝이 있음으로 인해 파생되는 시작이라는 것에 그 스스로가 새삼 천착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꽤 오랜 시간 공들였을 이 시기의 작품에서 단연 눈에 들어오는 것은 펜화이다. 자유로운 선맛과 붓 터치 등의 본연의 회화성에 익숙했던 작가에게 잉크 펜화는 가장 잘 맞아 떨어지는 형식이었다. 머리카락 굵기와 유사한 가느다란 펜 자국은 직선과 곡선을 어지럽게 넘나들며 보는 이에게 모종의 생명력을 선사한다. 또한, 표현 대상이 화면 안에 크게 부각되는 구도와 함께 흑백으로만 이루어진 화폭은 강렬하면서도 즉물적이다. 부패되고 있는 사과의 모습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작품 <non-linear>에서 이러한 측면은 더욱 부각된다. 기괴하게 뒤엉켜 있는 검은 선은 들숨과 날숨으로 호흡하듯 응집과 산화의 에너지를 드러낸다. 죽어가는 나무 밑동과 같은 서정이 느껴지는 본 작품에서 작가의 작업적 의도를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다. “작업물의 불규칙한 곡선들은 ‘그로테스크’라는 단어로 쉽게 요약할 수도 있으나, 개인적인 바람은 기괴함만이 아닌 생명력과 아름다움 역시 시각적으로 표현해내는 게 목표입니다” 근작의 재개발 공사 풍경 이전까지 강선호 작업의 큰 틀은 분명 ‘그리기’이지만, 표현 대상과 주제의식의 혼란 속에서 표류한 느낌이 짙다. 그 때 그 때 본인 삶의 근거리에서 바라본 일상이 주를 이루지만, 그리는 행위를 통해 궁극적으로 드러내고 싶은 쟁점, 혹은 본인 작업의 큰 줄기는 무엇인지에 대해 꽤 지지부진한 고민의 시간을 보내온 듯하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기억을 그린 작품이나 작업실과 가까이에 있는 계림동과 대인동의 풍경, 또는 <세월 도보> 등의 작품에서 엿보이는 것은 “나는 왜 그림을 그리는 것인가”에 대한 지극히 당연한 고찰이다. 3년 전부터 작업의 주요 내용과 형식으로 자리 잡아온 재개발 풍경은 아마도 작가의 삶 안에서 가장 자연스럽게 담아내고 표현할 수 있는 소재였을 터이다. 더불어, 초기 작업부터 관심 가져온 생성과 소멸의 간극, 있던 것이 사라지고 새로운 것이 들어서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이질적인 감정을 작가는 은연중에 붙잡아 왔다. 재개발 풍경의 배경은 주로 하늘과 맞닿아 있는 허공이다. 어지럽게 소멸되어가는 대상과 대비되는 이 배경은 장소가 주는 기운에 집중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이다. 다소 채도가 높은 색으로 칠해질 때도 있고 무채색 위주의 색감으로 대상과 한 덩어리로 읽힐 때도 있다. 최대한 붓 터치를 배제한 배경은 공허와 쓸쓸함의 공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가 하면, 주요 표현 대상의 입체감과 대조되는 평면성으로 인해 극적인 느낌은 더욱 배가 된다. 유화 물감에 비해 윤기가 없고 건조한 물성의 아크릴 물감은 강선호 회화의 주제성과 부합된다. 작가는 작품 안에서 가치의 옳고 그름에 대해 직접적인 발언을 하지 않는다. 인간의 무수한 욕망들이 점철되어 있는 도시 난개발의 현장에는 새것이 항상 최상의 가치이기에, 그는 그저 사라지는 시간과 소멸되어 가는 공간을 화폭으로 옮겨왔을 뿐이다. “재개발 공사현장은 마치 생물의 생로병사를 보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게 한다. (중략) 사람이 만든 건축물이 마치 사람처럼 소멸되고 새로 생성되는 과정 속에서, 내가 느끼는 감정은 허무함과 안타까움, 그리고 조소 사이의 어디쯤인 듯하다” 어느덧 마흔을 앞둔 강선호 작가를 나는 오랫동안 봐 왔다. 예민한 감수성과 성실함이 무엇보다 큰 장점이기에 그의 화폭이 더욱 무르익을 가능성은 농후하다. 보이지 않는 감정을 누구나 교감할 수 있는 총체적인 감성으로 아울러 표현해내는 힘은 축적된 경험에서 비롯된다. 묘사와 표현이 절제되어 있는 화면에서 주제성을 드러내는 일은 아주 힘든 과제이지만, 사람과 삶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그의 작품세계는 더욱 깊어지리라 본다. 시린 겨울 지나고 어느새 또 분주한 절기가 돌아왔다. 나의 삶터를 옮기고 때로는 나의 공간을 정돈할법한 이 시기에 지나가고 소멸되어 가는 것에서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 고영재 (독립큐레이터), [전라도닷컴] ‘고영재의 작가탐험’ 연재. 2021년 3월호 강선호 <decompse>, 2014, 종이에 펜, 94x65 cm 강선호 <계림풍경>, 2015, 캔버스에 아크릴릭, 65.3x30cm 강선호 <azofra 가는 길>, 2016, 캔버스에 아크릴릭, 24x33cm 강선호 <중흥동 재개발, yellow>, 2018, 캔버스에 아크릴릭, 72x60cm 강선호 <월산동 풍경>, 2019, 종이에 먹, 34x112cm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