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필용 회화전 ‘거친 땅, 곧은 물줄기’ 페이지 정보 작성자 문희영 작성일21-04-10 14:53 조회1,941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송필용 회화전 ‘거친 땅, 곧은 물줄기’ 2021.04.08.-05.31 / 문화공원 김냇과 얼기설기 긁어내고 박박 그어진 자국들이 가득하다. 화면 위를 수없이 휘저은 손길이 지나온 한 움큼의 시간은 오롯하게 흔적을 새겼다. 거칠고 두텁게 내려앉은 색의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기운은 시원하게 쏟아져 내린다. 긴 시간 켜켜이 쌓이고 쌓인 거친 땅의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물줄기. 그 곧은 물줄기에 지나온 역사의 궤와 나아갈 시대의 힘을 담아냈다. 송필용은 굴곡진 역사의 시간을 품어 온 산하를 그려왔다. 산을 오르고 땅 위를 걷고 또 걸었던 시간이 박힌 작품들이다. 산이고 바다고 마다하지 않고 땅을 밟고 숨을 들이킨 시간이다. 인간의 생은 유한하여 사라지지만, 무한한 자연은 올곧이 모든 것을 품었기에 온몸으로 시대의 공명을 느껴보기 위한 숱한 걸음들을 아로새겼다. 시대의 바름도 그름도 모두 품고 있는 풍경을 바라보며 묵묵히 시간을 삭혀갔다. 그렇기에 송필용에게 풍경은 단순한 자연이 아니었다. 유구한 역사의 흔적을 올곧이 품은 땅이었고, 산이었으며, 물줄기였다. 긴 화업의 시간 동안 붓을 놓지 않았던 끈질긴 마음은 침잠하듯 작가의 내면으로 삭혀져 갔다. 역사의 현장을 디딤돌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 세찬 기운을 장전해갔던 거친 숨을 고르고, 다시 자신으로 돌아와 모든 것을 되새기듯 절제된 정공법으로 캔버스와 마주했다. 거친 땅을 가로지르는 곧은 물줄기는 송필용이 보여주려는 세계가 한층 내면화되고 관조적으로 나아갈 것을 예고한다. 그림의 시작이 되었던 시간, 그림을 그려가는 지금 40여 년 전 오월은 송필용에게 그림이 시작되었던 시간이다. 청춘의 찬란함보다는 부조리에 맞서 들끓고 날선 마음들이 앞설 수밖에 없던 시대였다. 매캐한 연기가 캠퍼스를 가득 메웠고, 정의를 외치던 마음은 그림으로 토해낼 수밖에 없었다. 코끝을 찌르고 눈을 아리게 했던 허연 연기는 그 시간의 공명이 되어 한 인간의 몸에 깊숙이 스며들었다. 몸이 기억하는 심연의 시간은 사회를 향한, 세상을 향한 마음을 곧추세웠다. 대학시절, 5월의 현장 안에서의 자의식은 그림의 시작점이자 구심점으로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그림의 시작이 된 강렬한 각인이다. 송필용의 작품 중 <땅의 역사>(1987-1989)는 운주사, 백아산, 월출산 등 전라도 땅을 배경으로 그려간 장대한 역사의 대서사시로 조선의 민초에서부터 동학혁명, 일제수난기, 6.25전쟁, 5.18에 이르기까지 역사 속 직면했던 암울한 과거를 딛고 미래의 희망을 그려가는 역작이다. 이제는 함께 바름을 외치던 민중의 목소리를 인정받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고, 나아가 역사와 시대의 한 가운데에서 정의를 위해 주저하지 않았던 그 마음들을 다시금 위로할 수 있게 되었다. 허나 여전히 풀리지 않는 과거의 외침은 줄곧 송필용 작가에게 그림을 그려야만 하는 의미를 꾸준히 부여한다. 몸과 정신 모두에 각인된 시선은 우리 역사의 흐름을 끈질기게 고찰하게 했고, 거친 세파에도 강인하게 버텨가는 민중의 모습은 폭포로, 바윗덩이로, 강줄기로, 바다로 그려져 왔다. 1990년 무렵 담양에 작업실 터를 마련하고 전라도 땅에서부터, 2000년 즈음 금강산에 오르기를 수차례, 그간 수많은 곳에 발을 내디뎠다. 구석구석 온몸으로 체감하며 역사를 품은 우리 산하를 더 가깝게 가슴에 채워 넣었다. 몸과 마음에 꾹꾹 눌러 담은 흔적들은 두터운 퇴적층을 만들었다. 역사라는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았던 마음, 과연 역사의 어떤 부분이고자 했으며 풀리지 않는 과제들은 무엇이었을까. 민초들의 정직하고 올곧은 마음들을 생각하며 작품과의 내밀한 대화를 계속 축적해왔다. 어쩌면 그의 그림은 스스로의 다짐일런지도 모른다. 끝없이 새겨나가는 곧은 소리, ‘조화선’으로 찾은 정신 이번 전시의 작품들은 최근 5년여 시간 동안 매진해왔던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심연의 폭포>, <땅의 역사>, <역사의 흐름>,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이다>로 명명된 작품들을 관통하는 큰 줄기는 바로 ‘물’이다. 송필용에게 물줄기는 역사의 샘이자 거대한 에너지이다. 5.18 분수의 물은 민주주의를 향해 분출하는 열망이었으며, 수직으로 내리쏟아지는 폭포는 고매하고 곧은 민중의 얼이었다. 거친 땅을 가로지르는 물줄기는 유연하고도 강직한 민중의 힘이다. 얽히고설킨 역사 속 혼돈의 세상을 정화시키고 치유의 힘과 에너지를 응축하듯 물줄기를 새겨나갔다. 이처럼 그렸다기보다 새겨나갔다는 표현이 더 적확하다. 더욱 두터워지고 거칠어진 근작들이 이를 입증한다. 칠하고 긋기를 수백 번 반복하는 것, 쌓고 덜어내기를 수업이 반복하는 것이다. 서양화 안료로 그려가지만 그가 바라본 것은 우리 역사요 우리 땅이었기에 표현기법에서 옛 정신의 깃듦을 내내 고민하며 그 해답을 ‘분청사기 조화기법’에서 구해갔다. ‘회화’라는 예술의 근원적 표현과 더불어 정신을 대변할 수 있는 또 다른 실마리를 꾸준히 탐구한 결과였다. ‘조화기법’은 정신과 표현의 합일된 지점을 향하게 했다. 차곡차곡 그림 안에 시간의 층위를 올려가며 정신을 새겨가는 일, 붓끝과 칼끝은 함께 화면을 구축해갔다. ‘회화’라는 표현과 정신이 함께 깃듦을 가능케 한 ‘조화기법’이다. 그만의 독자적 조형성도, 민중미학에 대한 고민도 해갈해나갈 또 하나의 장치를 장착한 것이다. 긴 세월을 버텨 온 거친 땅이고, 민중이 감내해 온 역사의 소용돌이이다. 매끄러운 표면 위 문양을 새기는 ‘조화선’처럼 송필용은 자신에게 각인된 곧은 소리를 새기고 또 새겼다. 거친 질감만이 남았지만 송필용이 그려온 땅과 물의 기(氣)는 더욱 응축되었고, 더 깊은 심연으로 들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시지각으로 확인되는 풍광은 희미해졌지만, 내면의 풍광은 더욱 명확해진 것이다. 더 깊은 세계, 더 큰 시선으로 긴 시간 역사의 자취를 훑고 또 훑어나가며 표류하는 잔상들은 또 새로이 생성되며 그림을 그려가게 할 것이다. 미술은 시대를 증명하는 가장 직접적이고도 정직한 도구이다. 그림이란 참으로 정직하다. 작가의 시선, 작가의 마음이 향하는 곳을 포착하고 단박에 드러낸다. 응어리진 마음은 다시 작가의 마음으로 향했다. 거친 땅과 곧은 물줄기는 해갈되지 않은 마음들을 더 쏟아내게 할 것이다. 시대의 가르침을 껴안으며 그 심오한 울림을 더 깊이 매만질 수 있는 세계가 끝없이 펼쳐지기를 기대한다. - 문희영 (예술공간 집 관장) 송필용 <역사의 샘>, 2020, 캔버스에 유화, 41x53cm 송필용 <땅의 역사>, 2020, 캔버스에 유화, 227.3x181.8cm 송필용 <역사의흐름>, 2019, 캔버스에 유화, 162x112cm, 194x130.3cm 송필용 <곧은 소리는 소리이다>, 2019, 캔버스에 유화, 91x65.2cm, <심연의 폭포>, 2019, 캔버스에 유화, 91x65.2cm 송필용 <곧은 소리는 소리이다>, 2020, 캔버스에 유화, 91x65.2cm, <곧은소리-구룡폭포>, 1999~2017, 캔버스에 유화, 194x97cm 송필용 <땅에서 피다>, 2020, 캔버스에 유화, 53x72.7cm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