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응시하다’ ; 장용림 아홉 번째 개인전 페이지 정보 작성자 고영재 작성일21-05-03 12:02 조회2,164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장용림, <달개비-친애하는>, 2012, 장지에 석채, 분채, 45x60Cm ‘숨, 응시하다’; 장용림 아홉 번째 개인전 2021. 05. 04 - 05. 30 / 금봉미술관 마음과 마음이 닿는 그림 - 장용림의 작품세계 “살고 싶다.” 3년 전 나는 불현듯 산 근처로 삶터를 옮겼다. 당시의 나는 자못 절박했다. 세상일의 가쁜 호흡에 몸과 마음이 지쳐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것은 마음 속 저 아래에서부터 올라오는 빈곤함이었다. 돌이켜보면 보다 긴 호흡을 내쉬기 위해 자구책을 찾았던 듯하다. 그렇게 본능에 의한 이끌림은 조금이나마 내게 위로의 시간을 선사했다. 눈이 오면 눈이 오는 대로, 꽃이 피면 피는 대로,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자연의 호흡 속에서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은 차츰 늘어났다. 회고하건데, 장용림의 그림을 보면서 느꼈던 감정 또한 이와 유사했다. 화폭을 마주하다 보니 이유 없이 그저 편안하고 좋은, 감상자의 이 맹랑한 정서 안에는 머리가 아닌 가슴이 먼저 자리하고 있었다. 고이 품어낸 생의 빛깔 채색화를 그리는 한국화가 장용림은 오랜 시간 꽃을 그려왔다. 작가가 다루는 꽃은 대상 그대로 ‘보기에 좋은’ 화재이기에 제대로 표현하기가 참 까다롭다. 형상성이 분명한 소재에 의미를 덧씌우고, 나아가 숨은 뜻을 끌어내는 일은 녹록지가 않다. 어찌 보면 생각으로만 그려낼 수 없는 게 그림이기에 장용림은 철저히 그의 삶에서 꽃이라는 소재를 길어 올렸는지 모르겠다. 작가는 작업 초기에 꽃과 함께 주로 조각보와 저고리, 보자기 등의 전통적인 대상에 천착했다. 이는 전통미에 대한 취향의 반영이라기보다는, 스스로의 경험에서 건져 올린 생의 파편들을 그림을 통해, 더불어 그리기라는 행위를 통해 되새김한 결과에 다름 아니다.매화와 달개비, 명자꽃, 목화솜꽃 등과 함께 자리한 일상의 물상들은 얼핏 애수와 같은 절절한 서정을 불러일으킨다. 화폭 전반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스러운 기운에 더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전달되는 모종의 서사는 작가의 개인적인 이야기에서 비롯된다. 부연하자면, 장용림이 지닌 예민한 감수성과 섬세한 감성에서 기인했다고 볼 수 있는데, 그의 내면에 깊숙이 각인된 일상의 기억들이 살아온 삶의 명징한 상징으로서 화면 안에 구현된 것이다. “홀연히 여행을 다녀오신 아버지의 짐 속에서 노란 유자 몇 개와 반쯤 핀 동백 한 송이가 서너 개의 잎을 달고 나왔었지요. 제가 본 첫 동백꽃이었습니다. 겨울의 시린 바다 빛을 닮은 진초록의 동백 잎과 붉은 공단 천처럼 부드럽게 감기는 동백꽃잎, 그리고 눈부신 햇살 같았던 노란 유자. 그 선명하고 아름다웠던 기억이 어쩌면 지금까지 꽃을 그리게 하는 첫 시작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림 속의 조각보와 보자기는 모두 어머니의 손길이 담긴 것들이다. 자연의 재료로 자연의 빛을 물들인 색색의 조각보와 보자기는 우리네 어머니들의 삶을 비유한다. 새 생명을 품고 낳아 기르는 그 지난한 과정, 그리고 부침 있는 삶을 감내한 이에 대한 헌사로써의 꽃은 이내 엄마의 조각보에 맞닿아 있다. 그렇게 맞닿은 풍경 너머에는 옅은 여백이 깔려있다. 장지 위에 석채와 분채 기법으로 겹겹이 올린 색면은 꽤 오랫동안의 공력을 가늠케 하는데, 작가는 물감과 물의 농도를 의도적으로 때로는 의도치 않게 조절하여 넓은 여백에 힘을 싣는다. 배경색의 밑바탕이 되는 흰색과 은회색 호분 위로 주요색을 무수히 중첩시키고, 미세한 붓질과 물맛의 변화를 통해 여백에 강약을 준다. 눈물자국처럼 얼룩져 보이는 배경은 피고 지는 꽃의 성정처럼 들숨과 날숨으로 호흡하는 듯하다. 이러한 배경과 대상과의 일치감, 더 나아가 내용과 형식의 딱 들어맞는 조화는 장용림 채색화의 가장 큰 힘이다. 숨, 응시하다. 4년 여 전부터 작업 테마로 쓰여온 ‘숨’은 가장 그다운 표현일지 모르겠다. “사람이 죽는다 해서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그 사람이 살아생전에 내뱉었던 숨들이 다 살아있어요.” 작가는 어느 노스님과의 대화를 통해 삶의 관계맺음에 대해 다시금 숙고하게 되었다 한다. “모든 숨들이 이어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새 아홉 번째 개인전을 앞둔 장용림은 <숨, 응시하다>라는 타이틀로 관람객을 맞이한다. 달항아리와 진달래, 매화, 목화솜꽃, 그리고 소나무 가지가 어우러진 근작은 배경과 대상의 경계가 더욱 풀어헤쳐져 있다. 하나의 화면으로 인식되는 작품에서 ‘숨’이라는 주제는 보다 가시적인 단어가 된다. 메시지 전달의 주된 요소가 되는 백자 달항아리는 무채색의 호분 밑칠과 밀고 땅기는 식의 호흡을 한다. 사람의 살빛을 닮은 따스한 흙으로부터 그리고 도공의 지극한 마음으로부터, 끝내는 긴 시간의 뜨거운 불로부터 탄생한 달항아리는 그 넉넉한 원형의 성질 그대로 모든 생명을 품어내고 싹 틔운다. 달항아리의 자잘한 잔금과 기면을 뚫고 나오는 매화 가지는 상승하는 기운으로 여전히 살아있는 매화나무가 된다. 특이할 만한 부분은 이번 전시에서 처음 선보이는 소나무 그림이다. 전통 한국화에서 보통은 관념적 사유의 대상이 되는 소나무가 그에게는 경험의 산물이 된다. 오랜만에 겨울다웠던 지난 12월, 가지치기를 당하는 소나무를 본 작가는 소나무의 한결같은 푸르름에 집중하게 되었다. “잘린 소나무 가지를 발치에 드리우고, 그저 제 자리에 뿌리를 더 깊이 내리며 흙을 움켜쥐고 서 있는 것이다. 사시사철 오고 가는 길목에 있던 소나무가 한겨울 세한에 숨으로 느껴지는 일이 낯설었다.” 달리 보면 소나무의 처연한 생명력일 수도 있겠다. 작가의 표현대로 “꽃 피는 일만을 바라봤던 시선이 잎으로 닿는 순간”을 경험한 그는 푸른 잎에서 숨의 형상을 목도하며 새로운 화폭을 구축하게 된다. 시리디 시린 만월의 충만함처럼 유백색의 하얀 살결을 뽐내는 달항아리와 짙은 초록의 소나무 가지는 궁극의 합을 보여준다. 잘려나갔음에도 여전히 숨 쉬고 있는 소나무 가지는 원형의 자연 안에서 그렇게 짙은 솔 향을 뿜어내고 있다. 현대 한국화, 특히 채색화 장르에서 속된 기운을 걷어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매사가 그러하겠지만 자신의 생에 작업의 호흡을 함께 두어, 걸러낼 것은 걸러내고 가지를 쳐 내야 하는 힘든 ‘과업’이 이내 창작일 터이다. 장용림의 그림이 눈에 들어온 연유가 오롯이 취향의 문제는 아니었던 것을 떠올려보면, 그의 작업이 자연스레 삶이었기에 가능한 일종의 ‘사람과 사람’의 조우가 아니었다 싶다. 아직도 그릴 게 너무 많고 아직도 작업하는 게 좋다는 장용림은 작품을 대하는 모든 이들과 그림을 통해 호흡하고 싶다는 말을 한다. 꽃으로부터 채우고 푸른 잎으로부터 비워내는 유의미한 순간에 서 있는 그의 화업이 문득 불교에서 말하는 ‘회향(回向)’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의 작업이 아닌 함께 온전히 숨 쉴 수 있는 작업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본다. - 고영재 (독립큐레이터), 전라도닷컴 ‘고영재의 작가탐험’- 2021년 5월호 장용림, <매화 피다>, 2012, 장지에 석채, 분채, 90x130Cm 장용림, <개망초 - 바람의 안부를 물으며>, 2007, 장지에 석채, 분채, 112X145Cm 장용림, <명자꽃이 피였다는 소식>, 2014, 장지에 석채, 분채, 45 X60Cm 장용림, <숨, 꽃이 되다>, 2019, 장지에 석채, 분채, 97X130Cm 장용림, <숨, 응시하다>, 2021, 장지에 석채, 분채, 53x73Cm 장용림, <숨, 응시하다>, 2021, 장지에 석채, 분채, 45x53Cm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