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너머 구도의 길 ; 송번수 초대전 ‘나침판’ 페이지 정보 작성자 조인호 작성일21-07-01 11:50 조회376,083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송번수, <절망과 가능성>, 2001, 모사, 평직, 197x205cm 고통 너머 구도의 길 ; 송번수 초대전 ‘나침판’ 2021.06.30-08.20 / 담양 대담아트센터 ‘절망과 가능성’… 담양 대담아트센터가 마련한 원로 조형예술가 송번수 초대전의 중심작품 제목이자 작가의 예술세계를 상징적으로 함축하는 화두이기도 하다. 전시공간 안쪽 정면에 제단화처럼 걸린 이 작품은 보기에도 섬뜩한 뾰족 가시들이 짙푸른 화폭을 뚫고 앞쪽으로 돋아나와 있는 형상이다. 간절한 서원의 기도처처럼 흰모래 무더기 위 허공에 내려걸린 이 작품은 가까이 다가설수록 화폭의 묘사그림이 아닌 한 올 한 올 섬세하게 직조해낸 타피스트리(2001년 제작)임을 알게 된다. 거대한 너울처럼 일어나는 고통의 극한이 씨실 날실로 엮어져 그 고통 너머의 희망의 빛을 향해 용솟음쳐 오르는 형세다. ‘가시’는 돋아나는가 파고드는가에 따라 내 안에서 단단히 굳어 오른 고통의 딱지이거나 곧추세운 자기방어 장치, 아니면 나를 파고드는 비수 같은 것일 수도 있다. 누군들 어디엔들 고통이 없을까마는 스스로 강인해지기 위해 가시를 돋우는 각성과 다짐은 지난한 세상사에서 그만큼 염원하는 바가 간절하기 때문일 거다. 단단히 굳어진 토막으로 오랜 기간 여러 작품들에 등장하던 송교수의 섬뜩한 가시들은 돌연 <네 자신을 알라>며 다비처럼 불태워지고 마는데(2007년 타피스트리), 이번에 전시된 <절망과 가능성>은 몸체를 숨긴 채 날카롭게 뚫고나오는 가시 연작의 이른 예이다. 지난 50여 년 간 송교수의 작품들 가운데는 부드럽고 두터운 천의 질감과는 대조적으로 극도의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예리한 가시 모양의 직조작업이 많아 그를 섬유예술가라 일컫는다. 하지만 그는 공예학도라는 수업기 배경과 상관없이 60년대 한국 현대미술의 번성기와 70년대 정치사회적 고뇌의 시기를 관통하며 판화, 퍼포먼스, 섬유예술, 설치 등 표현매체와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줄곧 지금까지도 메시지가 선명한 형상과 이미지를 결합시킨 다양한 조형예술의 세계를 탐구해 왔다. 그런 단단하고도 폭넓은 예술세계는 처한 상황과 정신의 투영에 따라 사회비판과 풍자, 인간 삶과 시대현실의 대변, 내면의 응축과 표출, 세상 이치와 우주계의 사유, 명상과 기도를 담은 쉼 없는 자기갱신의 작업을 거듭하며 뚜렷한 독자성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간촐하지만 귀하게 마련된 이번 전시에도 그런 시대별, 유형별 작품들이 정제되어 소개되고 있다. 야생의 생존정글을 떠올리게 하는 흑백 에칭판화 <자연>(1976), 선명한 대비색과 돋음 반점들로 표현된 <붉은 빗방울>(1997), 찢겨진 상처투성이의 <장미>(2008), 대전시립미술관장 공직을 맡게 되면서 열쇄형상에 다짐을 새겨 넣은 <진홍색 Ⅰ~Ⅲ>(2009) 등의 세리그라피, 잘려진 가시장미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수혈>(2012) 흑백목판화 등이다. 여기에 더하여 올해 제작된 최신작 <성좌도 Ⅰ,Ⅱ>(2021) 두 점도 함께 소개되고 있다. 한 주제를 연작으로 묶어내는 송교수의 통상적인 작업처럼 같은 구성으로 서로 짝을 이루는데, 무궁한 천상공간인 듯 푸른색으로 덮여진 반원형 거친 직물바탕에 하얀 별무리들처럼 뾰족한 가시들이 돋아나 있다. 고통과 고뇌와 세상사를 삭히고 이내 내면 깊숙이 침잠하여 신심의 의지처이자 소명의 길을 이끌어 준 절대자의 무한평화 세계를 희구하는 기도명상 같은 작품이다. 시대의 기록이자 발언이면서 구도 정진의 도구로서 ‘정신적 사고의 산물’인 송번수 교수의 예술적 호기심과 모색작업은 아직 무한히 열려 있고 여전히 지금도 그 묵상과 탐구를 멈추지 않는다. 고난의 시대사를 헤쳐 가며 공동체의 바른 길을 열어 온 남도의 살아 숨쉬는 의기와 예술적 감성들에 송교수의 예술철학을 함축한 초대작품들이 깊은 교감으로 공유되리라고 본다. - 조인호 (미술사가, 광주미술문화연구소 대표) 송번수 <가능성(부분)>, 2006, 오브제 드로잉, 47x35cm 송번수, <장미>, 2008, 세리그라피, 56x74cm 송번수, <수혈>, 2012, 목판화, 100x70cm 송번수, <성좌도>, .2021, 오브제 드로잉, 53x91cm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