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가기 위한 ‘쉼’ ; 김자이 작품 속 휴식의 언어 페이지 정보 작성자 고영재 작성일22-01-23 12:50 조회2,246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김자이 <휴식의 기술 3>, 2020, 가변설치, 혼합매체 멀리 가기 위한 ‘쉼’ ; 김자이 작품 속 휴식의 언어 일주일이라는 규정된 시간은 대부분이 긴 시간의 일과 짧은 휴식으로 점철된다. 실제로도 짧은 시간이지만 그중에서 유독 빠르게 지나가는 휴일은 대략 허망하게 지나가버린다. 여전히 여가활동의 일 순위를 차지하는 텔레비전 시청이 때로는 원시생활의 모닥불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처럼, 인위적인 사고와 행위가 요구되지 않는 일련의 행동들이 일상적 휴식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곤 한다.스스로의 삶에 지나치게 과민한 탓도 있지만, 우리는 종종 쉼을 쉼답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때로는 ‘알차고 가치 있는 휴식’을 보내지 못해서 죄책감에 휩싸이기도 하고, 더 나아가 내가 왜 쉬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마저도 잊어버린다. 작품 안에서 휴식의 기술과 방법을 이야기하는 김자이 작가의 문제제기는 우리가 놓치고 있는 이러한 쉼의 가치 찾기에서 비롯된다. 결국에는 휴식의 본얼굴을 마주하는 과정 안에서 나를 찾아가는 긴긴 여정이다. 무의식 ; 내 안의 목소리를 듣는 자 대학에서 판화미디어학과를 수학한 김자이의 작업 성향은 처음 선택한 장르의 속성이 말해주듯이 다소 계획적이며 주도면밀하다. 아마도 과정형보다는 완성형의 감성에 가까웠겠지만, 전체적인 작업의 단초가 된 초기 작업은 외려 극명하게 규정할 수 없는 무의식에 관한 것이었다. 살아온 시간의 집적과 유사한 이 시기의 작업에서 그는 내 몸의 소리나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시간을 갖기 위해서, 의미 그대로 ‘나를 되돌아보는 작업’을 진행한다. 개인적인 일상의 수집품들을 정리해서 아카이브 형태로 보여주거나, 본인이 하루 종일 하는 말들을 녹음해서 통계를 내보기도 하고, 무의식이 표출되는 꿈의 관찰을 통해 꿈의 느낌을 기록하거나 잔상들을 스케치한다. 내 일상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훑어보는 의도이지만 작가의 표현대로 이는 나의 무의식을 알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영국 유학 시기에서 파생된 <무의식 - 언어의 구조화> 시리즈는 무의식과 혹은 그러한 행동의 관찰을 통해 내가 사용하는 언어의 구조를 되짚어가는 과정형의 작업이었다. 수집과 기록, 나열과 통계, 사진과 드로잉 등의 이미지화 작업들은 아카이빙 형태로 전시되거나 영상 작품으로 재구성되었다. 다분히 사적인 무의식의 언어에 구체성을 부여한 이와 같은 초기 작업은 그가 유학 시기에 앓은 암에서 비롯되었다. “내가 왜 이 상태까지 왔을까, 되짚어보는 작업이었어요. 아플 당시 할 수 있는 게 없었지만,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통해 나를 찾는 시간들이 이어졌습니다.” 집적된 개인의 시간들은 그것이 일상에서 기인하였기에, 주로 특이할 것 없는 오브제로 구성된다. 그러나 오롯이 내 언어로 구축된 시간들을 살피는 과정에서, 그 자신은 단순히 하나의 개체가 아닌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극한 상황에서 출발하였지만 스스로 마음의 소리를 좇는 과정에서, 분열된 자아는 다시 한 데로 모아진다. 작가의 회고대로 “무의식의 비틀림”을 정돈하는 작업들이 진솔한 어법으로 지속된다면 보여주는 자와 보는 자 간의 교감 지점, 즉 사색을 공유할 수 있는 지점 또한 열리게 된다. 이어지는 휴식의 기술 연작들이 현재, 그러한 과정 중에 있다. 휴식의 기술, 나다울 수 있는 일상의 여백 큰 무언가를 잃었다는 생각이 들 때 문득 그로 인해 또 무언가를 얻을 수 있는 건 아닐까, 애써 마음을 써보는 게 우리 삶의 모습이다. 김자이는 개인적인 상황 이후 스스로의 무의식을 돌보게 되고, 반성적 사고의 흐름 안에서 자연스레 쉼과 휴식의 방법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경쟁에 익숙한 한국인들이 그러하듯이 부지런히 자기 삶을 살았던 작가 또한 쉼에 대해 인색했다. 이에 작가는 휴식의 언어를 시각화하기 위한 첫 단계로 휴식이란 단어의 리서치를 시작한다. 그 과정 안에서 동적인 휴식과 정적인 휴식을 인지하게 되는데, 작가는 정적인 휴식(rest)은 마음을 쉬게 하는 것이고, 동적인 휴식(relaxation)은 새로운 에너지는 만드는 과정이라고 규정한다. 이후 다양한 휴식의 방법들을 시도해보게 되고, 스스로의 호흡에 잘 맞는 동적인 휴식이 정적인 휴식으로 치환되는 인공의 공간을 만들게 된다. 2017년부터 시작한 <휴식의 기술 - skill of rest & relaxation> 시리즈가 그것으로, 그는 수면사로 직접 뜨개질한 줄기들을 천장에서 늘어뜨리는 형식으로 원시림의 느낌을 이끌어냈다. 이끼의 질감과 유사한 우후죽순 뻗어 있는 줄기 뒤로는 작가가 실제로 거닐었던 숲 이미지가 영상으로 재생되었는데, 관람객들은 직접 줄기를 만져보거나 인공 숲에서 휴식을 취하며 나름의 사적인 시간을 가졌다. 김자이는 줄기와 숲이 어우러지는 이미지를 프린트 작업과 조명 효과를 이용해 건조한 도시 한복판에 설치하는가 하면, 더 나아가 타인과 휴식의 기술을 공유하는 진행형의 작업을 진행한다. 미리 만들어 놓은 리서치 종이에 관람객들로 하여금 휴식의 기술을 적도록 유도하고, 실제 식물들이 설치된 전시물 옆에 리서치의 결과물을 부착한다. 리서치에 참여한 관람객들은 작가의 휴식 방법 중 하나인 식물 키우기를 할 수 있는 씨앗 키트를 가져가서 키우게 되는데, 실제 식물의 성장 과정을 작가에게 사진으로 찍어 보냄으로써 결국에는 서로의 휴식 방법을 교환하게 된다. 작가가 그러했듯이 관람객 또한 일상의 쉼표를 점검하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그 삶 안에 편안한 여백을 고려한다. 예약제 형태로 한 사람만을 위한 휴식공간을 조성했던 중외공원 설치작품은 리서치와 함께 타인의 휴식에 더욱 실재성을 부여했던 작업으로 의도와 형식이 극명하게 드러난 작품 중 하나이다. 휴식의 교환 작업은 작가와 관람객 간의 ‘행위’ 자체가 돋보이는 비물질적인 작업임에 틀림없지만, 그것이 즉흥적이지도 않고 일회성에 그치지도 않기에 단순히 현대미술의 기법적인 범주에서 설명하기엔 무리가 있다. 어찌 보면 작가에게 예술 작업이란 오로지 감성과 영감으로 행해지는 결과물이 아닌, 내면의 가치 체계와 모순을 깨닫는 여정 안에서의 보다 실제적인 고민일 수 있다. 그 분투의 현재 안에서 작업에 실재성이 부여되기도 하고, 가장 나다운 사고와 나다운 작업을 통해 내가 미처 인지하지 못한 ‘나’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휴식의 언어를 의식 밖으로 끌어내고 종국에는 가쁜 호흡의 사람들에게 쉼표를 주고자 하는 김자이 작업의 큰 장점은 무엇보다 작업 전반에 에두른 여백일 터이다. 이는 일종의 사색의 여지로서 죽어있거나 텅 빈 여백이 아닌 생각의 틈을 의미한다. 귀국 후 다수의 전시를 치른 작가는 현재 다시 숨 고르기에 들어섰다. 축적해온 리서치들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기록하여 시각화하거나, 혹은 유동적인 삶의 추이대로 작업에 변화를 주기 위한 과정 중에 있다. 평범한 일상의 영위가 어느 때보다 절실한 때이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로운 시간을 계획하는 이 때 작가의 바람대로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시간을 즐기고” 진짜 휴식을 찾을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 고영재(독립큐레이터), [전라도닷컴] 2022년 2월호 김자이 <휴식의 기술 ver. Yeosu>, 2020, 가변설치, 혼합매체 김자이 <휴식의 기술 3>, 2020, 가변설치, 혼합매체 김자이 <휴식의 기술 - extea episode ver.2>, 2019, 가변설치, 혼합매체 김자이 <휴식의 기술 - extea episode ver.2>(부분), 2019, 가변설치, 혼합매체 김자이 <휴식의 기술 1>, 2017, making film, 단채널 비디오, 16분 12초 김자이 <무의식-언어의 구조화>, 2016, 혼합매체 설치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