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호 초대전 ‘하의삼도 7․7농민항쟁 연작판화’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종길 작성일22-06-22 16:30 조회2,244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전정호 <내땅이로세>, 2020, 목판화 전정호 초대전 ‘하의삼도 7․7농민항쟁 연작판화’ ‘바다를 건넌 사람들’ / 2022.05.27-06.20 / 은암미술관 전정호는 대학시절 민중미술패 시각매체연구회를 조직하여 학내 민주화와 오월투쟁 등에서 선전 시각매체 제작을 총괄했다. 1987년 민족미술협의회가 기획한 <통일전> 순회전에 이상호와 그린 걸개그림 <백두의 산자락 아래 밝아오는 통일의 새날이여>를 출품하여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었고, 1991년의 분신정국에서는 미술선전대를 조직하여 선전투쟁을 이끌었다. 미술운동은 늘 그의 미학적 삶이었고, <하의삼도 7․7농민항쟁 연작판화>를 새긴 지금까지도 변함이 없다. ‘기억투쟁’의 예술 벼랑 끝에 뿌리 달고 선 꽃보다 대전차 저지 콘크리트 장애물 사이에 핀 진달래가 애달프고, 주검을 파먹고 자란 굵은 철쭉이 독한 것이다. 접신하여 공수가 터져 나오는 큰무당의 입처럼 하의삼도에서, 제주4․3에서, 여수순천에서, 한국전쟁에서, 오월광주에서, 매향리에서, 새만금 해창갯벌에서, 동두천에서, 대추리에서, 용산에서, 아니 산하 곳곳에서 이름 없이 살육되고 버려지고 묻힌 그곳에서 군락을 이룬 철쭉의 붉은 입술은 그래서 독이 서려있지 아니한가! 많은 예술이 기억의 흔적이고 기록이며 상징인 것은 죽음 이후까지 살아남아서 그 기억을 전승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국가 폭력에 대항하는 예술 활동을 ‘기억 투쟁’이라거나 ‘상징 투쟁’으로 부르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전정호는 그가 태어나 자란 섬의 역사를 <하의삼도 7․7농민항쟁 연작판화>로 새겼다. 실제 역사와 섬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새긴 판화는 씨알 민중들의 고난과 핍진의 형상을 드러내었고, 저항과 분노의 몸짓을 보듬었으며, 생명 살림의 공동체성이 뜨겁고 환하다. 하의삼도 7·7농민항쟁 <하의삼도 7․7농민항쟁 연작판화>는 역사화다. 380여년의 길고 긴 투쟁의 역사를 새긴 21세기 민중미학이다. 그는 1)봉건 권력과의 투쟁(17세기~19세기), 2)일제 강점기 농지탈환 투쟁(20세기 초반~1945년), 3)미군정과의 농민항쟁(1945년~1950년), 4)간척, 바다와의 투쟁(1950년~ )으로 나누어 새겼다. “봉건 권력과의 투쟁”(17세기~19세기)은 정명공주에게 내린 하의삼도의 무토사패(無土賜牌: 농지소유권은 농민에게 주고, 세금 징수권만 가문에게 주는 것) 문제를 다뤘다. 공주의 후손 4대까지 세금 징수권만 가졌던 것이 5대로 넘어가면서 섬 전체를 소유하려 하고 이중과세로 세금을 뜯어간 홍씨 가문의 탐욕과 부조리를 다룬 것. “일제 강점기 농지탈환 투쟁”(20세기 초반~1945년)은 홍씨 가문의 후손들이 섬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며 매국노 이완용을 이용해 강제적으로 땅문서를 만든 뒤 일본의 자본가들에게 하의삼도 농지를 팔아버린 사건과 이에 분노한 섬사람들이 들고 일어나 땅을 되찾기 위해 벌인 투쟁을 다뤘다. “미군정과의 농민항쟁”(1945년~1950년)은 해방과 동시에 땅을 되찾은 줄로만 알았던 섬사람들이 미군정의 포고령에 의해 일본 자본가들이 가졌던 모든 자산을 미군정 소유로 바꾼 것에서 비롯된 투쟁을 그린다. 섬사람들은 땅을 되찾기 위해 재판을 걸어보기도 하지만 힘에 부친다. 결국 미군정에 납부하는 소작료를 거부하기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섬사람들이 탄압을 받았다. 고문과 학살을 당하는 비극이 일어난 것. 1946년 8월 3일(음력 7월 7일), 하의면 웅곡리 선착장에서 경찰의 발포로 섬 주민 김점배가 즉사하고, 김봉남이 중상을 입은 참사가 터졌다. 이 참상을 목격한 섬사람들이 김점배 시신을 들쳐 업고 하의지서와 신한공사 출장소로 몰려가 불을 질렀다. 바로 이것이 7·7농민항쟁이다. “간척, 바다와의 투쟁”(17세기~ )은 임진왜란 이후 하의삼도에 들어와 살기 시작한 섬사람들의 농지 간척사를 새겼다. 300여 년 동안 황무지를 개간하고 갯벌을 메워서 농지로 만들어온 섬사람들의 역사는 온전히 그것으로 섬의 역사를 보여준다. 씨알 민중의 끈질긴 생명력을 강렬한 형상성으로 표현한 간척사의 장면들은 전정호 판화미학이 일군 ‘공동체 신명의 민중성’이라 할만하다. 각 주제별로 묶어서 작품을 읽되, 7·7농민항쟁의 발단이 되었던 “봉건 권력과의 투쟁”은 하나하나 더 세밀하게 살피고자 한다. 항쟁의 첫 발단을 모르고서는 그 뒤를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밥 세상을 위하여 전정호가 <하의삼도 7․7농민항쟁 연작판화>로 보여주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나는 ‘밥’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항쟁사 연작판화와 별도로 밥 작품을 8점 제작했다. 짧고 간결한 시처럼 밥 작품들도 한 편 한 편이 다 시화(詩畫)다. <섬>은 드넓게 펼쳐진 다도해의 섬을 그렸고, <어머니>는 큰 땅에 앉아 일구며 나아가는 어머니를 새겼고, <땅>은 그야말로 땅과 호미를, <복사꽃>은 밥 한 그릇으로 족했던 고향집을 밥그릇에 담았고, <쌀>은 알알이 맺힌 씨알을 그렸으며, <이팝에 촛불 켜고>는 시루깃대를 꽂듯 밥긋에 세 줄의 이팝을 새겨 놓았다. <천수답에 비가 내리네>는 하늘이 온통 빗줄기다. 그 빗줄기가 또한 씨알 민중들에게는 하늘님이었으리라. 이렇듯 하나하나 잊히고 사라졌던 고향 하의도의 역사를 새긴 그의 판화는 380여년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낱낱이 기억하게 하고 당당히 줏대 세우게 만든다. 역사는 지배하는 자들의 것이 아니라, 지배에 맞서며 제 삶 제 자리를 지켜낸 민중들의 것이라는 것을 뚜렷하게 각인시킨다. 그리고 그 모든 ‘맞섬’이야 말로 공동체 신명을 올바로 돌아가게 하는 순리라는 것을 알게 한다. 밥이 하늘이요, 밥이 사람이며, 밥이 땅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다시, 미술행동 2019년 11월 3일 아침, 영광원전 주차장으로 예술가들이 모여들었다. 핵발전소는 완강한 철책으로 둘러졌는데 마치 비밀스러운 금지구역 같았다. 그린에너지라고 분탕질 해놓은 전시관을 둘러본 뒤, 영광지역에서 오랫동안 탈핵운동을 해온 김용국 환경운동가의 해설을 들었다. 그리고 여섯 개 돔이 시커먼 괴물처럼 보이는 마을 정자로 자리를 옮겨 첫 미술행동을 시작했다. 참여작가는 박건, 잡Art&주홍, 임의진, 홍성민, 전혜옥, 전정호, 천현노, 홍성담, 이하&Art트럭, 양갑수, 백은일. 전정호는 판화지로 사용할 한지로 원전 주변의 널브러진 바위와 아스팔트, 가로수를 탁본했다. 방사능, 라듐, 폴로늄, 헬륨, 3중 수소, 우라늄 등의 오염물질을 탁본으로 채집한 것. 이렇게 지금, 여기의 그는 연작판화 외에도 ‘생명평화미술행동’으로 탈핵 전시와 새만금에서의 미술행동에 참여하였고, ‘연안환경미술행동’으로는 신안, 군산, 인천, 울산, 삼척, 부산, 순천으로 이어지는 지역 미술행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 김종길(미술평론가)의 [전정호 하의삼도 7.7농민항쟁 연작판화론] 중 일부 발췌 전정호 <땅이 된 바다>, 2021, 목판화, 30x72cm. 전정호 <간척, 달이 오르면>, 2021, 목판화, 35x120cm 전정호 <간척>, 2021, 목판화, 50x32cm 전정호 <약탈>, 2022, 목판화, 34.5x24.5cm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