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말들의 풍경’ 중견작가 6인의 회화언어 페이지 정보 작성자 조인호 작성일22-12-30 14:45 조회1,606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광주시립미술관 기획전 '보이지 않는 풍경' 중 김유섭 작품들 ‘보이지 않는 말들의 풍경’ 중견작가 6인의 회화언어 2022.12.15 - 2023.03.19 / 광주시립미술관 광주 추상미술의 현재를 짚어보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보이지 않는 말들의 풍경’이라는 이름으로 광주시립미술관에서 12월 15일부터 내년 3월 19일까지 길게 진행 중이다. 낯익은 형상을 비교적 쉽게 인지할 수 있는 구상회화에 비하면 추상은 그 의중이 잘 보이지 않는 작가만의 내적 언어이거나 통상적인 어법을 낯설게 비틀어 놓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대중은 그 조형적 이야기를 읽어내는데 해독하듯 어려워하거나 그저 알만한 형태나 색채, 표현수법 등의 시각적 요소들만 훑고 지나가기도 한다. 어쩌면 그렇게 일반화되지 않은 특수성이나 형상에 매이지 않는 무한자유, 또는 자신만의 밀어가 쉽게 드러나지 않는 불확실의 비밀스러움을 묘미 삼아 개별성향에 따른 다양한 추상세계를 펼쳐내는 것일 수도 있다. 이번 기획전에서 광주시립미술관은 광주에서 추상미술의 논의가 이루어진 것을 1950년대 들어서로 설정하였다. 비정형(앵포르멜) 추상회화의 선도자 강용운과 양수아의 활동을 염두에 둔 것이리라. 따라서 “1950년대 한국 추상미술의 시작점에 있던 호남미술은 현재 어떠한 모습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하였다.”고 기획의 관점을 밝히고 있다. “참여작가 김유섭, 박은수, 이승하, 강운, 정광희, 서정민은 비재현적인 형식뿐만 아니라 각자의 창조성을 바탕으로 본인의 내면을 드러낸 구체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다. 작업에 몰두하며 실천적 차원에서의 수행과정을 거친 여섯 작가의 작품을 관람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풍경의 울림을 경험하길 바란다.”는 것이다. 광주의 추상미술 출발은 1940년대부터다. 연도 서명이 명확하게 들어간 강용운의 20대 때 회화들을 실예로 삼아서다. 물론 서양 야수파나 표현주의 흔적이 더 거칠고 과격하게 풀어헤쳐진 작품들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구상형태로부터 일탈과 해체, 자유로운 형상의 추구가 핵심 의도이고 실재하는 형태를 벗어버린 화면처리를 보인 작품들로 여럿이기 때문이다. 강용운이 시작한 그런 해체와 일탈의 묘법이 10여 년 후인 1950년대 말 서울화단에서 이른바 전후세대라 일컫는 20대 청년작가들의 기성 미술계와 기득권에 저항하는 전위미술운동의 방편으로 채택이 되었고, 60년대 전반까지 한국미술계에 들불처럼 번졌었다. 인간에게 일탈과 피격의 욕구는 늘 잠재되어 있다. 발산 실행하는 시기나 정도의 차이들이 있고, 한 시대문화 현상으로 집단화 되어 나타나는 경우가 다를 뿐이다. 조선 초기 무등산 분청사기 분장기법의 파격미, 19세기 소치 허련 일가의 정신적 요체를 위주로 한 필묵의 함축미, 60년대 중반 광주사범학교 사범대학 강용운 양수아 제자들이 주축이 된 ‘현대작가 에포크회’ 회원작가들 중심의 뿌리고 겹치고 긁고 파고 문지르고 두들기는 앵포르멜 작업들, 80년대 말 격변기 사회환경과 함께 한 일탈의 해체추상, 요즘도 여전히 몇몇 작가들이 주된 표현형식으로 취하고 있는 비정형 화폭들이 그런 꾸준한 부침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 초대된 6인의 중견작가들은 그동안 지역미술계에서 추상회화로 독자성을 다진 이들이고, 질료 특성과 행위성을 결합한 비정형 회화형식들이 주류를 이룬다. 김유섭의 경우는 전형적인 앵포르멜 회화다. 거칠고 두터운 매재들이 활달하게 긋거나 휘두른 행위의 흔적들로 화폭에 광활한 무한 에너지의 공간을 만들어 놓는다. ‘형(形)과 색(色의) 무개념’으로 진정한 회화성을 탐구한 <빛의 존재> <인류세> <Life is go on> 연작들이다. 먹의 오묘한 번짐들을 영상과 사진으로 담아 생성과 소멸을 얘기하는 이승하는 질료의 무게감이나 행위의 퇴적과는 다른 방식이다. 그의 <무제의 공간> 연작은 어느 한순간의 시간적 파장과 공간의 울림을 우연성과 불확정성으로 담아낸 라이트박스 형태와 스크린 영상 이미지들이다. 박은수는 순간의 행위들보다는 집요한 집적과 깎아내기의 반복으로 이루어낸 <삶의 표정> <삶을 표류하다> 연작을 내놓았다. 캔버스 전체 화면을 가득 채운 요철들이 한겹 한겹 쌓아 올려 만들어진 두께에 칠하고 깎아내기를 반복하며 돌 표면처럼 단단히 다져낸 여러 겹의 물감층들로 이루어져 있음은 그가 삶과 작업을 대하는 의식과 태도를 그대로 보여준다. 강운의 삶을 기록하는 방식의 추상화폭들도 서로 비슷한 작업방식과 행위의 흔적들이다. <마음산책> 연작은 그의 내면에 일렁이는 삶의 독백이나 사회와 세상에 대한 단상들, 인연들과의 관계나 상처, 일상의 그림자들을 색을 칠한 위에 글을 쓰고 다시 칠하고 쓰기를 반복한 마음일기 화폭들이라 할 수 있다. 정광희의 화폭은 다른 출품작가들과 마찬가지로 수행이나 구도의 과정처럼 여겨지면서도 특히 한지에 먹이라는 주 매재가 갖는 재료적 특성 때문에도 훨씬 더 차분하고 깊이 스며드는 맛이 있다. <나를 긋는다>는 그가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지인들의 참여를 통해 모아낸 일획 긋기 채집 구성물이다. 옆에 마련된 영상기록들에서 참여자들은 저마다의 생각과 자세로 텅 빈 백지에 일획을 긋는데, 대부분 자기성찰과 기도의 경건한 모습들로 짧은 한순간에 몰입한다. <자성의 길> 연작도 그가 긴 시간 계속하고 있는 한지와 먹을 방편으로 삼은 물성과 정신성 결합의 탐구작업들이다. 한지를 주 매재로 삼는 서정민은 여기에 먹이나 색채를 곁들이는 방식과 이를 조형화시켜내는 방법에서 전혀 다른 표현법이다. 언뜻 색면추상처럼 보여지는 그의 <선> 연작은 가까이 다가서면 의외의 작업흔적을 발견하게 되는데, 한지 띠를 치밀하게 감아 큰 원형을 이루거나, 일정 형태로 작게 접고 꽂아 화폭에 모아 채워낸 뒤 그 위에 선을 그으며 파거나 잘라낸 집중력이 돋보이는 작업이다. ‘유(有)와 무(無)가 공존하는 무위(無爲)의 철학’을 현대조형으로 풀어내는 그만의 독창적 표현방식인데, 이 같은 작업은 화폭을 채우는 방식이나 조형적 구성에서 차이들을 둘뿐 <함성> 연작에서도 기본은 같은 맥락이다. 중견세대는 우리 시대 미술문화의 중추다. 각자가 그동안 다져온 분명한 독자적 예술세계들이 있고, 그러나 그에 고착되기보다는 지금 이 지점을 통과하고 나면 어떤 모습으로 이후를 펼쳐내게 될지 확정할 수 없는 여지 많은 진중하고도 유연한 활동성을 지닌 작가군들이기 때문이다. 서로의 작업방식들이 질료와 행위성이 우선되든, 정신적 성찰과 함축이 우선되든, 집요한 몰입의 반복을 통한 구도적 행위의 과정이 우선되든, 현재의 화폭은 지금 이 자체로서 긴 예술여로의 한 표정일 것이다. - 조인호(광주미술문화연구소) 김유섭 <빛의 존재 34>, 2022, 캔버스에 혼합재, 120x120cm 이승하 <무제의 공간>, 2017, 2018, 포토라이트박스 영상 '보이지 않는 말들의 풍경' 중 박은수 작품들 박은수 <삶의 표정, 아우라>(부분), 2020, 캔버스에 혼합재, 185x460cm '보이지 않는 말들의 풍경' 전시 중 강운의 작품들 정광희 <나를 긋는다>, 2022, 한지에 수묵, 395x800cm 가변설치, 영상기록 일부 정광희 <자성의 길 23>, 2022, 한지에 수묵, 259x194cm, 작품의 부분 '보이지 않는 말들의 풍경' 중 서정민 전시작품 일부 서정민 <함성 15>(부분), 2019, 캔버스에 한지, 97x162cm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