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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땀 한 땀의 시간; 윤연우의 작품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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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고영재 작성일21-01-23 16:13 조회2,24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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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연우.jpg
    윤연우 <숲속에서1,2> <고양이 인형> <유일한 생명체>, 2020, acrylic yarn

     

    한 땀 한 땀의 시간; 윤연우의 작품세계

    2020.12.10.-12.16 / 스퀘어문화관 금호갤러리

     

    이글은 2020년 유스퀘어문화관 청년작가 공모로 개최된 윤연우의 동굴의 오후개인전을 토대로 고영재 독립큐레이터가 쓴 전시리뷰 성격의 글이다. 전시는 끝났지만 월간지 전라도닷컴연재로 2월호에 싣게 되어 광주미술문화연구소웹사이트에 함께 공유한다.-편집자 주

     

    실로 엮어낸 그림

    대학에서 공예를 전공한 윤연우는 졸업 후 수채화 그리기에 열중했다. 작가에게 있어 수채화는 재료적 친근함에서 비롯된 익숙한 장르였고, 이러한 경험은 대학 시절 드로잉 기법으로 체득한 일러스트와 함께 본인 작업의 회화성 구축으로 이어진다. 이후 작가의 그리는 행위에 대한 갈증은 그림책 학교로 이어졌다. 윤연우는 당시 비전공자들과의 교류 속에서 다양한 재료와 감성들을 접할 수 있었다. 이 때의 경험이 그 작업의 회화성에 물질감을 더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일까? 6년 여 전부터 작가는 수채화가 지니는 얕은 물성을 보완하기 위해 공예 기법, 그 중에서도 타피스트리 기법을 이용해 작업을 한다.

    그리기와 마찬가지로 문명이 시작된 아주 오래 전부터 인간의 삶에 자리한 직조는 행위 자체로서 인간의 본질적인 삶에 다가가 있다. 씨실과 날실의 교차로 인해 만들어지는 이미지와 색감은 철저한 인과 관계로 만들어진 결과물이지만, 한 올 한 올의 실이 수평과 수직으로 오가는 고된 노동의 과정은 언뜻 수행과도 같다. 윤연우의 타피스트리 또한 수행과 유사한 과정을 거친다. 작업은 크게 수채화 그리기(드로잉) · 도안 작업 · 직물 짜기의 순서로 진행된다. 작업의 기본이 되는 수채 과슈화를 색면으로 도안화하고 종국에는 직물을 짜낸다.

    작가는 본인의 작업 과정을 두고 드로잉과 붓 터치라는 회화적인 감각과 도안을 가공하는 이성이 직물 짜기라는 하나의 노동으로 집결되어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그의 초기 직조 작업은 주로 초상화 연작이다. 대부분이 가까운 지인들을 소재로 작업한 것이고, 실의 한 땀 한 땀이 점과 선과 면으로 구축되어 모자이크 혹은 점묘화와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두드러지는 점은 회화성을 살리기 위한 색면들이다. , , 면이라는 기하학적 형태로 이뤄낸 색면은 섬세하게 계산된 도안으로 인해 붓 터치와 같은 시각적 효과를 준다.

    윤연우는 평면성과 기계적인 느낌을 담보하는 면과 면의 분할을 지양하기 위해 붓 자국의 묘사, 다채로운 색채, 색면과 색면의 조화로운 배치를 통해 회화적인 요소를 이끌어낸다. 더불어, 외부세계의 모든 형상의 기본이 되는 점이 한 땀의 실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작가의 작업은 더욱 노동집약적 산물이 된다. 윤연우는 2019년 개인전 <재현의 재현>에서 일러스트 작가 곽수진의 그림을 바탕으로 작업한 직조 작품들을 선보인다. 작가는 네 개의 색으로 그려진 곽수진 작가의 동물화를 직조 작업으로 재현하고, 2차 가공된 재현물을 다시 도식화된 구성화로 직조한 작품들을 보여준다. 이는 재현에 대한 스스로의 문제제기이지만, 무엇보다 재현 행위의 근원에 대해 고민하는 시도로 읽혀진다. 어찌 보면 작가가 규정한 근면한 시간안에는 시간성을 전제로 집적된 노동만이 아닌 창작하는 이의 본질적 행위에 대한 고민들까지 담겨져 있었는지 모르겠다.

    아직은 나의 이야기가 진실

    소설가이자 시인인 김형수는 그의 작가수업 에세이 <삶은 언제 예술이 되는가>에서 삶과 예술에 대해 다음과 같은 논조를 펼친다. “문학은 삶에서 흘러나오는 것이요, 삶에 대한 그 어떤 표현도 삶을 망가뜨릴 만큼의 가치를 갖지는 못합니다. (중략) 문학에 미치라는 말의 참뜻은 어쩌면 상식을 깨뜨릴 만큼 방탕한 시간을 보내라는 말이 아니라 입에서 쏟아내는 모든 언어가 숭고해 보일 만큼 설득력 있는 삶을 살라는 말로 해석되어야 옳은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12월에 치룬 윤연우 작가의 세 번째 개인전은 종전의 전시에 비해 교감의 여지가 더 열려있는 느낌이 들었다. 교감은 창작자와 수요자가 작품이라는 형식을 통해 유사한 정서적 합일점을 찾는 행위이다. 이 정서적 합일점의 지름길은 바로 너와 나의 일 것이다.

    다분히 개인적인 서사가 엿보이는 <동굴의 오후>라는 제목의 작품전에는 작가의 내면과 일상이 빼곡하게 드러나 있었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 동굴은 성과주의 사회의 피안을 상징하기도 하고, 개체에 대한 무관심에서 야기된 각각의 상태를 비유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상태라 함은 단순히 회피나 도피가 아닌 나를 알아가는 움직임일 수 있음을 작가는 이야기한다. 돋보이는 작품은 <숲속에서> 시리즈이다. 깊은 숲속을 헤매는 듯한 사람은 숲 한 가운데의 자그마한 샘에 당도한다. 푸른 옷을 입은 사람은 푸르른 샘을 닮기도 했다. 그 사람은 그 푸른 샘에서 조심스레 물을 길어 올리고, 길어 올린 물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그의 모습은 그대로 샘물에 비친다. 삶의 무수한 고민과 방황 안에서 결국에 찾게 되는 것은 나 자신임을, 나아가 밖으로부터의 치유가 아닌 나를 보는 과정 안에서의 치유를 이야기하는 듯하다. 이전 작품에 비해 서사가 가미된 신작들은 직조의 물성보다 그 서사의 틀거리가 더욱 강조되어 보인다. 작품 <고양이 인형> <유일한 생명체> <해파리처럼>은 고스란히 작가의 일상에 대한 기록이기에 친숙한 서정을 전달하는가 하면, <파도와 보트>에서는 <숲속에서> 연작과 비슷하게 상징적 어법을 취하며 건강하게 살고 싶은 열망을 담아낸다.

    작가는 전시장 한 면에 소품 위주의 초기작들을 걸었고, 그 맞은편에는 직조의 원작이 되는 수채 과슈화를, 관람 동선의 끝자락에는 영상으로 편집된 작업과정을 관람자들이 재생할 수 있게 함으로써 본인 작업의 전반적인 이해를 도왔다. 사적인 이야기에서 비롯한 전시이기에 전시장 안에는 친절한 배려들이 눈에 띄었지만, 그 배려가 의도적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다가왔다. 작품을 보는 이들이 무엇을 느꼈으면 하는지를 물었을 때 작가는 예상 외로 담백한 답변을 해 왔다. “작업하는 중에는 작품에 대한 평가나 다른 외부적인 생각을 안 하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들어요. 작업하는 과정 안에서는 그냥 순수하게 작업만 하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작업의 수고로움이 작품성의 전부가 될 수는 없겠지만, 윤연우의 작업은 스스로의 삶에 대한 성실한 구술이자 은유이기에 시간이 갈수록 그의 작업세계는 더욱 촘촘해지리라 믿는다. 창작자의 작업은 삶이고 창작하는 이는 그 삶을 살아가는 할 수 없기에, 나를 들여다보지 않은 채 밖으로만 시선을 두는 것은 자못 공허하다. 나름의 다짐과 목표로 새로운 시간과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는 이 즈음, 그 어느 때보다 나를 살피고 돌볼 수 있기를 바라본다.

    - 고영재(독립큐레이터), 전라도닷컴고영재의 작가탐험연재, 202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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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연우 개인전 '동굴의 오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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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연우 개인전 '동굴의오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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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연우 개인전 '동굴의 오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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