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추상미술의 선도자 강용운 재조명전 페이지 정보 작성자 조인호 작성일21-07-05 15:36 조회2,189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호남 추상미술의 선도자 강용운 재조명전 2021.06.29-10.31 / 광주시립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이 올해로 탄생 100주년이 된 강용운 화백의 예술세계를 재조명하는 전시를 열고 있다. ‘강용운, 나를 춤추다’ 기획전은 한국 현대미술의 전환기에 시대를 앞선 비정형 추상회화로 자연주의는 물론 모더니즘으로부터도 벗어나고 싶어 “자유분방함과 꿈을 쫒아 끊임없이 방황”했던 한 선도자의 자취를 되비춰보는 전시회이다. 강용운은 일제강점기인 1921년 화순읍 광덕리에서 태어나 서울 중동중학교 졸업 후 동경제국미술학교에서 양화를 익히던 1940년대 초부터 재현적 묘사 대신 주관화된 대상해석과 심상을 담아내는 자유로운 화폭들로 일찍부터 추상화의 길을 개척했다. 40년대 초 거친 표현주의 성향과 반 추상화 작업들을 거쳐 50년대 들어 보다 적극적으로 탐닉했던 그의 비정형 회화들은 1950년대 말 한국미술계를 열품처럼 휩쓸며 격변의 전환기를 만들었던 전후세대의 전위미술운동 앵포르멜 유행보다 한 세대를 앞선 것들이었다. 그 앵포르멜 양식들로 기성화단에 맞서 화단의 이단아들로 등단한 일군의 무리들이 이후 여러 유형으로 표현형식들을 바꿔갔지만 강용운은 더러 기하학적 구성이나 거친 직선의 필선들에 의한 화폭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화업은 일탈과 해체와 자유로움을 구가하는 비정형 회화세계로 평생을 일관하였다. 자연주의 구상회화에 맞선 그의 예술관과 작품활동은 후진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광주사범학교나 사범대학 출신 제자들과 ‘현대작가에포크회’를 중심으로 광주 추상, 비구상 미술의 전개에 밑바탕이 되어 주었다. 실제로 1960년대 이후 광주 또는 호남 추상미술의 토대를 다지고 지금도 여전히 그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작가 대부분은 광주사범대학 출신, 강용운 제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광주시립미술관이 1999년의 ‘강용운회화 60년전’에 이어 이번에 새롭게 기획한 탄생 100주년전은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작품과 아카이브 자료들로 삶과 화업 전체를 펼쳐놓고 있다. 작품들은 광주시립미술관과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작품들과 유족소장품, 개인소장까지 폭넓게 모아져 있어 시대별, 유형별 중요작품들을 한 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는 귀한 기회이다. 더하여 불모지에 추상미술을 활착시켜내기 위해 병행했던 현대회화론 지상논쟁 연재 등 비구상 회화에 관한 기고글들과, 제자‧평론가들의 인터뷰영상까지 세심하게 챙긴 황유정 큐레이터의 노고가 값지다. 전시는 작품에서 변화를 따라 크게 3부로 나누어져 있다. 1부는 ‘사물의 본질을 추구한다’ 소제목에 일본 유학기인 40년대 초의 <여인>‧<여>(1940), <소녀>(1942) 등 표현성과 야수파 경향이 강한 인물이나, 암시적 형태만 남긴 <도시풍경>(1944)이나 <대화>(1949), 즉흥성이 돋보이는 <봄>(1947) 등은 이미 대상의 형태에 구애받지 않는 비정형 추상의 이른 예들이다. 구상적인 요소가 남아 있더라도 색채나 필선에서 주관화가 뚜렷하고, 재현적 묘사보다는 속도감 있고 형태가 간략해진 특징만을 부각시키는 화법을 쓰고 있다. 2부는 ‘전형(典型)에서 원형(原型)으로, 원형에서 부정형(不定型)으로’라는 소제목이다. 주로 50~60년대 작업들인데, 황유정 큐레이터는 “시종일관 형식의 틀을 벗어나 무한대를 향해 나가고자 했다. ‘전형(典型)에서 원형(原型)에, 원형에서 부정형(不定型)에’ 이르도록 뚫고 들어가는 예술의 길이 자신의 전부였던 그는 어느 유파에 소속되거나 중앙이나 지역의 동인(同人)과 미술운동을 함께 이끌고 나가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고 보았다. 특히 1958년 제2회부터 13회까지 참여했던 [현대작가초대전](조선일보사 주최) 시기의 작품들은 작가가 회고한 것처럼 “다양한 재료들을 동원하여 흘리고, 뿌리고 불지르며 자연스런 필치를 곁들여 의욕을 마음껏 불살랐던” 작품들이다. <비(秘)>(1959), <원야(原野)>‧<작품65-A>‧<작품65-B>‧<절대>(1965) 등이 그런 예들이다. 3부는 ‘인간의 무의식으로 긋는 선이 형상이다’라는 소제목이다. 주로 내면 또는 대상이나 시공에서 느껴지는 기운을 필선들로 옮겨낸 작업들이다. 강용운은 선배 오지호 화백과 벌린 ‘현대회화론’ 전남일보 지상논쟁에서 “하등의 목적도 없이 그어져도 일체의 선은 무의식적으로 인간의 형상인 것이다.”고 하였다. 그 지상논쟁 연재를 마무리하는 21회 차 기고문(1960.3.1.)에서 "사르트르가 말한 것처럼 지금은 분석의 시대는 끝났다. 종합의 시대로 접어 든 것이다… ‘앵폴멜’이 하고자 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현실의 벽을 무너뜨리려는 행위다… 가치 있는 예술은 생명의 구토다.“고 주장하였다. 이 같은 바탕에서 제작된 <승화>(1977), <무등의 맥>(1983), <맥Ⅰ‧Ⅱ>(1986>, <생성>(1998), <부활>(1996), <무제>‧<기억>(1999), <2002Work-1,2>(2002) 등은 마음의 움직임과 감흥을 따라 직선이나 곡선, 또는 비벼지거나 거친 선들로 화폭을 채운 작업들이다. 이와 함께 넓은 접시에 각기 다른 비형상으로 그려진 7점의 도기화, 종이에 파필선묘를 즐긴 1990년대 후반의 먹 드로잉들, 1957년부터 60년까지 전남일보에 실렸던 선묘 삽화들도 대부분 강용운이 자유로운 선에 의한 비정형 추상을 즐겼음을 보여준다. 또한, 이번 전시에 곁들여진 제자 박남과 우제길, 김준호, 아들 강일진의 인터뷰 회고도 강용운의 작업성향과 당시 활동에 관한 생생한 증언들이고, 장석원‧조인호의 비평 또는 미술사 관점의 인터뷰도 한 선도자의 예술활동을 객관화시켜보는데 참고가 되고 있다. 천경자‧김영주‧박남 등의 원고지에 쓴 편지나 우편엽서들도 흥미로운 자료들이다. 전시는 한국 현대미술사는 물론 이 지역 미술계에서조차 평가 절하된 강용운 화백의 탄생 100주년이 된 시점에 보다 구체적인 접근과 이해를 돕고, 코로나19로 바깥활동이나 전시관람이 활발하지 않은 상황을 감안하여 10월 말까지 4개월여 간 계속된다. - 조인호 (광주미술문화연구소 대표) 강용운, <예술가>, 1957, 목판에 유채, 33.3x24.2cm, 유족소장 / <작품 64-A>, 1964, 목판에 유채, 90x68cm, 광주시립미술관 소장. 강용운, <무등의 맥>, 1983, 캔버스에 유채, 65x53cm, 광주시립미술관 소장 / <부활>, 1996, 캔버스에 유채, 162x130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강용운, <무제> 연작, 1999, 접시에 유채, 광주시립미술관 소장 인터뷰 영상 중 장남 강일진, 제자 박남, 미술사가 조인호, 미술평론가 장석원 영상 중 일부 비정형 회화와 추상미술 활동의 절친 동료였던 강용운과 양수아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